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의 일기] 학교 가지 않고 예술 할 수 있을까?
-
“학교 가지 않고 예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아마 대부분 사람들의 대답은 ‘Yes’가 아닐까.
특히 예술이라는 분야가 단순 지식 습득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쌓고 숙성시키고 언어들을 찾아내어 표현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학교를 다녀보니 그 안에서 배우는 것이 물론 즐겁고 보람차지만, 가끔은 공회전하듯 아무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낸다는 생각도 든다.
또 졸업한 후에는 전혀 다른 사회가 내 눈앞에 펼쳐진다. 학교 졸업하면 바로 취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유용할 줄 알았는데, 우선 그런 것들은 차지하고 당장 먹고 살 궁리부터 해야 하는 게 현실일 수도 있다.
학교라는 커뮤니티
학교라는 곳이 나에게 버거웠던 적이 많다. 그래서 그토록 원했던 학교를 벗어났으나 오히려 나는 상당한 고립감을 느꼈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보내다가 갑자기 혼자가 된 느낌이었다. 이제는 무언가를 같이 할 수 있는 동료들을 찾기가 너무 어려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결국 다시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좋은 커뮤니티를 찾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 반대였다. 교수의 위계, 토론이나 생각의 확장 없이 오로지 테크닉만을 강화하는 수업, 그 속에서의 경쟁… 효율적으로 취업 인재들을 만들어내는 시스템 속의 부품이 된 기분만 남았다.
특히 대학이라는 게 커뮤니티보다는 일종의 카르텔처럼 작동하면서 서로를 구분 짓고 자신들의 특권을 더 견고히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뒤로 다시 많은 커뮤니티들을 찾아다녔고, 지금은 여러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친구들과 서로를 감각하고 이해하는 시간들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커뮤니티는 각자의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이것들을 말해도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아닐까 싶다. 잘라내고 깎아버리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커뮤니티에서 어떻게 슬프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군다나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20대라는 이유로 그것들은 별것 아닌 것, 그 시절만 지나면 다 해결되는 것이 되어 버리는 듯하다. ‘미숙하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너네가 아픈 건 다~ 청춘이라 그래~ 라는 말로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 누구나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학교가 주는 것
학교를 다니면서 얻게 되는 것도 분명 있다. 나의 경우는 그것이 ‘안정감’과 ‘자립을 위한 유예기간’이었다. 안정감과 자립을 돌아보면 그것은 지지와 금전적 뒷받침하는 두 가지로부터 오는 듯했다.
우선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주어진 몇 년 동안의 시간이 유예기간처럼 여겨지고, 이 시간 안에서 어쨌든 무엇을 해도 괜찮다, 라는 시선이 어느 정도 있는 듯하다. 그리고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부모님의 경제력으로 나는 매 학기 빠져나가는 어마어마한 등록금을 감당할 수 있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이것들은 대학이 나에게 주었다기보다 가계 소득과 친구들이 나에게 준 것들이다. 절대 공평하지 않다. 이미 기업화된 대학에서는 질 낮은 교육의 대가로 금전적인 것을 요구하고 자립과 안정감은커녕, 삶을 뽑아 먹는다. 각자가 처한 상황의 맥락에 따라 다르다. 교육은 모두가 공평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던가. 본디 목적인 교육의 역할을 잃어버린 지금은 대학은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는 걸까.
반대로 이런 지지와 금전적 뒷받침이 있다면, 그것이 꼭 학교가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자립할 수 있고 그 자립을 확장시켜나가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차별이 난무한다. 청소년의 경우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공모전과 봉사활동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학교라는 제도권을 벗어나는 순간 자립의 기회, 경험의 기회 또한 앗아간다.
대학의 경우도 비슷하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이 있고, 대외활동이 있다. 심지어는 2년, 3년, 4년제를 기준으로 지원 조건을 가르기도 한다. 학교에서 공모전이나 봉사활동, 대외활동에 대한 것들을 가르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학교라는 제도에 속하였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경험과 지지를 빼앗는 현실에 답답함이 밀려온다.
예술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다시 예술대학 이야기로 돌아가서, “학교 가지 않고 예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내 답이 Yes라면, 이것은 다시 ‘예술대학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대학에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대학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을 담보해야 하는 걸까. 특히 예술대학 졸업생의 경우 다른 계열과 달리 자신이 졸업한 과와 관련된 직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지금 예술대학의 역할은 이러한 졸업 후의 삶과 교육과 현장을 잇는 경험 제공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술대학 현실을 보면 그것도 아니다. 문화예술의 경우 자생적으로 먹고사는 것 자체가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 졸업 후에는 대부분 지원 사업을 많이 넣는데 사실 대학에서는 이런 부분을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상 졸업 후의 창작 활동은 오로지 자신에게 부여되는 일인 것이다.
게다가 예술의 경우, 사고와 그에 따른 표현이 있다면 그것을 작품이라 말할 수 있음에도, 예술대학 내에서의 창작 활동은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배제되는 공모전도 있고, 대학졸업전시는 전시 경력으로 인정해주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면 결국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대학, 예술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교육? 졸업 이후의 삶을 책임져주는 곳? 커뮤니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계속해서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단단하게 만들어진 언어가 결국에는 실질적인 대학의 변화도 불러오지 않겠나. 당신이 생각하는 대학, 예술대학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장소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말랑말랑하고 다채로운 색에서 딱딱하고 무채색의 무언가로 변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느낌이 들기도 전에 욕망을 자아와 동일시해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만드는 사회의 분위기는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요즘 신입생들은 낭만과 불안을 동시에 품고 대학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회색이 되기 전 4년이라는 타이머 안에서 자아실현을 하던, 사회의 요구를 뛰어넘는 스펙을 만들던 누구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아이러니한 공존이 대학 아닐까 생각합니다.
'욕망을 자아와 동일시해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만드는' 이라는 문장이 굉장히 인상깊어요.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다고 하지만, 정말로 내가 그것들을 원했나? 나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공급이 있기에 그에 따른 수요가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요. 한 번도 주체적으로 내 욕구를 관찰해보거나 요구해본적이 없죠. 아주 오랜 기간동안 교육에서는 공급되는 것들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성실한' '학생' 그리고 '학업'이라는 본분을 지키는 '모범'적인 사례로 규정하니까.
그러면서도 분명 그 '유예기간'으로 이야기되는 대학시절(?)이나 대학이라는 공간이 주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그 장점을 더 확장시킬 수 있을지, 그리고 대학이 가진 욕망과 개인의 욕망 사이의 접점을 어떻게 찾아나갈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선은 스스로의 욕망을 제대로 관찰해보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