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지개 시리즈-남색' 베토벤을 좋아하세요? [공연예술]

글 입력 2020.09.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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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

 

무지개에서 남색은 파랑과 보라의 중간색이다. 사전적 의미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남색은 짙은 파랑에 가깝다. 옷 색깔을 표현할 때 navy를 많이 쓴다. 무지개에서 남색은 indigo다. Bluish Violet이라고도 한다. 남색은 무지개 색깔 중에도 존재감이 희미한 편이라 무지개를 그릴 때 많이 생략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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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藍色)을 한국말로 바꾸면 ‘쪽빛’이다. 쪽이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염료로 물들이면 얻을 수 있는 색깔이 쪽빛이다. 쪽빛은 푸른빛과 자줏빛 사이, 진한 푸른빛으로 요즘에는 보기 힘든 자연의 색이다.

 

남색은 맨눈으로 우리가 들여다볼 수 없는 심해 같다. 깊은 지혜와 깊은 지식을 의미하기도, 미리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과 초능력, 영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색이다. 가능성의 색이다. 무한대의 창조력과 잠재의식, 무의식과 신비, 영적인 세계를 표방하기도 한다.

 

남색을 인테리어에 이용하면 집중력을 높여주는 용도로 좋다. 남색을 옷으로 입었을 때는 지적이고 전문적인 느낌을 준다. 남색이 지나치면 타인과의 거리감을 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냉담하고 경직되어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길 수도.

 

어쩌면 남색은 예술가를 닮아있지 않은가. 예술가의 세계는 마치 어떤 상상력이 발휘될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 같다. 무한한 창조력의 힘을 내뿜을 수 있는 존재, 여러 예술가 중에서도 나는 베토벤을 떠올린다. 클래식에 대해서는 몰라도 베토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할 만큼 그의 명성은 세계적으로 높다.

 

난청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남달랐던 천재 작곡가 베토벤의 초상화는 그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강렬하다. 야무진 눈과 힘껏 다문 입술은 죽을 때까지 음악을 하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와 고집을 보여주는 듯하다.

 

베토벤의 유명한 명성과는 다르게 내가 알고 있는 베토벤은 어떤 인물인지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그에게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해 나는 공연 하나를 봤다. 성동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톡톡 클래식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 이야기>다. 2020년 8월 4일부터 11월 17일까지 진행하는 시리즈 공연이다. 나는 <시리즈 1- 목관과 성악의 세계>를 소월아트홀에서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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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다. 긴 역사 동안 악성(樂聖), 음악의 성인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베토벤의 음악을 조명하는 시간이었다. 도서 <베토벤이 아니어도 좋아>를 읽으며 디지털음원으로 듣는 클래식, LP 음반으로 듣는 클래식, 연주자의 연주를 직접 들어보는 클래식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고 싶어졌다. 그 호기심의 첫걸음이 이 공연이었다.

 

곡에 대한 해석과 베토벤의 일생에 대한 짤막한 소개와 함께 공연은 시작되었다. 베토벤은 6세부터 신동이라고 주목받았던 모차르트와 달랐다. 베토벤의 아버지는 베토벤을 모차르트처럼 만들고 싶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죽어라 시켰고 베토벤의 데뷔 때는 모차르트가 6세에 바로 신동이 된 것처럼 베토벤도 똑같이 만들기 위해 당시 8세였던 베토벤의 나이를 6세라고 속이기도 했다.

 

이번 공연을 통해 클라리넷 소리를 처음으로 직관했다. 맑고 부드러운 음색을 뿜어내는 힘찬 클라리넷 소리는 베토벤의 곡을 더욱 풍성하게 해줬다. '클라리넷 트리오 제4번 내림 B장조 가센하우어 Op.11'와 '클라리넷과 바순을 위한 듀오 WoO27 No.1' 두 곡에서 클라리넷의 아름다운 선율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가센하우어’는 ’거리의 노래‘라는 뜻이다. 밝고 경쾌한 봄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 뜻을 알고 들었을 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클라리넷과 바순을 위한 듀오는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다. 바순 대신 첼로로 연주하는 두 악기의 연주는 그저 신기했다. 첼로가 베이스로 받쳐주고 클라리넷이 그 위에서 춤을 추는 느낌이었다.

 

무대 위의 연주를 관객석에서 본다는 건 들리는 귀뿐만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연주자의 표정과 호흡과 동작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시각적으로도 흥미로웠다. 뮤지컬이나 오페라, 연극과는 다른 클래식 공연만의 아우라를 느꼈다.

 

그다음 곡 리스트는 바리톤 이응광 선생과 이소영 피아니스트가 함께하는 베토벤 가곡들의 행진이었다. 베토벤에게 있어 성악가곡은 흔치 않다고 하는데, 유럽에서 처음 오페라를 접하며 사람이 최고의 악기라고 실감한 적 있어서 악기와의 콜라보에서 성악 솔로는 어떤 기분을 내게 선사할까 기대가 되었다.

 

연가곡 ‘멀리있는 연인에게’는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베토벤이 46세에 작곡했다. 베토벤의 연인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인을 생각하며 쓴 곡이라고 알려져 있다. 22살의 의사선생님이 쓴 시를 가지고 곡을 썼다.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담겨 있는 곡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들으니 낮게 깔리는 목소리와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멜로디가 만나 못내 구슬퍼지기도 했다. 6장의 내용을 조윤범 해설가의 말에 따라 간단하게 추려봤다. 참 예쁜 시였다.

    

 

언덕 위 그녀가 있다. 달려가고 싶다. 새들을 통해 기쁨이, 시냇물을 통해 눈물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새들은 저들을 볼 수 있겠죠. 강물에 그녀의 얼굴이 비쳤으면. 5월은 화창한 봄이다. 나의 봄은 오지 않았다. 내 노래를 받아주시오.

 

 

‘그대를 사랑해’ ‘입맞춤’도 사랑을 얘기하고 있는 가곡이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해오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베토벤을 생각하니 가엽고 측은해졌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찰나의 행복을 선사해주는 소중한 선물이지 않았을까.


마지막 곡은 ‘이 어두운 무덤에’였다. 장중하고 근엄한 분위기로 무거웠다. 사랑에 실패해 여자를 원망하는 슬픈 노래였다. 이 곡을 쓰면서 베토벤의 심정은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 처절했지 싶다.

 

곡의 분위기에 맞춰 각양각색으로 변하는 바리톤 이응광 선생의 목소리와 베토벤의 악보를 정확하게 구현하는 이소영 피아니스트의 피아노 소리에 집중하며 그렇게 4곡을 모두 숨죽이고 감상했다.

 

약 1시간 가량의 클래식 공연이 그렇게 짧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고 이윽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인사하는 두 사람을 보며 가시지 않는 여운을 나는 계속 붙잡고 있었다.

 

베토벤의 일생에 수많은 명곡이 쏟아져 내린 건 역설적으로 그의 삶이 불행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런 말이 있다. 예술가가 벼랑 끝에 내몰릴수록 빛나는 예술이 만들어진다고. 그의 아픔과 고뇌가 예술로 치료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자신이 작곡한 곡을 듣지 못하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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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요즘 클래식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즐겨보고 있다. 잔잔하고 감성적인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드라마다. 아직도 클래식을 잘 모르지만 친해지고 싶어서 끼적여봤다. 베토벤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그의 250주년 생일을 축하하며 하늘나라에서 그가 쪽빛 하늘을 감상하고 있기를 소망한다.

 

 

Welcome to indigo world!

 

 

 

에디터 이지윤.jpg


   

[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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