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랑을 읽는 법 [영화]

파블로 네루다에게.
글 입력 2020.10.0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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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읽는 법

 

파블로 네루다에게

 

 

무언가를 사랑할 때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순간들이 있습니다. 감정은 순간이지만 글은 영원하기 때문에 사랑이 떠나가더라도 쓰인 글을 읽으면 그 때의 사랑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 무언가에 대해 담아내는 것은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이 이미 가지고 있는 본질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큰 파도, 절벽의 바람,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고통의 성모, 파블리토의 심장소리.

 

모두 제가 발견하게 된 것들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선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져버리고 만다고 하셨지만, 제게 시란 이 모든 것들을 가슴으로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과 내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 가끔은 이름을 묻고 혼자 속삭여 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부라도 사랑은 있지 않느냐 물으셨지요. 저는 여태껏 어부의 사랑을 해 왔습니다. 표현하지 않고 넓은 바다에 담아두는 사랑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시와 은유는 제게 또 다른 사랑의 방식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본질을 발견하고 이것을 은유가 담긴 시로 써 내려가는 것은 제 삶에, 그리고 내가 사랑한 것들에 대해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시는 남아있고 제가 지나쳤던 것들이 가슴에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일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시를 쓰느라 고민을 하고 어두운 밤하늘과 달을 바라보며 연필을 잡는 일이 이렇게 큰 의미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여태껏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둘러보기 시작하면서 자칫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담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저는 사랑을 읽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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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떠나가시고 저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셔도 저는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원망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요. 저는 제게 사랑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제 주변은 이제 시로 가득 넘쳐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시가 필요로 해지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곧 있을 집회에서 대중들 앞에 제가 쓴 시를 읽게 되었어요. 과거의 저라면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겠지요.

 

제가 연단 아래로 내려와도 제 시는 사람들에게 계속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배운 시의 아름다움이 사람들에게 과거의 제가 그랬듯 지나쳐왔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만들었으면 한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요?

 

선생님이 이탈리아에 놓고 가신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본질을 사람들이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큰 희생도 필요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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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 기회가 되신다면 이탈리아에 방문해 주세요.

 

와서 제 사랑스러운 아들 파블리토와 베아트리체도 만나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쯤이면 한가로운 오후의 바닷가에 앉아 파도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시들도 써 내려갈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새롭게 사랑하기 시작한 이탈리아를 선생님께도 다시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몸 조심하세요.

 

 

마시모 트로이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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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 포스티노를 감상하고 마시모가 새로이 느낀 시와 감정들에 대해 편지 형식으로 작성해보았으며 영화 후반부 집회 참석 전 남긴 편지로 후에 이탈리아에 다시 돌아온 파블로에게 남긴 편지라 가정하였다.

 

한때는 주변에 존재하기만 했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존재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마시모의 벅찬 감정을 표현하긴 부족하지만, 그의 사랑과 존경이 잘 느껴질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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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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