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은 불확실성과 그리움의 연속이다 [문화 전반]

누구에게나 겁 없는 시절이 있었다. 즉, 겁 많던 시절이 있었다.
글 입력 2020.10.1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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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무 살 적에 하루를 견디고 불안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내일 뭐하지, 내일 뭐하지 걱정을 했지. (중략)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봤지. 일으켜 세웠지, 나 자신을.

 

- 말하는대로 (처진달팽이)

 

 

누구에게나 겁 없는 시절이 있었다. 다른 말로는, 겁 많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대부분이 이때를 ‘스무 살’이라고 표현하고는 하지만, 그것은 숫자 그대로의 나이가 아닌 ‘특정 시기’를 나타내는 은유일 뿐이다.

 

불확실성에 도전하면서도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음에 불안에 떨던 시기. 누군가에겐 스물 여섯이 스무 살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가 되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미친듯이 손을 뻗게 된다. 아직 상처입지 않은 맨몸으로 끊임없이 세상에 부딫힌다. 학창시절 꿈꿔오던 대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기도 하고, 연애를 하기도 하고, 일찍이 사회생활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가장 많은 도전을 일삼으면서도 실패를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저기에 왜 내 자리는 없을까’ 하는 절박함에 휩싸인다. 이때는 맨몸에 난 생채기 하나가 왜 그렇게 죽도록 아팠는지 모른다. 그렇게 하나 둘 상처가 늘기 시작하면서 개인은 책임감과 현실, 인내를 배운다.

 

언젠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포기한다는 것’이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경험이 쌓이는 만큼 상처는 늘어나고, 우리는 그만큼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놓는다. 우습게도 그제서야 스무 살때는 그토록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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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해. 그때는 아직 네가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 다섯, 스물 하나

 

- 스물 다섯, 스물 하나 (자우림)

 

 

누구나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시간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평생 불안에 떨 것만 같던 스무 살은 결국 언젠가 끝이 난다. 슬프게도 이후에 개인은 그때의 불안정성을 그리워한다. 더 이상 도전할 것이 없음에, 배워갈 것이 없음에 아파한다. 아직 자리잡지 못한 이들을 보면, ‘저기에 왜 내 자리는 없을까’하는 회의감에 휩싸인다.

 

노력의 대가는 상실감이다. 한없이 크게만 보이던 어른이 되었을 때, 아직 무너지는 법을 배우는 친구와 동료들에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책임과 대가를 알게 되는 순간 더 이상 도전할 것들은 없어진다. 스무 살을 잃은 ‘스물 다섯’의 우리는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불확실성을 그리워한다. 겁 없고 무모했던 그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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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여기 하늘엔 네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주웠던 소라 껍데기가 떠 있어. 거기선 네가 좋아하는 슬픈 노래가 먹치마처럼 밤 푸른빛으로 너울대. 그리고 여기 하늘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마다 너를 찾아와 안부를 물어.

있잖아, 잘 있어? 너를 기다린다고, 네가 그립다고. 누군가는 너를 다정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네가 매정하다고 해. 

날마다 하늘 해안 저편엔 콜라병에 담긴 너를 향한 음성 메일들이 밀려와. 여기 하늘엔 스크랩 된 네 사진도 있는걸. 너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어. 그런데 누가 넌지 모르겠어. 누가 너니?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다 지운 메일들이 오로라를 타고 이곳 하늘을 지나가. 누군가 열없이 너에게 고백하던 날이 지나가. 너의 포옹이 지나가. 겁이 난다는 너의 말이 지나가. 너의 사진이 지나가.

너는 파티용 동물 모자를 쓰고 눈물을 씻고 있더라. 눈 밑이 검어져서는 야윈 그늘로 웃고 있더라. 네 웃음에 나는 부레를 잃은 인어처럼 숨이 막혀. 이제 네가 누군지 알겠어.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다 지운 울음 자국들이 오로라로 빛나는,

바보야,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 장이지,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결국 우리는 항상 행복했음을. 스물 다섯에게 스무 살은 축복이었고, 서른에게 스물 다섯은 기회였다. 서른 다섯에게 서른 살은 또 다를 것이다. 현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발버둥은 순간이 영원할 수 없게 만들고, 결국엔 추억을 만든다. 언젠가는 순간이 아름다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시기가 온다.

 

인생은 추억으로 가는 꽃밭이다. 미래 또한 먼 훗날에는 과거가 된다. 삶은 불확실성과 그리움의 연속이다.

 

 

[허향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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