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을 꺼내 듣는다는 것 [음악]

기억을 듣다
글 입력 2020.09.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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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는 핸드폰 속 플레이리스트. 무조건 다운 받아 음악을 듣던 예전과는 다르게 스트리밍 서비스가 더욱 대중화되면서 내 플레이리스트는 점점 더 길어졌다. 돈을 내고 100개 한정의 곡을 다운 받던 때에는 정말 소중히 고르고 고른 음악들을 담았다. 단 한 곡도 허투로 쓸 수는 없는 법. 그러나 지금은 정기결제를 하면 무제한으로 음악을 스트리밍 할 수 있다. 조금만 괜찮다 싶으면 바로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한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2개의 음악 어플을 쓰는데, 두 곳의 플레이리스트 모두 양이 방대해졌다. 스트리밍이 너무나 편리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때로는 정리 할 엄두가 안 나는 리스트에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맥시멀보다는 미니멀을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글쎄, 도저히 미니멀을 추구할 수 없는 분야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음악을 다운 받던 때에도 이보다 신중히 음악을 고르던 상황이 있었다. 바로 음반을 구입할 때이다. 엄청난 음악 애호가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소소히 즐기는 사람으로써, 집에서도 음악과 함께 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오디오도 구매했고 얼마 전에는 턴테이블도 구매했다. 이 들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음반을 구매해야 했다. 물론 블루투스를 이용해 핸드폰으로 재생할 수도 있고 실제로 많이 쓰고 있지만, 실물로 소장해야 진짜 ‘소장’하는 기분이 드는 사람으로써 음반 구매는 당연한 수순이 되어 버렸다.

 

어떤 친구들은 내가 방대한 양의 음반을 모았다 생각하기도 하지만 전혀 아니다. 오히려 ‘겨우?’라는 생각이나 안 들면 다행일지도. 사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나의 취미생활은 음악 하나가 아니라 모든 걸 사기에는 자금이 부족했으며, 바쁜 일상에 치여 어느 새 잊고 지내기도 했다. 거기에 음반을 구매하는 내 기준에 부합해야 했으므로 아주 천천히 하나 하나 모으게 된 것이다.

 

음반을 구매할 때의 기준은 우선 당연하게도 음악이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마음에 들고 좋은 음악으로는 부족하다. 오래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을 음악, 그것이 내 기준이다. 물론 이것을 고려하고 구매했음에도 생각보다 질려버린 음반들도 있지만, 신중히 생각하고 구매할 수록 더욱 오래오래 그 음악들을 사랑해 줄 수 있어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모은 음반들은 빠르게 늘어가는 수집의 맛은 없지만 오히려 나만의 음악 라이브러리가 형성된다. 이렇게 모은 음반 중 두 가지를 소개하여 본다.

 

 

 

1. [MTV Unplugged], Placebo


 

 

 

영국 락밴드 Placebo의 Mtv 라이브 공연 앨범이다. Placebo의 20주년 기념을 맞이하여 열린 공연으로 단 한번도 라이브로 연주되지 않은 곡 혹은 아주 오래 전에 연주되었던 곡들 위주로 열렸다. 이 앨범에는 그들의 라이브가 생생하게 담겨있으면서도 동시에 라이브를 의심하게 할 만큼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사실 나는 라이브 앨범이나 히트 송을 모아놓은 앨범들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한 아티스트가 앨범을 낼 때에는 그 앨범의 컨셉과 분위기 그리고 곡들의 유기성을 모두 고려해 플레이리스트와 그 순서를 정하는 것인데 위의 앨범들은 그 모든 걸 고려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앨범을 구매한 이유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몇 해전 떠난 유럽여행에서 우연히 필름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그 곳에서 총 2개의 영상을 보았는데, 하나는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로 만나보았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이었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이 라이브 공연이었다.

 

당시의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에 나는 앨범을 구입했고 아주 만족했다. 아직도 이 앨범을 들을 때면 그날 밤의 달뜬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좋은 향처럼 좋은 기억으로 데려가주는 음악이 있다는 건 꽤나 마음에 드는 일이다.

 

 


2. [LP1], FKA Twigs


 

 

 

FKA twigs는 영국의 가수이자 댄서이다. 위 앨범은 데뷔앨범으로, 춤을 추던 그녀가 가수의 길에 들여놓은 첫 발걸음이다. 앨범은 2014년에 발매되었는데 당시의 신선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때로는 괴기에 가까운 몸짓을, 또 때로는 시각적 충격을 주는 뮤직비디오들, 그리고 치명적이고 유혹적인 목소리까지.

 

한참 PBR&B가 뜨고 있던 시기라 장르가 PBR&B로 분류되기도 했으나 왠지 하나의 장르 속에 묶어놓을 수 없는 자유분방함이 있었다. 앨범 또한 신예답지 않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기에 첫 눈에 반한 이후로 약 4년간 내 컴퓨터의 배경화면은 FKA Twigs가 차지했다.

 

이 앨범 이후로도 그녀는 EP와 정규앨범을 내놓았고 그것들은 더욱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LP1에 가장 큰 애착이 가는 이유는 직접 소장함에도 있지만 날 것의 음악에 끊임없이 유혹당한다는 점에 있다. 그녀의 굉장히 얇은 하이톤의 목소리를 지니며 귓속에 직접 속삭이는듯한 창법을 구사한다.

 

그러나 춤 사위는 굉장히 강단있다. 무작정 힘만을 강조하는 춤이라는 것은 아니다. 노래부터 춤까지 자신의 세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멀티 아티스트로써 FKA Twigs는 꼭 뮤직비디오와 함께 접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Kate bush, Björk 등의 아티스트를 좋아한다면 꼭 추천하는 앨범이다.

 

*

 

비록 두 개의 음반만을 소개했지만 소장하고 있는 음반들 모두에 하나하나의 이유와 기억들이 새겨져 있다. 때로는 음악이 아니라 기억을 꺼내 듣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도 소중히 모아갈 기억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책장에 음반들을 틀어 본다.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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