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응원의 메시지 -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글 입력 2020.10.1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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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을 쓰다 어느 부분에서 막힌 ‘도래’에게 ‘유’는 무엇이 잘 써지지 않느냐 묻는다. “선한 가치를 유치하지 않게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래의 말대로 인간의 악한 본성을 다루고 비관적인 결말로 끝내면 ‘예술적’이다 칭찬하지만, 반대로 선한 본성을 다루고 낙관적인 결말을 쓰면 ‘유치하고 가식적이다’라고 종종 질타 받곤 한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극단적으로 뜨겁거나 차가운 것을 선호하고, 적절한 온기는 기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노란 개나리꽃을 들고 미소를 짓는 찬란이의 섬네일과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따뜻한 제목의 이 웹툰은 한때 나에게 ‘노룩패스’를 당했었다.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니!

 

하지만 웹툰은 이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다. 선한 이야기가 더 위대할 수 있는 이유는 한 사람, 또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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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가정 학대와 가난의 상처를 안고 사는 대학생 ‘이찬란’의 인생은 이름처럼 찬란하지 않다. 그런 찬란에게 연극부원들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일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마냥 티 없이 자란 것 같은 부원들에게도 저마다의 상처가 있었음을 알게 되고, 이들과 함께 연극을 준비하면서 찬란은 자신의 내면을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찬란한 이름을 갖고 세상에 태어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실제 삶은 이름과 달리 그다지 찬란하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TV나 소설 속 특별한 주인공들과 달리 내 삶은 잘못된 환경과 관계에서 기인한 상처의 실타래로 얽혀 있거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느라 진정한 ‘나 자신’은 누구인지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실타래와 거짓 욕망에 짓눌려 나 자신을 잊고, 잃어버리며 사는 것이다.


‘도래’는 그렇게 상처 입고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아름답고 선한 본성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졌던 우리의 이름처럼 본래 선하고 아름다웠던 그 모습. ‘어떻게?‘라고 묻는 찬란과 독자의 질문에 이 작품은 ‘함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손을 내민다.


흠 없이 완전무결한 사람 하나가 부족한 이들을 끌어주고 교훈을 건네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연극부의 친구들은 모두 다양한 형태의 상처와 결점을 안고 있는, 이 웹툰을 보고 있는 독자들처럼 아주 보통의 사람들이었고 그런 그들이 함께 모여 늪에 빠진 이들을 끌어내고자 한다.


인물들은 연극을 준비하고 만들어가면서, 함께 속마음을 터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몰랐거나 회피했던 진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대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건 어쩔 수 없어.’라며 그 자리에 주저앉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아낌없는 응원과 사랑으로 찬란은,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독자들은, 외부적인 부분에만 아등바등 매달렸던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상처의 실타래를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 그 원인을 제대로 ‘알고’ 진단한 후 이렇게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저, 너를 둘러싼 모두가 부족한 인간, 불안정한 상황이었을 뿐, 지금까지 버텨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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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아름다운 본성을 회복한다는 이 작품의 메시지는 선한 목적을 기반에 두며 찬란과 같은 상처를 경험한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온기를 채워 넣는다. 또한 위로에서 멈추지 않고 누군가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웹툰 속 찬란과 그 주변 인물들은 이전보다 ‘나은’ 사람으로, 사랑을 갈구했던 이에서 사랑을 주는 사람으로 한층 성장한다. 아마 이 웹툰을 읽은 독자들 모두가 그런 변화를 경험했으리라.


이 시대가 ‘오그라든다’고 깎아내리는 이 ‘선’의 가치가 더 위대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바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 이전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변화만큼 더 가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이 웹툰이 또 좋았던 것은, 인물들에게 극적인 행복의 변화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연극부 친구들의 일상은 사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전처럼 똑같이 취업 준비로 머리를 얼싸안고, 부지런히 학점을 챙기고 아르바이트를 나간다. 하지만 이 작품의 메시지처럼, 상황은 그대로일지라도 변화된 ‘나’가 있기에 앞으로 더 좋게 바뀔 것이라는 희망. 그 희망이 작품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것 같다. 만약, 연극이 성공적으로 끝나 이들이 유명세에 오르거나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다면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거나  도래의 말처럼 ‘유치’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현재의 상황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 나아진 오늘, 오늘의 나, 오늘의 당신이라 꼭 집어 이야기한다. 그만큼 ‘나’의 도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찬란 역시 변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오히려 자신이 벗어난 실타래를 안고 떠나는 아버지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일화는 인물에게 큰 변화를 주지 않는 에피소드지만 사건은 다르다. 사건과 맞닥뜨리면 인물은 그 사건 이전으로 되돌리지 못할 만큼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단행본으로 웹툰을 읽다가 책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켰다. 모바일로 작년에 연재를 마무리한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의 마지막 회 댓글을 쭉 읽어보았다. 모두들 저마다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이 작품이 큰 위로와 변화를 주었다고 고백한다. 사람을 향한 애정 어린 눈과 동정을 가진 이 작품의 선한 힘에 많은 이들이 이끌리고 감동을 준 것이다. 끝까지 함께한 독자들도 이 작품이 그들의 삶에 ‘사건’이 되었기를! 이렇게 선한 마음을 담아 기도하게 된다. 나 역시 그 선한 힘과 사랑을 믿는 사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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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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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푸름
    • 연재할 때에 인상깊게 보았던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글로 보니 반갑네요:) 저도 그런 선한 힘과 사랑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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