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유하는 청춘들 – 혁오 [20](2014) [음악]

너의 고통은 나의 고통과 같은 모양
글 입력 2020.10.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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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혁오의 노래를 잘 듣는 편은 아니지만, 어딘가 마음이 헛헛하고 우울할 때면 그의 노래들을 찾게 된다. 근원 모를 공허함과 허무감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노래들이 내게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물리적 그리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 속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유하는 요즘 청춘들의 마음을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수가 또 있을까.

 

이들의 노래는 온도로 따지자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온도에 가깝다. 외로움을 이야기하면서도 “나 외로워요!” 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떨어져서 이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식이다. 또 부정적인 감정을 추스르고 나아가려는 억지스러운 희망적 태도를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이야기한다. 나는 이렇다고.

 

이들은 2014년 데뷔 앨범 [20]을 시작으로 그간 [22], [23], [24] 등 나이를 제목으로 삼은 앨범들을 일관되게 발표해왔다. 올해 초 <사랑으로>라는 앨범을 발표하며 이 규칙을 깨긴 했지만. 그래서 22살인 나는 왠지 나이에 맞게 그의 앨범들을 들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이번엔 1집 [20]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desolation isolation

that means where I stand

combination of information

that means where I’ve been

discomfort of depression

I know well it’s ill

but anxiety in reality

it would never disappear

I know I need to be sure about me

and I know I need to

stop repeating wandering


혁오- 'I Have No Hometown'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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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성인이 된 이후 인간관계는 크게 확장되고, 다양한 성격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나도 그랬다. 대학에 들어간 뒤 학과에서 동기들을 만나고, 동아리에 들어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새로 사귀었다. 그런데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밥을 먹다가도, 수업이 끝난 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왠지 모르게 우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자신이 방랑자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느슨하게 연결된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 나의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드물었고, 마찬가지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도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고향(hometown)이 없어진 듯한 느낌, 앨범의 마지막 트랙 의 이야기다. 채워지지 않는 황량함과 고립감 속에서 자아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원치 않는 방황을 계속하는 화자의 모습. 청춘이 겪는 성장통이다.

 

주변 사람들에 의해 쉽게 휩쓸리고, 흔들리는 것도 스물이라는 과도기적 나이의 특징 중 하나다. Feels Like Roller-Coaster Ride의 화자처럼, 타인이 내게 하는 말과 행동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내게 매우 큰 영향력을 끼쳐 그날의 감정을 좌우하기도 한다. 나와 거리를 두는 상대에게, 당신이 돌아온다면 나는 들뜰 것이라고, 무릎을 꿇겠다고 말하는 가사는 이성 관계를 이야기하는 건가 싶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5번 트랙에서도 마찬가지로 화자가 상대방에게 아직 우리의 공간(our place)에 오지 않았다면서, 내가 있는 곳으로 와 달라고 청한다(please come into my bed).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럴 여유도 없는 피상적인 관계 속에서 공감을 얻고자 하는 나의 말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에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타이틀이자 유일하게 한국어로 쓰인 노래 <위잉위잉>에는 아메리카노보다 몇 배는 더 씁쓸한, 염세적인 자기 인식이 나타난다. ‘비틀비틀 걸어가는 나의 다리 오늘도 의미없는 또 하루가 흘러가죠’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에서 더 이상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동력을 상실한 화자는 급기야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죄의식을 느낀다. 하루살이도 처량한 나를 비웃듯이 멀리 날아가고, 세상도 나를 비웃듯이 계속 흘러간다. 원인을 무어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20대 혹은 그 아이와 어른 그 경계에 있는 모든 청춘들이 느껴봤을 감정이다.

 

Ohio의 화자는 자신에 대한 집중에서 벗어나 나와 비슷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고민과 아픔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위로를 건넨다. 현실을 살아가고 싶지만 회상의 물결 속에서 과거를 향해 헤엄치는 화자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모습(the same as mine)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앞만 바라보고 달릴 것을 요구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냉혹한 현실이,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우리를 자꾸만 평화로웠던 과거로 도망치게 할 때가 있다. 후반부에 이르면 노래는 이제 그만 현실로 돌아가고 싶고,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어려운 일이기에, 마치 우리의 이러한 마음을 다 알아주는 듯한 'I watch your pain'이라는 가사는 단순히 ‘힘내’라는 말보다 훨씬 큰 위로로 다가온다.

 

앞만 보고 바쁘게 달리다가 문득 '현타'가 찾아온다면, 또는 어딘가 정체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그가 건네는 위로에 귀 기울여 보자.

 


[오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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