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절망의 그래프

글 입력 2020.09.1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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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상하게도 많이 아팠다. 과민성 방광으로 비뇨기과를 다니고 있고, 돌발성 난청을 시작으로 원인 모를 메니에르병을 얻었으며, 며칠 전엔 눈을 뜰 수 없는 따가움으로 안과를 다녀왔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니, 올해 나는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없는 몸이었다. 아프면 확실히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는 것도 일이고, 아픈 몸은 절대 의지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몸이 아프면서 우울감이 증폭됐다. 사실 원래 감정의 폭이 큰 사람이었지만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수준에서 진행되었고, 변덕스러운 감정 변화를 뱉어내지 않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기에 모든 걸 삼켜왔다.

 

나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한 템포 끝나기 전까지 남에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 일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까지 누구에게 쉽게 말 못 하는 사람, 그래서 혼자 모든 걸 정리하고 나서야 지나간 일을 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게 너무 힘들다. 그래서 지금도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입으로 뱉어내기도 전에 손으로 먼저 쓰고 있다.

 

요새는 모든 게 내 통제 바깥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부정적인 감정의 절대적인 양이 자정 가능한 한계를 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말을 하든 글을 쓰든 그 감정을 퍼내서 버리지 않고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 사실 에세이 탭을 이용해 내 이야기를 꺼내 보는 것도 처음이고 우울에 잠식당한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이다. 모두가 희망과 절망 사이를 진동하며 살아가겠지만, 요즘 나는 전체적으로 절망의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

 

구체적인 사업명을 밝히진 않겠지만, 우리 집은 사람이 대규모로 모이는 종류의 사업을 한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난 후 언택트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법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만 되어도 영업을 할 수 없다. 매출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영업 자체가 아예 금지된다. 불행히도 코로나는 정말로 언제 끝날지 모르고, 일 역시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공부를 하는 것이 굉장한 사치로 여겨졌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흰 종이와 검은 글씨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안 잡힌다. 현실적으로 내가 지금 당장 취업을 할 수도 없고 가계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조바심이 난다.

 

문 틈새로 엄마와 아빠의 대화 소리가 들리고, 도저히 가망 없는 사업과 예측할 수 없는 내일에 숨이 막힌다.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과, 나보다 엄마 자신을 아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그 와중에도 나는 또, 아파서 엄마를 걱정시키는 불효자 된 마음으로 괴롭다.

 

누구보다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은 장녀로서의 책임감과 해결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도돌이표 같은 신세 한탄 후 얻게 되는, 내가 감당해야 할 부담감이 충돌한다. 현실적으로 도움은커녕 아프기만 한 존재가 된 내가 스스로 짐처럼 여겨지는 건 덤이다.


*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고 있다. 몸이 아프지 않은 날엔 없던 자신감까지 끌어와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고, 몸이 아픈 날엔 무기력한 기운으로 몸도 마음도 축 처진다.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에 스치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괴롭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뜬금없이 눈물 연기를 선보이는 아이돌처럼, 밥을 먹다가도 몇 초 만에 눈물이 난다.

 

이런 상태에 이르렀으니 이제 인정하게 된다. 나는 지금 처음 겪어보는 힘든 시기에 와 있다는 걸. 스스로 나를 단단한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지금의 나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정신 건강과 신체 모두 나약한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나의 불안정한 상태를 인정하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지만 이젠 좀 객관적으로 내 상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이었다면 희망과 절망 사이를 움직이며 끝끝내 희망을 바라보겠다고 글을 끝냈겠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그러지 못하겠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공부가 손에 안 잡히고, 집안 사정이 걱정되고, 아픈 나를 걱정하는 엄마가 신경 쓰이고, 그 와중에 멀지 않은 미래에 밥벌이하는 인간은 될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난다.

 

눈을 뜨면 아침이길 반복하니 어느덧 9월 중순을 향해 달리고 있는 시간이 무섭다. 아직 부모님의 보호막에서 벗어나진 못했지만,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됐고 무사히 둥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퍼덕이는 날갯짓이 유효한 것인지 모르겠다. 내 나이 또래의 모두가 최선을 다해 날갯짓에 몰두하고 있기에 고립감은 더욱 심해진다.

 

무엇 하나 특별히 이룬 것이 없는 20대의 원초적인 불안감이 개인적인 상황들과 맞물리며 강화된다. 그렇게 나는 처음 느껴보는 강력한 우울과 무기력으로 젖어 가고 있다.


*

 
이것이 최근 나를 지배한 감정들이며, 몇 날에 걸쳐 쓴 일기를 바탕으로 스크랩하듯 이어 썼고, 글에 담지 못한 말들도 여전히 남았다. 내가 힘들다는 걸 남들이 알았으면 좋겠으면서도 안 그랬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힘들다고 구구절절 썼으면서 또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나만이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의 우울을 타인에게 전파 시키고 싶지 않다. 우울을 떨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걸 알고 이번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이 글도 혼잣말로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생각한다. 지금 당장 희망을 바라볼 수 없는 불건강한 상태이지만, 절망을 계속 파고드는 데 지쳤다. 이제 절망의 늪에 빠진 나를 향해 스스로 손을 뻗는 내가 되고 싶다.

 

힘을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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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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