영화 패왕별희

완벽한 연기를 위해 우희가 되어버린 두지
글 입력 2020.10.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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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왕별희는 1993년 작품이지만 당시 칸 영화제의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명작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 2020년 재개봉을 하기도 했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지만 두지의 아역 시절과 유명한 경극배우가 된 이후의 시절을 다루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이렇게 두지가 경극학교에 입학한 뒤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은 중국의 현대사와 함께 진행된다. 중일전쟁, 아편중독, 공산화, 문화대혁명등 굴직굴직한 중국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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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한가지 주제만 집중해보려 한다. 당시 경극 무대에는 여성이 무대에 오를 수 없어 남자가 여자의 목소리를 내고, 연기를 해야만 했다. 두지는 여자 역을 연습하는데 어린시절 동안 스스로가 여자라 생각하길 강요받는다.

 

이는 극이 시작하는 첫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육손이라는 이유로 두지는 경극학교에서 입학을 거절당하고 어머니는 손가락을 자른다(첫번째 거세). 손가락을 자르고 학교에 입학한 두지는 아동학대에 가까운 훈련을 매일 받았다. 학교에서 도망쳐 나온 두지가 경극 배우의 완벽한 무대를 보며 "얼마나 맞았을까?" 라며 우는 장면은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두지는 황실의 관료 앞에서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라는 경극의 대사를 계속해서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라고 잘못 말한다. 친구였던 시투는 두지의 입 안을 담뱃재로 달구면서 "너는 사내아이가 아니라 계집아이"라며 울부짖는다. 이 두번째 거세를 통해 두지는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라는 대사를 잘 소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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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사 실수는 두지가 연습을 적게 해서 혹은 긴장해서 실수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실제 자신을 계집아이가 아닌 사내아이로 생각했던 두지가 두번의 거세를 거쳐 이 대사를 잘 소화했고 결국 두지는 자기 자신을 여자라고 여긴다.

 

성공적인 공연을 마친 두지는 경극을 관람한 장대인에게 강간까지 당하고 만다.

 

성인이되어 두지는 걸음새, 손짓, 말투가 모두 우희(패왕별희에서 자신의 배역)처럼 변한다. 그리고 우희가 사랑하는 초패왕(시투)를 똑같이 사랑하는 것처럼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초패왕이 아니었던 시투는 주샨과 결혼을 하고 두지는 이에 크게 화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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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두지가 시투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우희가 되어버린 두지가 시투를 사랑한 것 같다. 이제 두지 자기 자신만은 존재하지 않고 우희와 두지는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지는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라고 노래를 부른다. 이것은 어릴 적 실수와는 달리 자신의 정체성을 이제서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인은 원래 사내아이었고, 우희도 아니였음을 알고 의도해서 '사내아이'라고 말한 것이다. 일생에 거친 두지의 혼란이 끝나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마주한다. 두지는 극의 절정 부분에서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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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자 역을 맡는 남자 배우는 동양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양에서도 바로크 시대의 카스트라토는 여자가 무대에 설 수 없는 환경에서 여자 목소리를 내기 위해 변성기 전의 소년들의 고환을 제거했다. 그들은 키가 부자연스럽게 커지거나, 골다공증, 완력이 부족해지는 부작용 등을 감수해야만 했다.

 

자연을 거스르려는 인간의 욕망은 잘못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인간이 낼 수 없는 소리를 내려했던 카스트라토, 여자 역할에 몰입하는 정도가 아니라 여자로 만드려 하는 경극까지. 기이한 사회의 도전에 의해 희생당해야했던 개인의 삶은 비참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불가능한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행했던 그들의 노력은 비참하지만은 않다. 영화는 두지가 진정한 자아를 찾고 난 뒤 끝이 나는데 이 결말을 통해 감독은 두지의 고통스러웠던 삶과 행복한 삶을 교차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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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게 고통스러워지는 어린아이들의 연습 장면, 암울한 시대상과 비극에 가까운 스토리로 영화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만큼 중국의 근현대사와 문화가 잘 반영된 영화이기도 하고 배우들의 열연, 특히 아역 배우의 연기력이 참 놀라웠던 영화다.

 

 

[오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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