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예술을 통해 보는 꽃의 피고 짐 - 덧없는 꽃의 삶

글 입력 2020.09.27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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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과 죽음은 인간 고유의 것이 아니다. 무릇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매일 같이 보이는 풍경들을 생각해보자.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구름은 어느 순간 눈이나 비가 되어 사라지고, 푸른빛을 뽐내던 나뭇잎은 때가 되면 붉게 물들었다가 금세 낙엽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살아있는 모든 것은 나름의 시간을 살아가며 각자의 삶을 이어 나간다.

 

‘꽃’도 마찬가지다. 꽃은 열매 맺기의 일부지만, 이따금 그 자체로 존재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은 생물의 삶에 있어서 매우 짧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꽃의 개화 시기, 모습, 빛깔, 향기 등에 여러 의미를 부여한다. 심지어 꽃의 이름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도 하곤 한다. 그래서일까. 꽃은 삶에서 마주하는 의례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꽃다발을 통해 결혼같이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거나, 먼저 떠난 이를 애도하는 마음을 표하기도 한다.

 

<덧없는 꽃의 삶>은 삶의 곳곳에 등장하는 꽃들에 대한 경의와 예찬을 표하는 책이다. 작가 피오나 스테퍼드는 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면서 문학과 신화에 등장하는 꽃의 예술적인 의미와 가치를 탐색한다. 책은 ‘꽃’하면 떠오르는 계절, ‘봄’에 대한 작가의 회고를 시작으로 15종의 꽃에 담긴 이야기를 전한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 피오나 스태퍼드의 비밀 정원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었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저자의 직업 때문일까, 꽃에 대한 문장 하나하나가 자세하다 못해 잘 짜인 직물 같다는 인상을 준다. 단순 자연물이 아닌, 삶과 예술을 잇는 매개로써 ‘꽃’을 묘사해나간다. 꽃에 담긴 상징과 자신의 삶에서 마주했던 꽃에 대한 기억 들이 오밀조밀 모여 <덧없는 꽃의 삶>을 완성한다. 저자의 깊은 통찰력을 통해 작품 속에 있는 꽃의 존재와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명화 속에 담긴 꽃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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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첼리의 <봄(Primavera,1478)>에서 꽃은 영원한 계절의 순환을 의미한다.

 

꽃무늬 비단옷을 입은 여신 플로라를 중심으로 삼미신(三美神)과 클로리스(chloris)가 서 있다. 생명과 생식에 대한 찬양을 표현하는 그림인데, 만개한 꽃을 통해서 봄의 생명력과 무한한 번영을 상징한다. 보티첼리의 그림을 시작으로 각각의 장에서 꽃에 대한 소개와 그것이 표현된 작품을 해설한다.

 

 

존워터하우스.png

 

 

수줍게 봄을 알리는 꽃으로 ‘수선화(Daffodils)’가 있다. 꽃이 피기 전에는 풀과 비슷하여 구분이 어렵지만, 꽃이 피고 나서는 샛노란 색이 마치 ‘이제야 봄이 왔음’을 알리는 것만 같다. 수선화가 그려진 대표적인 명화로는 존 워터하우스의 <에코와 나르시스(Echo and Narcissus,1903)>가 있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던 나르시스를 표현한 작품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젊은 청년의 허영을 표현한다. 작품의 아래쪽을 보면 수선화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연못가의 수선화 한 송이로 남게 되는 그의 말로를 대변한다. 동시에 그에게 외면받은 님프의 애처로운 표정도 인상적이다.

   

장미는 존재 자체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붉은 빛의 꽃잎은 장미의 색과 향기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장미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장미’라는 범주로 하나의 상징을 정하기에 품종과 그것이 의미하는 매체 속 장미의 모습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장미는 의미가 워낙 풍부하고 상징적인 형상이어서 이제 아무 의미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장미의 이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인용한다. 또한, <앨리스>에 등장하는 장미정원을 언급하면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지만 가닿기 어려운 환상의 장소임을 각인시킨다.

 

이렇듯 장미는 예술 속에서 신비의 장소, 혹은 존재하나 너무 강렬하기에 허상에 가까운 것으로 표현되곤 한다. 실제로도 장미의 품종은 무수히 많기에 ‘붉은 장미’라는 하나의 표상으로 대표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저자는 자신이 기억하는 장미의 향과 품종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같이 풀어내면서 다채롭기에 독보적인 장미의 오묘함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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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반 고흐의 <해바라기(Sunflowers)>, 클로드 모네의 <양귀비 들판(Les Coquelicots,1873)> 등 명화에 등장하는 꽃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언젠가 비밀의 정원에 간다면


 

<덧없는 꽃의 삶>을 읽으면서 책을 통해서 ‘정원 여행’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분명 문학, 신화, 예술로 읽는 꽃의 이야기인데, 마음은 이미 영국의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서 서술만으로도 누군가 아주 열심히 가꿔 놓은 정원에 초대되어 한 송이 한 송이씩 설명을 듣는 기분이 든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느낌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문학, 신화, 예술은 작가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이야기 소재에 불과해진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담과 예술은 매우 매끄럽게 융화되어 꽃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 생생함을 만든다.

   

초여름 호수 지방에서 풍요롭게 자라는 폭스글러브의 자태를 내다볼 수 있고, 잉글랜드의 보리밭과 목초지 사이에 군락을 이룬 라벤더 사이에서 짙은 향을 맡을 수 있고, 눈부신 햇살 아래 붉게 타오르는 양귀비 들판을 거닐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덧없는 꽃의 삶>을 통해서 가능하다.

 

책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경험하지는 못하지만, 계절의 변화, 시간의 흐름, 창조의 시작을 접해보길 권한다. 이제껏 무심하게 보았던 거리의 꽃들이, 명화 속 꽃들이 더는 예전과 같이 느껴지지 않게 될 것이다. 그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덧없는 꽃들의 삶’ 속으로 빠져보자.

 

 

 

본문 중에서


 

꽃들은 놀라움을 실어 나른다. 해마다 꼭 같은 장소에 피어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꽃들이 해마다 새롭게 보이는 요령은 쉽다. 실제로 새롭기 때문이다. 꽃들의 연약함은 그들의 투명한 꽃잎, 섬세한 덩굴손, 금빛 꽃가루로 충분히 드러난다. 그토록 많은 꽃들이 해마다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꽃들은 중요한 삶의 순간마다 늘 우리와 함께한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축하하는 선물로, 결혼식에서 신부를 돋보이게 하는 부케로, 죽은 자와 무덤까지 동행하는 화환으로, 애도자를 위로하는 추모의 꽃으로. 꽃들은 특별한 의식의 의미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모두에게 공평한 자연의 경로를 상기시키기 위해, 그리고 중대한 사건이 기억과 앨범으로 자리 잡은 뒤에는 사라지기 위해 호출된다. 사람들이 언제나 본능적으로 아는 것처럼 나뭇잎과 꽃잎은 우리를 정돈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피오나 스태퍼드 Fiona Stafford

 

옥스퍼드대학교 영문학 교수이다. 낭만주의 문학(특히 윌리엄 워즈워스, 제인 오스틴, 로버트 번스, 존 키츠, 존 클레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문학, 현대 시, 환경인문학, 자연에 관한 글, 문학과 시각예술 등을 연구한다. 학술서와 논문 외에도 신문과 문예잡지, 미술책, BBC 라디오 3의 〈에세이The Essay〉 시리즈와 자연 에세이 선집에도 글을 썼다. 저서로는 《길고 긴 나무의 삶》과 《제인 오스틴의 짧은 일대기》가 있다.

 

 

옮긴이 강경이

 

영어교육과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좋은 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번역 공동체 모임 펍헙번역그룹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길고 긴 나무의 삶》 《스탠드펌》 《철학이 필요한 순간》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 《걸 스쿼드》 《과식의 심리학》 《천천히, 스미는》 《그들이 사는 마을》 《오래된 빛》 《아테네의 변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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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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