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벡델데이2020', 영화 산업 속 양성평등을 외치다 [영화]

양성평등주간의 '벡델데이2020'
글 입력 2020.09.0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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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일부터 7일까지는 ‘양성평등주간’이었다. 올해로 25번째를 맞이한 양성평등주간은 1996년부터 여성주간으로 운영되어 오다가 2015년부터 명칭이 변경되어 이어져 오고 있다. 작년까지는 매년 7월 첫 주에 운영되었는데, 올해부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인 ‘여권통문(女權通文)의 날’인 9월 1일을 기점으로 7일간 운영하게 되었다.

 

 


벡델데이2020, 양성평등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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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주간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주관하는 ‘벡델데이2020’의 공식 행사가 열렸다. 양성평등주간 사상 첫 영화 관련 기획으로, 9월 4일 오후 7시 네이버에서 온라인으로 방송되었다.

 

1부 심포지엄에서는 지난 10년간의 한국영화를 돌아보고 양성평등을 지향하기 위해 한국 영화계가 풀어야 할 과제를 모색한다. 조혜영 평론가가 한국영화 속 양성평등 현황을 분석한 ‘스크린 안과 밖 모두의 성평등을 위하여’를 발제하고, KAIST 인터랙티브 미디어랩이 AI를 통해 ‘벡델초이스10’에 선정된 <82년생 김지영>, <메기>, <미성년>, <벌새>, <아워 바디>, <야구소녀>, <우리집>, <윤희에게>, <찬실이는 복도 많지>, <프랑스 여자>의 성별 재현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이에 대한 이화정 프로그래머, 조혜영 평론가, 윤가은 감독, 이동하 제작자의 대담이 이루어졌다.

 

2부 라운드테이블에서는 벡델리안 시상식, 벡델리안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변영주 감독과 김보라 배우가 사회자로 참여한 해당 순서에서는 벡델리안 선정자들의 소감과 함께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영화를 기획, 집필, 감독, 연기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에 대한 현장의 경험을 들을 수 있다. 벡델데이2020 심포지엄&라운드테이블의 풀버전은 네이버 TV 한국영화감독조합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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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델데이2020’은 미국의 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1985년 고안한 영화의 양성평등을 측정하는 지수 ‘벡델 테스트(Bechdel test)’에서 따왔다. 벡델 테스트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름을 가진 여성 인물이 최소 2명 등장하는가? 두 번째,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세 번째, 남성에 대한 것 이외의 대화를 나누는가?

 

벡델데이2020 심포지엄에서 조혜영 평론가는 최근 10년 동안의 한국 영화가 50% 정도의 비율로 벡델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말하며, 이는 높은 비율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벡델 테스트는 그야말로 최저의 기준이다. 사실상 70~80%는 넘어야 하는 테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조혜영 평론가는 벡델 테스트를 보완할 수 있는 여러 기준들을 제시했다. 여성 스테레오 타입 테스트(여성이 남성의 구출을 받는지, 남성 인물을 곤경에 빠트리는지, 남성 집단의 구색 맞추기나 감초로만 소비되는지, 돌봄이 의무나 본성으로만 부여되는지, 일차원적 이성애 로맨스 대상으로만 국한되는지, 과도한 성애화의 대상으로 한정되는지, 자기 서사 없이 범죄의 피해자로 전시되는지), 여성 서사가 남성 서사에 종속되는지, 여성연대 서사가 포함되어있는지, 주연 성별에 따른 연령 비율이 어떤 방식으로 분포되어있는지가 주 내용이다.

 

이러한 스크린 속의 세계는 스크린 밖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한국영화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에 기반한 조혜영 평론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년 중 2016년은 가장 주목할 만한 해다. 전체 개봉 영화 및 상업영화에서 여성 감독 비율(16.4%)이 가장 높았던 해이면서, <우리들>(윤가은), <비밀은 없다>(이경미), <미씽>(이언희) 등 주목할 만한 여성 감독들이 등장했다. 영화 수익률 또한 높았다.

 

지난 10년간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2016년에 여성 주연 영화 비율(39.4%)이 가장 높았다. 벡델 테스트 또한 2016년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로 통과하고 있고, 스테레오 타입에서도 2016년에 가장 낮은 수치(여성 스테레오화가 낮음)를 기록했다. 여성연대 서사 비율 또한 2016년에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인다. 이러한 정황들을 볼 때, 스크린 안과 스크린 밖은 따로 떼놓고 볼 수 있는 독립체가 아니다. 여성 감독이 많아지면 여성 주연 영화도 많아진다. 이는 데이터가 증명하는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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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구체적으로 누가 만들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필요하다. 2009년부터 2018년 개봉 영화(1433편) 기준 헤드 스태프 성비는 의상, 분장을 제외하고 모두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촬영, 조명, 연출 분야는 문제적이다. 해당 분야는 기계, 무거운 장비를 다루고, 직급(위계)에 의한 조직 문화가 강한 분야다. 이러한 분야에는 남성 네트워크가 공고화되어 여성의 진입이 굉장히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성별 고정관념을 굳어지게 만들고, 성별 불균형을 해소하기 어렵게 만든다.

 

2009년부터 2018년 총 제작비 10억 이상, 개봉 스크린 100개 이상의 상업영화(678편) 기준, 헤드 스태프 성비는 편집을 제외하고 여성의 성비가 확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의상과 분장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직종임에도 불구하고, 상업영화로 갔을 때 남성의 비율이 높다.

 

전체적으로 여성 참여가 가장 낮은 직종은 조명과 촬영이고, 가장 높은 직종은 의상과 분장이다. 의상과 분장 분야는 상대적으로 평균임금이 낮고, 직급체계 또한 조직화되어있지 않다. 이는 성별에 따른 직무, 직종 분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지난 10년(2009~2018) 동안 개봉한 한국영화를 전수 조사한 결과, 현재 한국영화는 성불균형하다. 인구 성비, 관객 성비, 영화교육 전문기관의 학생 성비 모두에서 여성은 과반수거나 그 이상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만들고 이야기되는 자리에서 여성은 그만큼 대표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100년 동안 축적되어 이어져온 기울어진 구조이다. 남성과 여성이 반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영화 속 여성과 이를 만드는 구조 속에서의 여성의 존재감은 터무니없이 작다.




영화 산업 속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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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베를린국제영화제는 1956년부터 배우의 성별에 따라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으로 나눠 시상하던 틀을 깨고, 내년부터 ‘은곰상 최고연기상(Silver Bear for Best Leading Performance)’과 ‘은곰상 최고조연상(Silver Bear for Best Supporting Performance)’을 시상하기로 했다.

 

연기상을 젠더에 따라 구분하지 않는 일이 영화계의 젠더의식을 더 향상하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남자 배우들의 영화 출연 기회가 훨씬 많은 상황에서, 여자배우들의 수상 기회를 뺏는 처사라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 나 또한 취지에는 동의했지만, 과연 그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의구심이 살짝 들었다. 안 그래도 조막만한 파이가 더 작아지는 게 아닐까.

 

영화 산업은 처음부터 특정 젠더에 국한된 산업이 아니었다. 영화 중심지 할리우드를 살펴보자. 무성영화 시대에는 여성들이 각본, 연출, 제작을 맡았고 심지어 회사까지 소유했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 시대로 넘어가는 때에 여성의 기회가 박탈당하기 시작한다. 부유한 지배층 남성들이 음향 기술 발전을 위해 투자를 하기 시작하고, 할리우드 영화 산업은 남성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자본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영화는 어느 순간 ‘남자의 것’이 되었다.

 

꽤 오랫동안, 혹은 지금까지 남성이 만든 영화에서 ‘여성’은 ‘남성’을 위한 존재로 머물렀다. 구조 속에서 타자화, 주변화되어 재현되는 여성은 복잡성이 결여되어 있는 존재였다. 시대가 지나며, 영화 속 여성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여성 감독들이 등장했고, 여성들이 주연인 영화의 비율이 높아졌고, 여성 중심의 이야기가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는 현실 세계를 반영하지 못한다. 앞서 말했듯 남성과 여성이 반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영화를 둘러싼 여성의 존재감은 여전히 미비하다.

 

그렇기에 이번 벡델데이2020 행사가 뜻깊다. 여전히 바꿔나가야 하고, 얻어내야 할 건 많다. 벡델데이2020 심포지엄에서 조혜영 평론가의 발표에 따르면, 제작자 성비에서 여성의 비율은 꾸준히 조금씩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10%대에 머문다. 프로듀서 성비 같은 경우 가장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낸 직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현재 여성의 비율은 28.3%까지 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감독의 성비는 최근 주목받는 여성 감독들이 많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낮아졌다. 2009년 기준 15.2%였고, 현재는 12.8%를 기록하고 있다. '이 정도면 만족하지?'라는 세상의 질문에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작년에 여성 영화제 자원 활동을 하면서 “여성 영화제에서는 절대 개봉 못할 것 같은 영화들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본 영화가, 필리핀 여성 감독이 만든 하이틴 퀴어 레즈물 <빌리와 엠마>였다. 역시 개봉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당시 들었던 말은 영화 산업 구조 속의 여성, 그리고 그를 기반으로 재현되는 여성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벡델데이2020 행사를 보고 있자니, '지금 절대 개봉 못할 것 같은 영화들도 언젠가는 극장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묘한 기대감이 든다.

 

하나의 가능성을 엿본 기분이다. 스크린에서 하나의 관점이 아닌, 다양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그 언젠가 말이다. 지금 변화의 시작이 100년 동안 이어져갈 뜨거운 바람이길 바란다. 굳이 '여성' 영화나 '여성'감독의 표기가 붙은 무언가를 찾지 않아도 괜찮을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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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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