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Sinn)의 혁명] 006. 단절된 세계 속, 각자의 중력 - 김애란의 '비행운'

케이크의 잔해만큼이나 보잘 것 없는 우리
글 입력 2020.10.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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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한 얼그레이 생크림 케이크


 

오전부터 모종의 일정이 생겼다. 기숙사를 이른 아침부터 나왔다. 일을 마치고 학교에 다시 가려고 했다. 순간 흠칫했다. 기묘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싸한, 기분이 들었다.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10월 15일 목요일은 개교기념일인 관계로 중앙도서관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해당 요일에 근무하는 근로장학생들은 출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어쩐지. 한 시 수업을 듣기 전까지 꽤나 긴 시간이 단숨에 비어 버렸다. 일정이 이리 갑작스레 떠 버리는 날이 올 때면, 마음이 잠깐 여유로워졌다가 다시 답답해지곤 한다. 텅-, 갑자기 생겨버린 시간적 공백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다. 붕 뜬 시간의 깊이만큼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집어넣지 않으면 일상이 그대로 뭉개지거나, 터져버릴 듯한 마음에 가슴 부근이 욱신거린다.

 

머리가 잠깐 어지러워진다. 그러다가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렇게 된 김에 팀 프로젝트 회의나 참여해야지. 근로장학 일 때문에 음성으로 참가하지 못할 것 같다던 화상 회의에 겨우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그건 다행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아이디에이션 단계에서, 우리 팀은 유의미한 진전을 일궈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탓이 아니라는 게 더 문제였다. 잘 해내고픈 마음은 다들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한끝 모자란 열정과 책임감, 부담감 탓에 우리는 다소 안일해졌다. 수업이 시작되기 두어 시간 전. 저희, 어떤 식으로 DQ(Discuss Question)랑 RQ(Research Question)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어렵네요. 그러게요. 어떻게 할까요, 그러게요. 반복, 반복,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반복되는 다소간의 무기력과 침묵. 답답했다. 그들 눈엔 나도 마찬가지였겠지. 피곤했다.

 

진짜, 진짜 힘들어. 미치겠어. 팀플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팀플은 당겨진 방아쇠, 트리거였다. 최근에 내 몸뚱아리가 영 좋지 않은 능률을 발휘하는 중이라고 느껴지던 참에, 당겨져 버린 방아쇠. 최악인 정신 상태와 능률을 그대로 꼬집히는 것만 같아서 살갗이 시렸다. 설움을 친구에게 풀어놨더니 죽지만 말라며, 기프티콘을 하나 내게 보내줬다. 할로윈 시즌을 노리고 한시적으로 출시된 디저트였다. 호박맛 타르트. 단 맛 중에 호박맛은 그나마 괜찮을 것 같았다고 그녀가 말했다. 아니면 다른 걸로 바꿔 먹든가, 일단 먹기나 해. 고마웠지만 처음엔 주문하러 가기가 꽤 귀찮았다. 회의가 끝난 직후 연속으로 수업을 듣고 있던 참이었기에 더 그랬다. 참아보려고 했다. 단 걸 최대한 줄이고 최대한 과제와 학업, 기획 기사에 나를 함몰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초와 분이 어지럽게 지나갈수록 우울감과 피곤함은 걷잡을 겨를 없이 커져만 갔다. 안 되겠다. 강의를 듣다 말고 벌떡 일어나 1층 카운터로 향했다.

 

진열장에 놓인 형형색색의 케이크들. 당연하게도 나는 얌전하게 ‘호박’ 타르트를 먹을 생각이 없었다. 대체재를 찾으려고 시선을 굴렸다. 하나 남은 얼그레이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생크림 가득, 얼그레이 빛깔 빵 가득. 왠지 저걸 먹어야 할 것 같은 순간적인 의무감에, 저걸로 바꿀게요. 진한 얼그레이... 생크림 케이크요. 포크는 몇 개 필요하세요? 하나요.

 

겉면의 포장재를 제거하니 빵의 윤곽이 더욱 선명해졌다. 포크로 케이크의 상단부를 푹 찔렀다. 빵 사이로 욱여 들어간 생크림들이 사정없이 퍼져 나왔다. 포크에 소분된 생크림과 얼그레이맛 빵을 입에 집어넣었다. 달다. 한 입 더 먹었다. 다네. 또 한 입 더 먹었다. 진짜 달다. 눈물샘도 동시에 생크림이 퍼져 나오듯 터지려고 했다. 일면식도 가지지 않은 맞은편 상대에게 민폐가 될 수 있었기에, 흐르지만은 않도록 꽉 참았다. 평소였으면 아무리 단 걸 좋아하는 나였어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단맛이었다. 그런데도 미각에 마비가 온 것 마냥 케이크가 술술 입의 안쪽으로 향했다. 생각 외로 팀 발제도 무난하게 마쳤다. (여전히 문제투성이였지만.) 모든 게 끝났을 적, 케이크의 잔해만이 접시를 장식하고 있었다.

 

 

 

2. 굴러떨어진 사람들의 이야기


 

내가 케이크를 먹으면서 눈물을 떨굴락 말락 망설였던 동안, 문장으로 박제된 누군가도 나와 마찬가지로 삶의 끈을 조마조마하게 잡으며 세계를 버텨내고 있었을 것이다. 『비행운』의 세상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김애란의 단편작이 모여 만들어진 ‘집.’ 어디에서나 목격할 수 있을 법한 무너진 사람들. 그들의 인생에 큰 흠이 존재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잘 나가는 형제들 사이에서 바보 취급을 받으며 택시기사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용대’나. 구깃구깃 대도시의 변두리에 자리한 장미빌라에서, 예정에 없는 아이를 낳고자 살림을 꾸려나가는 한 부부나. 별 볼 일 없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도 물적으로 여유로운 척, 자신이 대우받을 가치가 있다는 점을 세상에 있는 힘껏 외치고픈 한 여인이나. 스치듯 지나갈 땐 그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평범한 존재로 인식될 뿐이다.

 

그들의 삶이나 나의 삶이나,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축에 드는 종류의 형태들이다. 우리가 가진 내면의 결핍은 현대 사회에 기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가질 법한 정신적인 하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굴러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는데도, 누구 하나 우리의 목소리가 특출하게 궁핍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인정해주지 않았다. 김애란 작가는 그 지점을 명료하게 짚어, 인물들이 겪는 미묘한 뒤틀림으로 언어화한다. 결과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독자가 그 자신이 내적으로 숨겨왔던 “사소한” 결핍을 드러내도록 하기도 한다.

 

치부라도 들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큐티클」의 ‘나’가 돈 앞에서 주눅 들지 않으려고, 값나가는 네일 서비스의 가격을 듣고도 그 정도 가격은 별 것 아니라는 듯 가면을 쓸 때. 독자는 물신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타인에게 돈으로 얕보이지 않기 위해 겉을 치장하고, 비싼 음식과 미용 서비스를 받는 등 무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호텔 니약 따」에서 다빈과 은지가 같이 여행을 다니는 동안 서로에게 품었던 불만들에서는, 친한 친구와의 대화에서 미묘하게 우열이 나뉘는 지점들을 발견하고 멈칫했던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어정쩡한 빌라 집에 살면서 예정에 없던 출산을 준비하는, 「물속 골리앗」의 서민 부부들의 모습으로부터 독자는 보통의 결혼이 도달하는 정착지가 어디인지 고민할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드라마나 소설에 등장하는 화목하고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 아닌, 금전과 육아의 문제로 빚어지는 갈등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뚜렷하게 결정하지 못하며 가족의 형태만 간신히 유지하는 모습.

 

작가는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의 단면을 폭로하고 있음을 섬세하게 지적한다. 평범한 구성원의 일부로 존재하는 듯한 우리의 이면에 숨어 있는 욕망과 비틀림의 감정을 거침없이 꺼내 독자 앞에 보인다.

 

 
“월급날에 대한 확신과 기대는 조금 더 예쁜 것, 조금 더 세련된 것, 조금 더 안전한 것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 그러니까 딱 한 뼘만…… 9센티민터만큼이라도 삶의 질이 향상되길 바랐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많은 물건 중 내게 ‘딱 맞는 한 뼘’은 없었다는 거다. 모든 건 늘 반 뼘 모자라거나 한 뼘 초과됐다. 본디 이 세계의 가격은 욕망의 크기와 딱 맞게 매겨지지 않았다는 듯. 아직 젊고, 벌 날이 많다는 근거 없는 낙관으로 나는 늘 한 뼘 더 초과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럴 자격이 있다 생각했다.” (「큐티클」, 214p)
 

 


3. “결국엔 너도 자라 내가 되겠지.”


 

김애란이 택하는 서술 방식은 개인을 다소간 무력한 존재로 그리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하자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안성맞춤형 정신 치료제는 없다. 열등감과 열패감. 우월의식. 슬픔. 분노. 우울. 개인은 분리하지 못하는 감정의 파편을 안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돌고 또 돌 수밖에 없다. 일견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도, 성인의 나이에 이르면 열거한 감정들을 표출하는 방법에 대해 배운다.

 

그렇게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에 곧이곧대로 승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세울 것만 같았던 사람들도, 끝내는 본인의 꿈을 저버리고 사회에 온전히 편입해야 할 때를 맞이한다. 그래서 김애란의 시선은 잔인하다. 보통의 사람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다. 보는 독자가 일순간에 무기력으로 돌진하게끔 종용하는 것이다.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서른」, 316p)
 

 

어쩌면 거창한 사람이 되겠다는 외침은,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소중하고 이상적인 목표로 기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대감을 내려놓기 전까지 무언가를 기대하고, 기대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감으로써 확인하기 전까지 ‘꽃밭’에 자발적으로 갇히는 행동. 그리고 그 기대가 좌절되는 일련의 과정은 보통의 세계로 개인을 끌어내리기 위한 총체적인 굴레일 수도 있었다. 희망고문이 아닌, 희망조차 없는 고문. 김애란의 글은 우리의 아픔을 그렇게 들춰낸다.

 

잔해가 남은 케이크 조각판을 몇 초간 들여다봤다. 꼴이 처참했다. 생크림 자국만이 또렷하게 접시 위에 남겨져 있었다. 그럭저럭 팀 프로젝트 발제가 끝난 뒤, 저희 그럼 오프라인 회의는 어떻게 진행할까요. 두어 번 물어봤던 내 카톡이 모두에게 읽혔음에도 응답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며. 역설적으로 눈물을 다시 삼키게 됐다. 얄팍한 감정이 분출되고 있는 현장이라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진정됐다. 기대를 버려서였나. 결국엔 너도 자라 내가 되듯, 그 사람들도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스스로가 되었으리라 생각하니 어쩐지 묘한 동질감마저 드는 기분이었다. 물론 카톡에 대한 유의미한 답을 보내줬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말이다. 동시에 졸음이 쏟아져 나왔다. 전날 밤 불면증에 시달리느라 고작 두어 시간을 자고 새벽을 맞이해서인지, 뒤늦은 피곤함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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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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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레몬
    • 몸부림쳐도 보통, 멋진 꿈을 꾸어도 보통,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었든 타인 사이에 떨어지면 결국 보통으로 비춰지는. 이소현님의 이야기와 <비행운>에 대한 글을 읽으며, 그리고 저를 떠올려보며 보통의 것으로 일컬어지는 ’평범함’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을 떠올렸어요.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소현님의 글만으로도 그 작품을 통해 나도 모르게 감춰뒀던 평범함을 둘러싼 숨겨지고 왜곡된 마음의 존재를 잠시 확인한 것 같아요. 저는 그것이 부끄럽다 느끼곤 했는데(스스로 별 거 없는 평범한 사람이 거창한 꿈이나 꾸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요), 글을 읽다 보니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단이 인상 깊었어요.

      여담이지만, 새삼 며칠 전에 먹은 당근 케익이 생각났어요. 평소엔 비싸서 찾지도 않던 케익 한 조각을 얼떨결에 주문하고 괜히 후회스러운 마음에 겉 필름도 떼지 않고 두고 있었는데, 일이 풀리지 않으니 자연스레 손이 그곳으로 가더라고요. 필름을 삭 벗기니까 당근 향이 아니라 기대하지도 않던 시나몬과 크림치즈 향이 마스크도 뚫고 들어왔어요. 갑자기 그냥 그게 그렇게 좋아서 모든 걸 멈추고 케익 향을 마스크 뒤로 잔뜩 마셔보려 했던 기억이 나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게 그렇게 안도감을 주더라고요. 사람의 마음이 참, 단단한 것 같으면서도 별 거 아닌 것에 잔뜩 흔들리는, 그런 무엇인 것만 같아요.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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