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전시를 보고 오면, 전시의 내용-작품에 대한 인상, 작가의 특징 등-은 물론이고 전시 공간과 전시를 찾아가는 길에 본 풍경들이 오래 기억에 남곤 한다. 이런 곳에도 전시 공간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지 못한 장소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를 본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미술 전시’라고 하면 대부분은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예술의전당처럼 규모가 큰 국공립기관을 떠올리겠지만,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도시의 골목 곳곳에서도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글에서는 망원동과 서교동 골목에 자리 잡은, 작지만 매력적인 세 곳의 전시공간을 소개하려 한다.
별관
망원우체국 사거리에서 망원시장을 지나 건물 네 채 정도를 지나치면, 전시 공간 별관이 자리 잡은 상가가 있다. 작가 안부(Anbuh)가 2018년 문을 연 전시공간 별관은 외관상으로는 전시가 열리고 있을 거라 상상하기 어려운,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상가 2층에 있다.
이 건물이 맞는지 반신반의하며 계단을 반 층 올라가면 전시 안내문이 놓여 있는 테이블이 있고, 또 몇 계단을 올라가면 여느 전시공간과는 다르게 투명하지도, 열려 있지도 않은, 마치 가정집 대문처럼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철문이 나온다.
로비에서 티켓을 받고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입장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에 익숙한 관람객에게는 별관 전시에 입장하는 것이 신선한 경험이 될 것이다. 가정집이 있을 것만 같은 상가 2층에서, 안내원의 허락 없이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전시를 보는 일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다.
철문을 열면 눈앞에 불쑥 등장하는 별관의 전시실은 10평 정도의 화이트 큐브다. 단조로워 보일 수도 있는 이 공간을 흥미롭게 하는 것은 벽면의 유리창과 그 창을 덮고 있는 벽체다.
9월 5일부터 9월 20일까지 열린 이현창 개인전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서는 두 쪽의 벽체를 모두 열고, 그 벽체에 작품을 부착하는 식으로 공간을 활용했다.
예술공간 의식주
예술공간 의식주는 망원역 인근의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박민수, 조안나, 박윤정 작가가 2017년 문을 연 예술공간 의식주는 ‘미술관’보다는 ‘집’에 가까운 모습으로 관람객들을 맞는다. 실제로 사람이 살던 주택을 리모델링한 이 공간에는 ‘거실’과 두 개의 방이 있다. 관람객은 정해진 동선 없이, 집에 있는 것처럼 방과 방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전시 공간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낮은 천장도 공간 특유의 아늑함에 한몫한다. 방마다 있는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작품을 자연스럽게 비추는 광경도 인상적이다.
‘의식주’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공간은 예술작품을 일상적인 풍경에 자연스럽게 끌어다 놓는다. 작품과 관객 사이의 거리감도 이곳에서만큼은 허물어진다.
9월 8일부터 9월 20일까지 열린 유해나 개인전 <느린 땅을 밟는 빠른 발>에서는 작가의 회화 작업이 벽에 걸리고, 바닥에 놓이고, 창문에 부착되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전시되었다. 마치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온 듯 자유분방하게 놓인 작품들은 공간 자체가 주는 친밀함과 편안함을 한층 더 부각한다.
합정지구
2015년 개관한 합정지구는 지나치기 쉬운 한산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앞서 소개한 두 공간이 가정집 같은 인상을 준다면 합정지구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처럼 보인다. 건물 1층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입방체의 공간은 백화점 쇼윈도처럼 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행인들도 전시된 작품을 볼 수 있다.
1층의 전시는 지하로 이어지는데,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1층의 전시공간과 비슷한 크기의 공간이 나온다. 9월 18일부터 10월 18일까지 열리는 김진주 개인전 <지진계들>에서 이 두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1층에는 작가의 회화와 설치, 영상작업이 전시되었고 지하 공간에는 영상 작업과 함께 작가의 작업에 관한 추가 정보를 보여주는 아카이브가 진열되었다. 1층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전시의 흐름이 관람객이 습득하는 정보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자칫 불편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분할된 전시 공간을 적절하게 활용하였다고 느껴지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