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먼지 속의 삶과 결말 없는 결말 - 고요한 인생 [도서]

<고요한 인생> 리뷰
글 입력 2020.09.0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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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소설

 

『고요한 인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통해 우리 안에 내재된 인권감수성을 일깨운다. <고요한 인생> <아들> <언니의 봄> <언더독> <낮술> <아이 러브 유> <그 집 앞>까지 일곱 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보잘것없는 모양새로 거리를 떠돌며 실패와 절망의 서사들이 가족의 이름 아래에서 먼지처럼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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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냄새를 풍기다


 

택배 박스를 뜯고 책을 집어든 순간, 모든 책마다 특유의 질감과 냄새가 느껴지곤 한다. 사람이 저마다의 첫인상을 가지고 있듯, 책 또한 각자의 첫인상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의 첫인상은 질감보다는 냄새로 결정되었다. 모든 새 책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이 책은 유독 종이냄새가 강렬하게 풍겨왔던 것이다. 그 냄새가 아직도 빠지지 않았다는 것은 제조과정이 원인일 수도, 혹은 이 책에 사용되었을 재질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 어찌 됐든, 이북(E-book)이 대세가 된 요즘 아날로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수임에는 틀림없다.

 

오래된 박스에서 맡을 수 있을 법한, 사람에 따라 퀴퀴한 먼지 냄새 같다고도 느낄 수 있을 이러한 종이냄새는 ‘고요한 인생’이라는 책의 제목과도, 내용과도 기가 막히게 어우러진다. 타이틀작 <고요한 인생>을 포함하여 총 일곱 편의 단편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은 삶은 모두 ‘먼지’ 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먼지 속의 삶, 결말 없는 결말


 

모든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는 근본적인 결핍이 존재한다. 바로 ‘사랑’이다. 그리고 그 결핍의 주변엔 ‘가족’이 있었다. 부모, 형제, 남편 등 인물들은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느끼지 못했고, 그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누군가는 사랑을 갈구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기다리기도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끝내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그들의 삶은 마치 먼지 속에 둘러싸인 것처럼 ‘뿌옇게’ 느껴진다. 그들은 분명 그들만의 삶을 살고, 타인을 만나며 길을 걷고 있지만 그 길은 끝없이 아득하다. 종착점이 어디인지, 있기는 한 건지조차 모호하기만 하다.

 

그 탓일까, 일곱 편의 짧은 이야기들의 엔딩 또한 깔끔하게 온점(.)으로 끝나는 문장과는 달리 미세먼지로 가득 찬 하늘처럼,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처럼 ‘뿌옇게’만 느껴진다. 감히 희망을 남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절망 속으로 밀어 넣는 것도 아니다. 희망과 절망 사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빛.jpg

우리가 바라보는 인물들의 삶은

마치 흐릿함의 순간포착 같다.

 

 

다만 이러한 ‘결말 없는 결말’이 결국 삶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삶은 결코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이라는 이분법으로 깔끔하게 나뉠 수 없을뿐더러, 하물며 먼지 속을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특정한’ 결말을 씌운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모순일 테니 말이다.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점과 그들을 칭하는 호칭이 이야기마다 다양하게 등장하는 것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다양한 각도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혹은 이미 있을 그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의도일 수도 있고, 관찰자 시점을 통해 그들의 감정에 이입하지 않도록 막음으로써 오히려 그들에게 더 동화되는 역설을 노린 것일 수도 있다. 정답이 무엇이든(혹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든), 인물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픽션’으로만 치부하는 것을 막는 효과는 확실해 보인다.

 

 

 

먼지 또한 삶의 일부이기에


 

인물들의 삶은 잔잔한 서술처럼 참으로 ‘고요’하다. 내면의 격렬함과는 모순적이게도, 겉보기에 보이는 그들의 삶은 그렇다. 그들의 마음속에 ‘먼지’가 쌓이고 쌓여 시야를 ‘뿌옇게’ 만들어버렸기에, 그들을 ‘관찰’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까닭은 우리 또한 그들이 둘러싸인 ‘먼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그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일 것이다. 각자에게 내재된 결핍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 빈자리에 쌓인 먼지를 응시함으로써 걷어낼 수 있다. 결말 없는 그들의 결말을 스스로 되뇌어보며, 특별한 결말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고요’는 ‘활기’가 있기에 존재하듯이, 먼지 또한 삶의 일부이기에 무조건적으로 배척할 수는 없다. 모든 측면의 삶을 끌어안고, 보듬는 것이 진정으로 ‘맑은’ 삶을 가꾸는 방식은 아닐까. 끝나지 않은 텍스트 속 인물들의 삶처럼, 현실 속 우리의 삶도 현재진행형이니 말이다.

 

 

*

 

고요한 인생

 

저자 : 신중선

 

출판 : 내일의문학

 

출간일 : 2020.07.27.

 

쪽수 : 204 / 값 : 15,000원

 

규격 : 134*200 / 분야 : 문학〉 한국소설

 

ISBN 978-89-98204-76-1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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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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