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구에게나 빨간불의 기간은 있다. [사람]

빨간불의 부제는 변화가 아닐까.
글 입력 2020.10.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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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샌가 바람에 찬 공기가 섞여 있다. 엊그제 푹푹 찌는 무더위에 녹초가 되었던 것 같은데 세월 참 빠른 것 같다. 벌써 가을이다. 지난해 이맘때쯤에는 졸업 논문 준비하랴, 중간고사 준비하랴, 또 과제 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올해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백수란 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요즘 따라 TV에서 미니멀리즘, 비움 정리 등을 강조하는 프로를 봐서였는지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사용했던 방을 비우고 싶었다. 내 방의 책장에는 초등 학생 때 적었던 일기장, 중고등 시절 때 열심히 정리했던 노트, 그리고 여러 권의 전공 서적들이 규칙도 없이 꽂혀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아무런 생각 없이 시작했던 방 정리는 그로부터 꼬박 이틀간 이어졌다. 정리가 뭐라고,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새벽이며, 낮이며 그렇게 열심히 할 수도 없다.
 
그렇게 정리를 하며 다양한 추억들을 만났다. 친구들과 학창시절 주고받았던 소소한 쪽지, 누군가와 축하나 아쉬움, 그리고 그리움을 나눴던 편지, 낙서, 사진, 그리고 책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중에서도 타블로 소설집의 엽서는 기억 저편에서나 자리 잡고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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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글은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빨간불. 신호등이 있어서 우리가 때때로 멈춰서 숨을 돌릴 수 있는 거잖아. 담배를 한 대 태울 수도 있고. 달려온 길에 대해서 그냥 한번 생각해볼 수도 있을 테고. 아마도 정말 가정일 뿐이지만, 인생에 있어서 이런 빨간불은 좋은 걸지도 몰라. -타블로 소설집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중에서
 
 
사실 최근 들어 탈락을 자주 경험했다. 예의를 둔갑해 오갔던 질문 속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해 받았던 탈락과 그 기회조차 확보할 수 없었던 수많은 탈락이 문제였다. 분명 주위에 나와 같이 취업 준비생인 사람들이 많은데도 나에게는 취업을 성공한 사람들만 보였다.
 
더불어 원하는 분야의 이번 해 마지막 채용에서 탈락을 겪은 후부터는 ‘이대로 고학력자 백수가 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모두 앞으로 가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이었다.
 
우울감에 잠식하는 느낌이었고, 뭐든 의욕이 나지 않았다. 활동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20년 가까이 사용한 방 안의 물건들을 모조리 뒤집어엎었다. 어쩌면 이 엽서를 발견하기 위해 그간 사용했던 방이 그날따라 지저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엽서 속의 글귀는 담백했다. 빨간불에 대한 시선의 변화를 서술했다. 어쩌면 너무나도 흔한 이야기일지라도 내게는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지금 나는 빨간불에 있다. 남들과 뒤처져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앞서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제껏 숨 가쁘게 걸어온 내가 한 템포 쉬어가며 그간의 길을 다시 생각해보고, 또 앞으로 가야 할 목적지를 수정하는 기간이다.
 
빨간불은 현재의 정지를 뜻하기도 하지만 곧 출발의 파란불로 바뀐다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 신호등은 바뀌기 마련이다. 탈락의 허탈함이 크지만, 그 허탈함에 너무 휩쓸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도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글 하나 읽었다고 나의 기분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 테지만, 그저 내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진 않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빨간불은 오고, 또 파란불로 바뀌는 것일 테니 말이다. 앞으로 바뀔 나의 파란불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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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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