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지금 실종됐다 – 실종 [도서]

글 입력 2020.09.17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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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그림 / 작가: K2J / 제목: 투명인간(외모)

 

 

 

당신의 실종



어둠이 아스라이 깔린 새벽 3시. 전화가 왔다. 친구의 아내다. 친구가 실종됐다고 한다. 실종이라니, 전쟁에 나간 군인이나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떠난 선원이나, 고고학 탐사나 오지 탐험을 떠난 그런 사람들에게나 어울릴 단어다. 차라리 집에 아직까지 안 들어왔다면 모를까. 실종이라니.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 친구에게 사실 새벽에 산책하는 습관이 있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줬다. 한 번 잠들면 누가 엎어가도 모르는 친구이지만 그렇게 말했다.  사실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니다. 하숙 생활을 두어 달 정도 같이했을 뿐이다.


심한 결벽증이 있던 친구라 비닐장갑을 끼고 생활할 정도였는데, 3년쯤 지나서 연락이 왔었다. 홀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거였다. 조의를 표시하자 올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보다 가족을 하나 구해야겠으니 소개시켜달라고 했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친구에게 전화가 다시 온 것은 얼마 전이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축하한다며 장소와 날짜를 물었지만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제 가족을 구했으니 더 이상 자신의 가족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했다고 한다. 이제 나는 친구의 아내를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를 안심시킨다.


친구의 수첩에는 이렇게 메모되어 있다. “모든 열광 뒤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그 함정을 조심하라. 어쩌면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일”


어쩌다보니 함께 친구를 찾아 나서게 됐다. 그녀는 내가 그의 가게에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그‘처럼 행동해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이처럼 앉아있으면 그이에 대한 무슨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결국 친구는 찾지 못했고, 아내의 간절한 부탁 때문에 오늘 하루만 함께 있어주기로 했다.


술을 함께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실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버뮤다 삼각지대나 전쟁을 예로 들지 않아도 실종은 흔하고 흔한, 사건이라고까지 말할 것도 없는, 지극히 일상적 모습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숫자 2는 숫자 1이 모이고 합쳐서 만들어졌지만 숫자 2와 1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숫자 1은 숫자 2 안에서 실종되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추억도 시간도, 몸 안의 세포도 실종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진짜 자신의 모습은 순간적으로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헤라클레이스토이가 ‘우리는 똑같은 강을 두 번 건널 수 없다’고 말했듯이 말이다.


나는 화장실에서 거울을 본다. 술 때문인지 내 얼굴이 달라 보인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하긴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아침에 본 내 얼굴은 이미 실종되었고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만 보일 테니까. 화장실에서 나오니 그녀가 잠들어있다. 나는 친구처럼 비닐장갑을 끼고 그녀의 몸을 만지며 ‘열광‘한다.

 

욕정이나 욕망이 아니라 열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받치고, 숭배하고, 환호하고, 아무 생각 없이 열광하는.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내가 원하는 평균적인 삶이었다. ...중략... 숫자 1이 사라지면 어때. 그냥 2로 살면 되는 거지. 몸 안의 세포가 죽든지, 실종되든지, 자신의 모습이 어땠는지 모르면 어때. 그냥 현재와 어울리며 현재에 몸을 맡기면 되는 거지. 누가 실종되었건 말건, 누가 사라졌건 말건, 누가 죽었건 말건,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 전혀 중요치 않아.”


“중요한 건 공감하고 동행하는 거야. 함께 가지 못하는 게 실종이지. 자기 자신을 버리고 타인이 원하는 대로 함께 가야만 실종되지 않고 살 수 있는 거야. 이 세상은 그래. 이 사회는 원래 그래. 튀어나온 못은 박히게 마련이야. 모난 곳은 닳게 마련이야. 튀어나간 놈은 실종되게 마련이야. 따르지 않고 처박혀 있으면 실종되고 마는 거야. 그러니 실종되지 않으려면 다 함께 아무 생각 없이 열광만 하면 되는 거야.”


눈을 떴을 때 시곗바늘은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수화기 너머에 말했다. “실종되었어요” 실종이라니. 두 눈 멀쩡히 뜨고 살고 있는데도 실종이라니. 움직일 수 없었다. 내 생각들이 어디론가 가서 실종되었는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열광 뒤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눈을 감으니 근사한 바다가 보였다.




그래도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성원 작가의 소설집 <우리는 달려간다>에 수록된 ‘실종’이라는 단편이다. 짧은 지면에 소설의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소설을 인용해 재편집했다. 박성원 작가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딜레마적인 상황을 부여해 등장인물과 독자를 곤란하게 만드는데 능숙한 작가다.


이 소설에서는 실종이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친구의 아내를 따라 실종된 친구를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엿보이는 것은 대체 가능성이다. 내가 친구의 자리에 있을 수도 있다는 대체 가능성. 친구 대신 친구의 아내가 해준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나 친구의 가게에서 친구처럼 앉아보는 모습. 그녀와 술을 마시고 곁에 있어주는 모습까지 소설이 전개되는 내내 이상한 기류가 느껴진다.


마치 친구의 모습과 주인공이 미묘하게 겹쳐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부추기는 존재(아내)도 주인공 스스로가 아니라 외부에 있으며 그 요구에 자연스럽게 편승하게 된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비닐장갑을 끼고 친구의 아내를 만지며 느낀 것은 욕정이나 욕망이 아니라 ‘열광‘이었다. 동시에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평균적인 삶’이다.


평균적인 삶을 향한 맹목적인 열광. 튀어나온 못은 박히고 모난 곳은 닳게 마련이니까 실종되지 않으려면 세상의 흐름에 따라 열광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소설 속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모든 열광 뒤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그 함정이 바로 실종일까..


세상에서 실종되지 않기 위해 '평균적인 삶'을 열광하던 주인공은 역설적으로 결국 실종되고 만다. 평균적인 삶과 열망 그리고 실종. 소설을 다 읽은 지금도 입가에 몇 가지 단어가 씁쓸하게 맴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실종이라니, 이렇게, 여기 있는데, 바로 여기에 있는데, 대체 실종이라니. 바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평균적인 삶’을 열망하는 동안 어느새 우리는 실종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실종되어 버린 스스로를 다시 찾는 건 쉽게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힘겨운 일이다.


‘눈을 감으면 아주 근사한 바다‘가 보일 테니까. 그리고 그게 훨씬 편할 테니까.

 

그래도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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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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