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처를 마주하는 자세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시각예술]

세계적인 행위예술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눈빛에 실린 총기를 따라서, 조금 더 단단해지는 법을 배운다
글 입력 2020.10.0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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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샤워를 하다가 엄지 손가락이 깊게 베였다. 눈썹 정리를 하려고 눈썹칼을 열다가 손이 미끄러운 나머지 힘 조절에 실패해서 그만 상처를 내고 만 것이다. 쓰면서도 이 생경한 고통의 감각이 떠올라서 소름이 돋는다. 상처입은 손가락에 마데카솔을 듬뿍 짜 얹은 뒤 밴드로 꽉 동여매고 3일을 보냈다.

 

고작 엄지손가락에 생긴 상처였으나 밴드를 감고 있는 기간 내내 나는 상처의 감각을 끊임없이 느꼈다. 손씻거나 물건을 들 때, 노트북 타이핑을 하거나 샤워를 할 때 모두. 내 몸의 말단에 위치한 신체 부위가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따갑고 욱신거렸다.

 

세포들이 열심히 재생된 결과 이제는 거의 다 아문 엄지손가락을 보면서 문득, 학창시절 심리학 교양 수업에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몸은 이별의 고통을 신체의 고통처럼 받아들인다는 것.

 

실제로 그렇다. 우리가 누군가와 이별하는 동안 육체적 고통은 실재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신체가 코르티솔이나 에피네프린 등 많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방출하기 때문에, 정신적 불안이 육체적인 것으로 이동하게 된다. 나의 엄지손가락처럼 가시적인 상처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헤어지는 것만으로 사람은 큰 아픔을 느낀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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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예술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MARINA ABRAMOVIĆ)' 역시 생생한 아픔들을 겪었다. 유년기의 아픔, 연인과의 이별 등. 그러나 그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픔을 극복했고, 현재는 그 누구보다 건재한 모습으로 행위예술의 대가라 불린다.

 

그녀의 눈빛에 실린 총기를 따라서, 그녀가 상처를 마주했던 자세를 배우면, 언젠가 찾아올 아픔 앞에서 우리는 조금 더 침착할 수 있지 않을까.

 

 

 

1946~1975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1946년 11월 30일에 세르비아(구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은 그다지 화목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고 결국 아버지는 1964년 마리나가 18살일 때 집을 나간다. 어머니 역시 자녀를 군대식으로 통제하였기 때문에, 한번도 사랑받는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마리나는 훗날 본인의 유년기를 회상했다. 그녀가 말하길, 본인의 어린 시절은 종교나 공산주의에 대한 희생이 전부였다고.

 

미술 아카데미에에서 공부를 마친 마리나는 본격적인 예술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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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10 (Rhythm 10) (1973)

 

 

20개의 칼 중 하나를 골라서 쫙 편 손가락 사이 사이를 움직이는 행위. 손에 칼이 찔리면 나머지 칼들 중 하나를 골라 다시 시작하는 「리듬 10 (Rhythm 10)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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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의 입술 (Lips of Thomas) (1974)

 

 

나체의 상태로 식탁에 놓인 꿀과 포도주를 마시고 난뒤 크리스탈 잔을 깨뜨린다. 그리고는 면도날로 자신의 배에, 공산주의의 상징이기도 한 별을 새긴다. 그런 뒤 식탁 위 채찍으로 본인의 등을 때리고 난 후, 십자가 모양의 얼음에 등을 대고 눕는다. 이 때 천장에 틀어진 히터로 인해 얼음은 조금씩 녹고, 별모양의 상처는 점점 더 심해지는, 「토마스의 입술 (Lips of Thomas)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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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0 (Rhythm 0) (1974)

 

 

「리듬 0 (Rhythm 0) (1974)」에서는 관객이 능동자, 마리나는 수동자가 된다. 그녀는 여섯시간 동안 대중 앞에서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탁자 위에는 72개의 물건이 나열되어 있다. 장미, 깃털, 꿀, 채찍, 올리브오일, 가위, 해부용 칼, 총과 탄알 등.

 

관객은 이 물건들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6시간 동안 마리나의 신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깃털로 간지럽히는 수준에 머무르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칠어졌다. 장미의 가시를 배에 꽂고, 옷을 찢고, 심지어는 머리에 총을 겨누는 사람도 있었다고.

 

 

 

1976~1988


 

앞에 나열한 퍼포먼스들은 대부분 급진적이고 가학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별로 인한 고통이 아닌 신체의 고통들이었다. 본인을 이렇게 몰아붙여야 할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 같은 행위예술을 꿋꿋이 해나가던 마리나는 1976년에 특별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바로 네덜란드에서 만난 '울라이(Ulay)'

 

당시 유명한 행위 예술가였던 울라이를 만난다. 그들은 운명처럼 만났고, 생일 역시 같았다. 그녀가 퍼포먼스를 하면서 생긴 상처를 치료해주고,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면서 그들은 함께 살면서 12년간 공동 작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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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 에너지 (Rest Energy) (1980)

 

 

그들이 함께 한 작품 중 유명한 「정지 에너지 (Rest Energy) (1980)」 . 언뜻 보면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그들은 활과 활시위로 본인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울라이는 활시위를 당기고 있고, 마리나의 가슴께를 향한 화살, 활에 지탱하는 마리나. 한 쪽이 균형을 잃거나 실수하는 순간 금방이라도 관계가 아스러질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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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The Lovers) (1988)

 

 

12년동안 함께 사랑하고 작품을 하던 그들의 끝은, 꼭 그들처럼 예술적이었다. 그들이 함께한 마지막 작품인 「연인들 (The lovers) (1988)」 이 바로 그것이다. 헤어지기로 결심한 그들은 만리장성의 양 끝에서 시작해 중간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래서 마리나는 황해에서, 울라이는 고비사막에서 시작해 90일간 각자 2500km를 걸었고 결국 만리장성의 중간지점에 만나서 악수와 포옹을 한 뒤 각자 갈길을 간다.

 

 

 

1988~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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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성숙할 수 없는 이별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마리나가 회고하는 이별의 순간은 굉장히 허무했다고. 마리나와 울라이가 헤어진건 마리나가 40세일 때의 일이였는데, 그제서야 되돌아보니 본인이 할 수 있는 현실 속의 일들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관계가 찢겨져 나간 허망함과 동시에 그녀는 본인의 자아가 텅 비어있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하다못해 은행의 간단한 일 처리 방법도 모르는 자신을 보며 마리나는 더 깊은 허무함에 빠졌다.

 

그때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돈을 충분히 들고 파리에 가는 것이었다.

 

네일아트를 받아보고, 헤어샵에서 머리도 하고, 값비싼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구입하면서 그녀는 스스로가 부여하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깨달았다. 흔히들 장신구, 명품 옷은 사치와 허영심의 상징이라고들 하지만, 이별의 아픔에 허덕이는 누군가에게는 본인을 토닥여줄 수 있는 푹신한 곰인형이 될 수도 있는 것.

 

훌쩍 떠난 파리 여행은, 그녀의 텅 빈 마음을 데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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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여기 있다 (The Artist is Present) (2010)

 

 

그로부터 22년 뒤, 2010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인 모마(MoMA)에서 회고전을 갖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예술가는 여기 있다 (The Artist is Present) (2010)」 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3월 14일부터 5월 31일까지 3개월 동안 하루 8시간 가까이를 의자에 앉아서 관람객의 눈을 마주하는 행위예술이었다.

 

어느 날, 그녀의 연인이었던 울라이도 의자에 앉는다. 그들은 1988년 만리장성 등정을 끝으로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기에 실질적으로 22년만의 만남이었다. 둘의 눈빛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너울거렸고, 마리나와 울라이는 손을 잡기도 했으며 마리나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녀의 찬란한 커리어를 훑어보니 상처들은 그녀의 인생에 있어 그리 큰 장애물이 되지 않았던 듯 싶다. 오히려 그녀의 작품에 동기가 되어주었던 걸 보면. 유년기 공산주의로 인해 받았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소울메이트같았던 연인을 떠나보내는 것 역시 작품으로 그려냈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그녀의 작품 속 단단한 눈빛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아픔들을 겪든지 간에 결국은 살아진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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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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