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에코 페미니즘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 [영화]

글 입력 2020.10.1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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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백을 받으면 어떨까?

 

'당신은 과부고 나는 부인이 없어요. 또한 당신은 아름답고 내 아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해요'

여자는 이렇게 답한다. '난 당신의 아들이 필요 없는데'

 

남자 - '정말?'

여자 - '그럼요'

남자 - '그럼 남편은 필요하지 않아?'

여자 - '뭐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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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웃음이 터진 대목이다. 농부 바스는 주인공인 안토니아에게 이 싱겁기 짝이 없는 고백을 한다. 자고로 고백이란 상대를 향한 나의 마음이 얼마나 애틋하고 애정으로 가득 차있는지를 표현하는 진솔한 마음인데, 바스의 고백 속에는 애정 대신에 다른 말들이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이를 테면, '나는 외로워요. 부인이 없으니 여러 아들들을 다 챙기기에도 버겁고요. 듣자하니 당신도 남편이 없고 딸과 둘이 산다고 하던데 외롭죠? 당신이나 나나 비슷한 처지에 있으니 그냥 함께 삽시다.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이해하죠?' 와 같은, 모종의 거래같은 고백이다.

 

이 말을 들은 안토니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녀는 딸인 다니엘과 함께 마을에서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배경을 듣게 되면, 바스의 고백이 넌센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그녀의 딸 다니엘은, 안토니아 옆에서 바스의 고백을 듣고 있다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우리는 필요 없는데. 잘 살고있는 사람한테 갑자기 와서는 엄마가 필요하다니 이 무슨 상황?' 이라는 생각을 품은 듯한 표정으로.

 

이 장면 외에도 다니엘이 풋 하고 웃게 되는 상황이 찾아오는 걸 보면, 영화속 배경이 어떤 분위기였는지를 어렴풋하게 짐작하게 한다. 남성주의적, 권위적, 가부장적인 마을 분위기. 그 속에서 안토니아가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여성이 주체되는 삶을 당연시하게 되고 긍정하게 된다.

 

 

 

안토니아는 씨를 심었고 다니엘은 그렸습니다


 

안토니아는 2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쟁 후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함이었다. 어머니는 거미줄이 쳐진 집에서 오랫동안 혼자 사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안토니아는 '어머니의 남편이 별로였기 때문이죠. 어머니의 의사를 묻지 않고 철저히 본인의 욕망에 따라서 행동했어요.'라고 말한 것을 통해 어머니는 아버지 때문에 오랫동안 마음 고생 하셨음을 알게 된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날, 장례식이 끝나고 작은 바에 모여 앉은 사람들. 안토니아가 등장하자 한 남자가 불콰한 얼굴로 무례한 말들을 던진다. '안토니아는 여전히 못생겼지만 딸 몸매만큼은 좋네' 라고. 남자는 성추행에서 끝내지 않고 갑자기 본인 아들의 어깨를 감싸쥐더니 '얘는 정력이 좋지. 여자를 위해 딱이야!'라고 으스댄다. 정말이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말이다. 무례하고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다니엘은 그저 하품을 크게 할 뿐이다.

 

마을로 돌아온 모녀를 향한 사람들의 반응은 불쾌함, 인정, 무관심이라는 세 갈래로 나뉘었다. 전체적으로 가부장 중심의 남성주의적인 마을 분위기 속에서 모녀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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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배울게 너무 많다'라고 다니엘은 말한다. 미술을 좋아하던 다니엘은 미술 학교로 진학한다. 다니엘은 학교를 다니고, 안토니아는 밭에 씨를 뿌리고 수확물을 거두면서,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에코 페미니즘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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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 장면이다. '안토니아스 라인(Antonia's Line)'을 제대로 그려낸다. 안토니아 - 다니엘(안토니아의 딸) - 테레스(다니엘의 딸) - 새리(테레스의 딸), 안토니아를 시작으로 한 4대 모계 가정이 축약된 사진이다.

 

4대가 한 테이블에 둘러앉기까지, 마을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소생했고 동시에 소멸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대안 가정의 형태가 바로 소생의 증거이고, 이 가정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이 한 명 한 명 세상을 등졌다는 것이 소멸의 증거이다.

 

안토니아에게도 삶의 끝이 찾아오고, 그녀의 주변에는 다니엘, 테레스, 새리가 둘러앉는다. 그녀가 긴 세월을 살아내는 동안 두 눈으로 지켜본 것들에는 삶과 죽음이 가득했을 터.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만, 우리들이 시간을 잊게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는 미움, 질투 등을 보았을 것이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마을 사람을 성폭행하는 사람, 정작 본인은 마을 사람을 성폭행하면서 성당에서는 '여성의 순결'을 중요시하는 설교를 하는 신부, 그 밖의 여러 죄들.

 

수많은 죄악이 팽배하는 세상에서 안토니아는 묵묵히 씨를 뿌렸고, 공동체를 꾸려 마을 사람들과 안온한 삶을 이어나갔으며, 사랑은 하였으나 이 사랑은 철저히 본인의 의사에 의해 주체적으로 시작된 감정이었다. 안토니아는 그 무엇도 래디컬하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의 삶으로서 보여준다. 하지만 그 보여줌을 통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성이 주체가 되는 삶을 긍정하게 되고 이런 삶을 당연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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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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