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vs. 작가: 무엇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글 입력 2020.10.01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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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작품이 한 점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을 창작한 작가가 한 명 있다.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작가의 예술성을 증명해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은 해당 작품의 작가에게로 향했다. 도대체 이처럼 대단한 작품을 창작한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작가 본인, 그리고 그의 삶을 다룬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알고보니 작가가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부도덕적인 행실을 범했던 것이다. 순식간에 작가를 향한 동경의 시선은 싸늘한 눈초리로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작품은 남아있다. 이제 이 작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너무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나머지 자신의 삶, 심지어 가족까지 버리고 예술가의 삶을 선택했다. 나는 그를 보며 두 가지의 양가감정을 느꼈다.

 

첫 번째, 자신의 꿈을 향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

두 번째, 자신의 꿈을 향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무책임한 사람.

 

예술적인 관점에서 찰스 스트릭랜드는 너무나도 숭고한 결단을 내렸다. 그의 결단은 범인(凡人)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단한 것이었다. 쉽지 않은 결심을 실천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삶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칭할만 하다. 자신의 꿈을 살아내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쳤던 그의 작품이 궁금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순차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찰스 스트릭랜드의 선택은 너무나도 극단적이었다. 아무리 원하지 않았던 삶이라 할지라도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사실을 변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었다. 이 세상 모두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 그도 알았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선택이 야기할 아픔은 뒤로 한 채 꿈을 선택했다.

 

작품에 초점을 맞추면 그는 걸작을 남긴 훌륭한 예술가였다. 작가에 초점을 맞추면 그는 손가락질을 받아 마땅한 비정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둘 중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일까?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작가의 존재는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작가 역시 작품의 일부이기 때문에 작가의 존재 또한 작품 해석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일까?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개입 여부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작품을 창작하는 대상, 그리고 감상하는 대상이 아직까지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예술과 사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의 작품을 바라보자니 작가의 사회적 행실이 눈에 밟힌다. 그렇다고 작가의 사생활을 작품에 투영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감상의 태도인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양상은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말 그대로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한 점의 작품을 두고 자유로운 감상을 전개할 수 있지만 '예술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에 확실하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슨트의 필요 여부' 또한 같은 맥락 위에서 고민해볼 수 있는 논의이다. 작품을 감상함에 있어 도슨트의 설명이 가미된다면, 작가의 입장에서 작품을 바라보며 보다 깊이 있는 감상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작품 본연에서 우러나오는 직관적인 감상은 누릴 수 없다. 단 한 줄의 설명만으로도 프레임이 씌워지기 때문이다.

 

작품과 작가, 둘 중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인가?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도통 답을 내릴 수 없다. 어쩌면 그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를 문제화하는 이유는 작품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 중 작가의 입지는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 다시 한 번, 작품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어 사람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작가주의'라는 용어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작품을 감상한다는 행위에는 필연적으로 작가가 개입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작품을 마주하며 발생하는 수많은 역동 속에 작가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불편한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작품이 아닌 작가를 향한 불편함일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가는 작가가 있다면, 그것은 작가가 아닌 작품을 향한 호감일지도 모른다. 상호보완적인 작품과 작가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감상을 이어간다면, 현재 느껴지는 감정의 근원을 더욱 풍부한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감상이란 결국 감정을 느끼는 것이니까. 그 감정이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굳이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분명 도움이 되는 작업일 것이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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