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코로나 속 일상 되찾기

숨어있던 나의 오랜 일상
글 입력 2020.09.1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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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여행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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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로 하반기에 여행을 다녔다. 여행의 맛을 느끼게 된 게 취직 이후라서, 상반기 동안 작고 소중한 연차를 아껴서 하반기에 나갔다 왔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숙소를 더 싸게 예약할 수 있는지, 공연 스케줄은 언제 올라오는지, 언제 어디서 뭘 먹어야 할지. 가고 싶은 곳을 지도에 표시하고 동선을 짰다. 엑셀을 켜고 표를 만들어 하나씩 정리했다. 그 설렘으로 많은 걸 이겨냈다.


나에게 여행이란 낯선 언어와 상황 속에 내던져지고, 일상과의 접점을 찾아볼 수 없는 장소에 존재하는 일이었다. 많은 익숙한 것들을 뒤로하고 모르는 곳으로 향했다. 겹겹이 쌓인 일상을 탈피하고 비일상적인 찰나를 모았다.


나는 비일상적인 좋은 일을 좋아한다. 일상에 서프라이즈 선물 같은 일이 던져지지 않으니, 내 손으로 지루한 일상을 밀어내고 다른 걸 채워 넣으려고 한다. 평일에 연차를 쓰고 친구와 만나거나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는 걸로 일상을 위로하는데, 제일 정확하고 효과적인 건 역시 해외여행이다. 사소한 순간부터 사소하지 않은 순간까지, 나도 모르는 사이 추억이 당첨된다.


이달의 나는 예매했던 공연도 취소하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미루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연례행사를 준비했어야 할 타이밍에, 반차를 쓰고 공연 갈 준비를 했다가 스스로를 집에 가둔다. 연차가 차곡차곡 쌓였는데 그 좋은 날들을 전부 방구석에서 해치워야 할 판이다.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에 짧게나마 바다를 보고 온 걸 위로 삼아야 하는 걸까, 가을이 되면 경치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이 깨졌다. 계획은커녕 생각마저 사치다. 연차는 써야 하고, 갈 곳은 없다. 상황이 나아진다면야 카페 투어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겠지만 이대로라면 방구석 방학이다.

 

 

 

과거형이 되어버린 어떤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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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날 수 없다면, 가지고 싶은 일상을 끌어오는 수밖에 없다. 여유가 있으면 해보고 싶었던 것들, 한가한 하루를 채워줄 그런 일상. ‘언젠가 시간이 되면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일들. 평소에 평일 조금 떼어다가, 약속 없는 주말 모아다가 했던 일들로 휴가를 채워보기.


오래전, 책장에서 언제 왜 샀는지 모를 손바닥만 한 공책을 발견했다. 그 공책에 하고 싶은 일, 사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하나씩 정리했다. 생각나는 대로 번호를 붙여서 무작정 써내려갔다. 1년에 한두 번, 내가 실행한 일을 확인하고 하나씩 지우는데 시간이 지나서 의미가 없어진 일들도 있고 꾸역꾸역 몇 년을 미룬 일들도 있다. 평생 가도 못할 것 같은 일도 적어뒀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취소선 긋지 않고 남겨두고 있다.


백여 개의 목록에서 몇 가지 할 만한 일들을 찾았다. ‘디저트 만들기’, ‘하루 종일 책만 읽기’, ‘정처 없이 걷기’, ‘위빙 완성하기’ 별 거 아니지만 여유가 없어서 쉽게 시작하지 못한 일들. 정말 너무 사소한데, 계절도 타지 않고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인데 그걸 지금까지 못 하고 있었다.


예전엔 하나의 도전이고 재미였던 요리인데, 이젠 생존을 위해 배달을 선택한다. 장 보는 시간, 조리 시간, 뒷정리까지 생각하면 까마득하다. 초콜릿 그거 하나 만드는 게 뭐라고 설거짓거리가 그렇게 나오고, 티도 잘 안 나는 포장엔 손이 많이 가는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기보다 정성스럽게 번 돈으로 사 먹는 편안함을 선택했다.

 

내 시간을 헐어서 음식이라는 취미를 만드는 것보다 내 통장을 헐어서 사 먹는 게 몸이 편한 일이었으니까. 사실 요리하는 거 재밌었는데.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서 장을 보고 요리해보고 사진 찍고 다음엔 또 뭘 해볼까 고민하는 거.


공강 시간마다 도서관에 가서 아무 책이나 골라 읽었고, 방학이면 동네 구립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었던 책 무겁게 골라서 집에 오곤 했는데. 그때와 지금 같은 거라곤 욕심이 앞서 책을 쌓아두는 일밖에 없다. 책을 너무 안 읽는 거 같다며 방학 때는 독서 시간까지 정해뒀었는데 지금은 책은 저쪽, 나는 이쪽이다.


참 설레는 일이었는데. 요리도, 독서도, 수공예도, 산책도. 여유가 많았을 땐 신나서 시간을 부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잠깐만, 잠깐만 하면서 손에만 쥐고 있다가, 그마저도 못하고 곱게 보관만 했다.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현실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생겼으면, 현실적으로 할 수 있을 일을 찾아야지. 비일상적인 순간을 잡을 수 없다면, 내가 원하는 일상을 가져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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