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쩌면 나도? 합리적 괴수 – 우리는 달려간다 [도서]

글 입력 2020.10.0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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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베이컨 자화상.jpg

프란시스 베이컨, 자화상, 1971년, Oil on cancvas

 

 

 

우리는 달려간다



박성원의 소설집 <우리는 달려간다>는 꽤 오래된 소설집이다. 수십 수백년 전에 쓰여진 고전들도 읽히는걸 보면 2005년 7월에 초판된 이 책은 나이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닐수도 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의 트렌드나 사회상을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들이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구시대의 이야기가 되어버릴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다시 꺼내든 것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그 속의 이야기까지 낡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이 보여주는 문제의식은 시간이 지났어도 희석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아직 건재하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실존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보다 인간의 선택과 딜레마에 대한 문제를 훌륭하게 담아내는 작가이다. 특히 ‘긴급피난’ - ‘인타라망’ 두 편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당황스러움을 느끼기 십상이다. 흡입력 있는 문장에 이입하다보면, 어느새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했던 자신이 ‘합리적괴수’가 되어버렸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벌어지는 ‘사건’ 혹은 ’사태’ 앞에 작품 속 인물들은 무력하기만 하다. 예컨대 소설에 수록된 단편 중 하나인 ‘긴급피난’에서 이 사태의 원인은 불가항력적이다.

 


“도대체 내 죄가 무엇이라고. 기껏해야 내 죄는 사슴을 피하다 자동차를 제대로 제어하고, 조종하고, 통제하지 못한, 그것도 눈 때문에 벌어진, 죄밖에는 없지 않은가.”(p.25)
 


불가항력적인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 사태 앞에서 아무리 노력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려고 해도 참혹한 형태의 미궁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합리성을 추구할수록 스스로의 이익(혹은 변호)을 위해 괴수가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설핏 고개를 들어 바라본 유리창에는 합리적인 괴수가 보였다.”(p.28)
 


소설에서 주목할 부분 중 또 하나는 치밀하게 짜여진 서사에서 나타나는 인물의 반응이다. ‘긴급피난’과 연결되는 작품인 ‘인타라망’의 결말에서 남자는 두려움에 휩싸여 신은 있으라! 라고 외친다. 신이 있으면 자신의 무죄와 결백함을 증명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소설의 시점이 끝까지 1인칭인 것처럼 남자의 사고도 끝까지 1인칭이다. 그러나 자신의 결백을 신의 권위까지 빌려 주장하기에는 그도 이미 범죄자이며, 살인자이지 않은가. 이처럼 박성원 작가의 작품 <우리는 달려간다>의 주제는 미궁으로 달려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진실이다.

 



겹의 스토리텔링



앞에서 잠시 언급한 <긴급피난> – <인타라망>으로 이어지는 두 편의 이야기는 이 소설집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다.. 특히 <인타라망>이라는 작품은 독특한 스토리텔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겹의 스토리텔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의 구조로 겹겹이 이루어진 소설의 구조는 흥미롭다.


이 겹의 가장 안쪽에는 캐딜락에 탄 백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타라망’이라는 제목의 책 속 인물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흑인 폭동 당시 통행금지 시간에 방위군이 있는 초소로 캐딜락 하나가 다가온다. 방위군들은 10초 안에 라이트를 끄라고 명령했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고 결국 아흔여덟 발이나 쏘아서 그들을 몰살시켜 버렸다.


그런데 사실 캐딜락은 안전상의 이유로 버튼을 누르고 불이 꺼지기까지 12초가 걸리게 설계되어 있었다고 한다. 캐딜락 속 사람들은 흑인들의 폭동을 피해 도망가다 방위군을 만났으니 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죽임을 당한다. 이 캐딜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은 두 남자인데, 책의 끝부분에서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가 감옥 안이고, 두 사람은 사형수라는 것이 밝혀진다.


먼동이 밝아오고 사형집행관이 그들을 향해 걸어가지만, 사형집행관이 그들을 향해 걸어갈 때까지도 두 사형수는 그 날 오전에 자신들이 사형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마치 그들이 이야기하던 캐딜락 안에 있는 백인들이 자신들이 곧 죽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여기까지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책‘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이야기를 한 남자가 69일 만에 깨어나 침대에 누워있는 주인공에게 들려준다. 둘은 이야기를 나누며 69일 만에 깨어난 주인공의 기억을 복구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점차 주인공이 앞선 단편 ‘긴급피난’에서 긴급피난을 주장하며 가족들에게 해를 끼친 그 인물이고, 남자는 그들의 가족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남자는 주인공이 타고 있는 휠체어를 끌고 어딘가로 데려가는데, 그는 앞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남자가 읽어주는 책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인공’ 역시, 자신이 곧 어떤 운명에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캐딜락 이야기’ 그리고 ‘캐딜락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형수들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 속 ‘책의 이야기’와 겹쳐진다.


인타라망은 이 단편의 제목이자 소설 속 남자가 주인공에게 읽어주는 책의 제목이다. 인타라망은 무한히 큰 그물인데, 책에서는 인타라망이라는 거대한 그물을 빌려 세상살이가 그물처럼 서로 촘촘히 엮여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글로 설명하기 복잡할 정도로의 다층구조는 이야기의 이야기 속 이야기가 인타라망처럼 복잡하게 얽혀 소설의 주제의식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긴급피난>에서의 선택의 결과를 <인타라망>에서 심판받는 형태의 구조를 암시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집에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미궁을



<인타라망>의 결말부에서 주인공은 불에 타 ‘에게 축복을’이 사라져 ‘이 집에 들어오는 모든 이‘라는 문구만 남은 액자를 바라보게 된다. 나에게는 이 장면의 ’이 집에 들어오는 모든 이‘가 – 이 소설 속 이야기에 들어오는 모든 이’처럼 읽힌다. 이 소설을 읽는 당신은 합리적 괴수가 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부터 자유로운가? 하고 묻는것만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달려간다. 그것은 자신의 꿈을 향해서이기도 하고, 평범한 삶을 위해 달리는 것이기도 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이거나 달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조차 없는 세상에 놓여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치열한 달리기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도저히 잠시도 멈출 수 없다며,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그곳은 과연 어디일까? 그리고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죽음일까, 실종일까, 합리적 괴수가 되어버린 ‘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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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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