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해자다운 피해자는 어떤 모습인가? [사람]

글 입력 2020.09.1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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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띈 기사 한 줄 ‘자신 성폭행한 친부, 감형 요청한 딸. 법원은 왜 거절했을까’ 2020년 9월 4일 머니투데이에서 발행된 기사이다.

 

 

 

패륜범죄 기사 발췌


 

 

친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이 징역 13년을 확정받았다.

 

노 씨는 2018년 당시 미성년자였던 친딸을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노 씨는 성관계를 해주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칼로 위협해 딸을 수차례 추행하고 딸의 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촬영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인 노 씨의 딸은 1심 재판과정에서 2번의 탄원서와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그 이유는 노씨가 구속된 이후 모친 등 가족이 겪게 된 생활고 때문이다.

법원은 이에 경제적인 타격이 옴과 동시에 고립감, 부담감, 죄책감을 느꼈던 것으로 봤다.

 

“처벌불원서 제출은 가족의 회유로 인한 진심이 아니었고 노 씨에 대한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도 분명히 밝혔다”라는 판단을 덧붙였다.

 

- 기사 중 일부 발췌

 

 
친딸을 성폭행. 성립 불가인 이 단어들은 하루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성폭행이라는 만연한 사건에 무기력함만을 느끼다, 다시금 분노가 차오르게끔 만든 범죄였다.
 
인터넷에 ‘가족 성폭행’이라는 기사를 검색하면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기사가 쏟아져나온다. 외삼촌에게 성폭행당한 11살 소녀, 오빠 성폭력 고소할 수 있나요? 친딸 14년간 성폭행한 부 등 물음부터 외침까지. 이러한 패륜범죄는 예상보다 주위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패륜범죄의 신고율이 낮은 이유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가해자 비율은 친아버지(44.9%), 의붓아버지 (34.7%), 친척(19%), 친오빠(1.4%)의 순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빙산의 일각’으로 본다. 2012년 말까지 친족 성폭행 및 강제추행으로 입건된 사람은 1,970명임에도 신고율은 평균 10% 내외이기 때문이다.

 
신고율이 낮은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신고’라는 자체가 사람을 두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성폭행 피해자들은 2차 가해의 두려움에 떨기도 하며 ‘피해자’라는 프레임에 갇혀 비난을 받는 점까지 우려한다. 이때 가해자가 아는 사람, 특히 가족일 경우에는 배가 되는 것이다.
 
이에 더불어 이런 사건에서의 특이점은 가족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압박을 가하거나 방관을 하기도 한다. 모든 성범죄의 피해자들은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얻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피해자의 모습과 형태를 미리 단정을 짓고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잘못으로 치부한다.
 

 

“네가 먼저 유혹했다.” “너도 문제가 있다.”

 

“신고만 안 했으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피해자인데 왜 다음날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했는가?”

 

 

 

피해자다운 피해자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모습(피해자다움)은 너무나 고정적이다. 범죄자에게는 서사를 부여하고 피해자에게는 후회를 강요한다. 이런 시선은 분명 뿌리부터 잘못되었다. 이는 이전과 앞으로의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이차적 두려움을 심어준다.

 

성범죄 피해자의 성별 대다수는 여성이다. 이들에게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에게는 성차별적 의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 얌전하며 순결을 지켜야 하는 대상 대신 가해자의 입장에 이입한다. 아직도 이러한 인식이 있다. 몇 달 전 쟁점이 된 BJ_피시방 몰래카메라 사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피해자인 여성에게 ‘노출이 있는 옷을 입었다’라는 이유로 범죄를 정당화시키며 가해자는 억울한 이미지를 가진다. 실제로 피해자는 자신의 일터였던 사장, 가해자 친구들, 대중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이는 명백한 성차별주의의 잔해이며 더 심각한 죄를 낳는다.
 
노출이 있는 옷을 입으면 성폭행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미개한 시선은 만연하다. 이는 여태껏 사회가 만들고 방관해온 분위기의 민낯이다.

 

겪어보지 않은 이상 성범죄에 고통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굉장히 깊은 트라우마일 것이고 어쩌면 피할 만큼 피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일상에 우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들에게 “세상 사람이 다 그렇진 않아. 얼른 신고해서 헤쳐나와”라는 쉬운 말은 자칫 폭력일 수 있다. 그러니 주위에서 일어날 수도 어쩌면 겪고 있을 나와 그들을 위해 올바른 사고를 가져야한다.

 

 

가해자가 없으면 피해자도 없다.

피해자에게 향할 비난은 없고, 가해자를 향한 동정은 쓸모가 없다.

 

 
오래전부터 성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부여되는 이미지와 생각들은 피해자에게 악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기억하라. 쏟아지는 성범죄 기사들을 보며 그들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진 않았는지, 2차 가해를 하진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에디터 명함.jpg

 

 

[문소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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