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말과 목소리에 대한 단상 : 전갱이의 맛 [문학]

권여선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 중 '전갱이의 맛'을 읽고 쓰는 말에 대한 단상
글 입력 2020.10.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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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에게 목소리가 있었다면, 우리에게 목소리가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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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읽으면서, 공주가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지 않았더라면 그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 라고 막연하게 상상해본 적이 있다. 왕자에게 왕자의 은인은 인어공주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수도 있고, 물거품이 되어버리기 전에 왕자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이라도 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가 사랑하는 왕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 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것에서, 우리는 우리가 목소리를 잃게 된다면 마주할 세상을 짐작해볼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목소리를 통해 타인과 세상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왔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목소리를 잃는 것, 곧 말하는 행위의 부재는 타인과의 소통의 단절을 의미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변화가 있다. 물리적으로 타인과 만남이 줄어들면서 말하는 행위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는데, 이러한 시간이 지속되면서 자연스레 나와 나의 대화가 늘어났다. 혼잣말을 내뱉거나, 노래를 흥얼거리는 등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가 아닌 나 홀로 허공에 말을 내뱉는 순간들. 그동안 한 번도 자각한 적 없었던 나의 목소리와 나의 말이 의식되는 순간,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허공에 내뱉어지는 이 행위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발화하는 행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권여선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에 수록된 단편, 「전갱이의 맛」은 말에 대해 여러 생각할 지점이 담겨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성대 낭종 수술로 인해 목소리를 전보다 마음껏 낼 수 없는, 몇 주간은 “응”이라는 간단한 소리조차도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과 한때 부부였던 화자 ‘나’가 그를 과거의 그와 비교하면서, 그와 만난 짧은 한 때를 소설에서는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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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없으면 비(非)정상인?


 

주인공 ‘나’는 성대 낭종 수술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전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체 언제 정상인처럼 되는데?”

 

- 232쪽

 

 

정상인과 비정상인이라는 이분법적인 기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비정상인으로 구분하는 ‘나’의 발화는 이상한가? 사실 평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해오던 사고방식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수도 있다. 전남편 당사자도 성대 낭종 수술을 받고 나오는 길에서 택시를 타며, 목소리를 못 내는 자신을 보며 놀라는 택시기사에게 ‘나는 원래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다고 해명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만약, 전남편과 같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어떨까. 간혹 필담 혹은 휴대폰 메모 앱으로 대화를 청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순간 내 안에 담겼던 감정을 떠올려보았다. 돌이켜보면 일종의 ‘연민’이었고 그 감정이 엄청난 무례일 수 있음을 전남편의 ‘해명하고 싶은 마음’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았다.

 

이 연민의 감정의 기저에는 그들을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구분, 나아가 그들을 비정상인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이 깔려있다. ‘나’가 말하는 방식에서 불편함을 느낀 건 분명 ‘정상인’이라는 단어에서였는데, 실상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나’가 함부로 말한 것과 별다를 것 없이 나 또한 목소리 내지 않는 혹은 낼 수 없는 사람들을 비정상인으로 간주한 것이다.

 


 

타인에게 말하기



‘나’의 전남편은 성대 낭종 수술을 하기 이전에는 다변, 달변가였다고 표현된다. 그랬던 전남편을 3년 만에 만난 ‘나’는 그가 전과는 달라졌음을 느끼고, 달라진 계기에 관해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말이란 게, 하고 그가 말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그동안 난 쉴 새 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해왔는데, 그 말을 사실 나도 듣고 있었던 거지. 그런 의미에서 말은 순수히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던 거야.”

 

- 241쪽

 

 

우리에게 말을 하는 행위란 숨을 쉬는 행위와 같다. 숨을 쉬듯 말을 뱉어내고, 이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숨은 다시 들이쉴 수 있지만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 정도일까. 그것이 중요하다.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떠오르는 말을 툭, 하고 내뱉는 편인지 혹은 머릿속에서 한 번 점검을 한 뒤에 말을 꺼내는 편인지, 내가 어떤 편에 속하는지 한 번쯤 돌이켜보면 좋다. 아무리 마음 안에서 말을 고르고 내뱉어도 한 번씩 꼭 후회되는 말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꾸짖고 다음에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쉽지 않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내가 하는 말들은 바로 상대에게 바로 와 닿는다. 이때 그 말이 내 자신에게도 와 닿는다고 생각하면서 말한다면 어떨까. 매사 내가 하는 말들이 내 자신에게도 닿는 말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내가 내뱉는 말들이 전부 나를 향한 말이라고 생각한다면 왠지 뱉은 말을 후회하며 곱씹는 날이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중해지는 것이다.

 


 

‘나만의 말’ 만들기


 

 

“그게 뭐야?”

“이를테면 나만의 말을 만드는 식인데, 나의 첫 말은 당연히 비온다였어.”

“어떤건데?”

그가 얕게 한숨을 쉬더니 창밖을 바라보고 다시 나를 보았다.

“그거야?”

그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실망해서 외쳤다.

“그게 뭐야? 수화보다 빈약하잖아?”

“그렇게 보일 수도 있어. 사실 나만의 말은 내가 일부러 만들려고 해서 만든 게 아니야. 이미 있던 게 뒤늦게 발견된 거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한 비 온다는 말은, 비 온다는 말을 그리워하던 그때의 상태, 그때의 자세, 그게 그대로 비 온다는 말이 된 거야.”

 

- 244/245쪽

 

 

이 소설에서 전남편은 결국 목소리를 잠시 잃었던 과정에서 자신을 위한 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만의 말’을 만든다. 위 인용문은 그가 ‘나만의 말’을 처음 만들었던 순간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독자들은 ‘나’와 전남편이 나누는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며 말이 타인과 세상을 소통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게 된다. 불현듯 내뱉는 혼잣말, 허밍 소리, 자주 하는 손짓들. 이렇게 우리가 자각하고 있지 않았던 우리 몸의 표현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 안에는 나의 내밀하고 진실한 마음이 녹아있을지도 모른다.

 

「전갱이의 맛」을 읽는 동안 나의 목소리가, 나의 말이 당연히 항상 내 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체험을 간접적으로 하게 된다. 말의 부재를 상상해보도록 하고 말의 근원적 기능을 돌이켜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소설을 덮고 ‘나만의 말’을 만들기 위해 일상을 흘려보내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는데, 그들의 말처럼 이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거나 발견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직 나의 기억이 빈약하거나, 발견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그 처음을 자각하는 순간이 기다려지는 시간은 분명 설렘이 가득한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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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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