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코로나 시대, 멀리 나아간다는 것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를 읽었다
글 입력 2020.08.3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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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는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한 편 뿐이다. 2020년이 끝나려면 아직 몇 달 더 남았지만 이 숫자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2020년이 이런 모습일 줄은 지난 설 연휴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볼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2020년은 없는 해로 하면 안 될까요?



8월의 어느 날, 한창 바쁘던 일이 일단락되고 틈이 생기자 꾹꾹 눌러왔던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밀려왔다. 장기화된 코로나19 유행 때문만은 아니었을 테지만 안개처럼 잔잔하게 깔려 있던 감정들에 불을 붙인 건 지금의 코로나 사태였다. 다른 때였으면 이런 안개같은 불안들은 어딘가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것을 보는 것으로 환기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코로나로 생활에 크고 작은 제약이 생긴 지 몇 달째, 내 세상은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기회가 줄어들면 사람은 새로운 것보다는 안전한 것, 검증된 것을 택한다. 외출을 줄이다 보니 어쩌다 외출을 하더라도 여러 번 가 본 곳, 이왕이면 가까운 곳에 가게 되고, 누구를 만나더라도 원래 알던 사람이 우선시된다. 시간을 들여 생각하며 봐야 하는 것들보다 당장 가까이에 있는 짧고 자극적인 것들을 소비하는 게 익숙해졌다.

 

그 정도의 일상만 흔들린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여행업에 종사하던 친구는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고 아예 새로운 분야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즐겨 가던 쌀국수집은 신천지 발 코로나 집담감염이 가장 심하던 3월에 문을 닫았다. 오죽하면 2020년을 그냥 '없는 해'로 하고 싶다는 얘기까지 나올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무기력함이 부피를 늘려가던 중 문득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라는 책이 떠올랐다. '길 잃기' '안내서'라니 기묘한 제목이다. 길을 잃기로 작정하고 길을 잃는 사람이 있을까. 제목도 제목이지만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이라는 부제 역시 마음에 들어 나중에 읽어보려고 어딘가에 메모를 해 두었다. 당장 책을 펼쳤다. 내 세계가 점점 좁아지기만 하는 것 같은 이 시대에 나는 어떻게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길 잃기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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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를 향해 문을 열어두는 것, 어둠으로 난 문을 열어두는 것. 그 문은 가장 중요한 것들이 들어오는 문이고, 내가 들어왔던 문이고, 언젠가 내가 나갈 문이다. 16~17쪽
 


책은 여덟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장인 '열린 문'에서 솔닛은 플라톤의 대화편으로 운을 떼며 자신이 생각하는 '길 잃기'를 이야기한다. 언급한 대화편 중 한 편에서 소크라테스는 '메논'이라는 소피스트와 논쟁을 한다. 메논은 살면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인데,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이에 대해 솔닛은 에드거 앨런 포, 발터 베냐민 등 당대 여러 예술가 및 학자의 말을 인용한다. 모르는 것, 혼돈의 상태를 수용하고 기꺼이 거기에 몸을 맡김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를 삶에 들이고 '발견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고전 설화를 소개한 어느 책에 따르면, 정의의 여신은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옥의 문 앞에 서서 누가 그 속으로 들어갈지 결정한다고 햇다. 그런데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은 곧 고통과 모험과 변화를 겪음으로써 더 나아질 사람으로 선택된다는 뜻, 다시 말해 처벌의 길을 밟음으로써 변화된 자신이라는 보상을 받을 사람으로 선택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 그러니 지옥으로 가라. 다만 일단 들어가서는 쉬지 말고 움직여서, 반대편으로 나오라. 40~41쪽
 


여러 회화 작품에서 발견되는 푸른 빛의 먼 풍경들, 사진 한 장 없이 말에서 말로 전해지는 솔닛의 할머니, 도시의 폐허, 신대륙에서 길을 잃었던 몇몇 유럽인들, 20대에 죽은 친구, 화가 이브 클랭...이어지는 장들에서 솔닛은 정해진 틀 없이 신화와 역사, 자신의 경험과 생각, 영화나 소설 같은 이야기 등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결은 다르지만 모두 정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들, 원칙을 벗어나는 것들, 경계지어지지 않는 것들의 이야기다. 그 속에서 솔닛은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해낸다. 사물과 사람, 어떤 개념들을 늘어놓다가 그걸 마지막에 하나로 꿰뚫는 솔닛의 통찰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잃는다는 것에는 사실 전혀 다른 두 의미가 있다. 사물을 잃는 것은 낯익은 것들이 차츰 사라지는 일이지만, 길을 잃는 것은 낯선 것들이 새로 나타나는 일이다. 42쪽
 

 

 

길을 잃음으로써 우리는 다른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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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닛이 생각하는 길 잃기의 목적과 결과는 길을 잃기 전으로 되돌아오는 게 아니다. 헤매는 과정을 통해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한 사례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시작으로 유럽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길을 잃었던 몇몇 유럽인들이 있다. 침략이 대규모로 본격화되기 전인 16세기, 새로운 대륙에 도착한 유럽인들은 종종 원주민의 공격을 받았고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갔다.

 

그 중 카베스 데 바카라는 스페인 사람은 일행 중 홀로 살아남아 여기 저기를 떠돌아다녔다. 그는 노예 생활을 하고 그 생활에서 탈출하기를 반복하며 9년을 헤맸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새로운 대륙과 원주민들에게 완전히 동화되었다. 마침내 9년 만에 기적적으로 다른 스페인 사람들을 만났을 때, 함께 있던 원주민들이 그와 스페인 사람들이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정도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분명 처음에는 길을 잃었지만 그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함으로써 길을 잃은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길 잃은 최초의 유럽인 중 하나였고, 돌아와서 이야기를 들려준 최초의 사람 중 하나였으며, 그중 많은 이와 마찬가지로 그가 길 잃은 상태에서 벗어난 것은 돌아옴으로써가 아니라 스스로 다른 존재가 됨으로써였다. 106쪽

 


18세기 초 원주민들과의 전쟁에서 져서 포로가 된 이들의 사례도 흥미롭다. 당시 몇몇 원주민 부족에게는 전쟁에서 희생된 가족 구성원을 대신해 포로들을 입양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렇게 입양된 이들은 오늘 아침까지 자신과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이 모두 잔인하게 죽는 것을 지켜보고 하루 아침에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가족이 되어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은 부족의 일원으로 적응했고, 나중에는 그 안에서 자신의 가족을 이루기도 했다. 그 중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 고국에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에도 그걸 거부했다. 솔닛은 이에 대해 그들이 스스로 "포로 되기를 그만뒀다"고 표현한다. 돌아가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포로 되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 외에도 책에 등장하는 '길 잃기'란 매우 다양하다. 많은 경우 우리가 길을 잃는 데 기여하는 것은 시간이다. 열정적이던 사랑은 끝난다. 청소년은 성인이 된다. 자식은 부모를 떠난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극도의 혼란기에 많은 사람들은 길을 잃는다. 종종 어떤 장소가 우리를 길 잃은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솔닛에게는 사막이 그러했다. 그는 사막에서 눈을 돌릴 때마다 끝없이 펼쳐진 풍경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너머에 훨씬 더 넓은 땅이 있음을, 그 속에 우리는 매우 작은 존재임을 늘 일깨운다고 말한다.

 

 

 

코로나 시대의 길 잃기



길 잃기에 대한 리베카 솔닛의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책이 제목처럼 길을 잃도록 우리를 유도하는 안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처한 수많은 상황을 '길 잃은 상황'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그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지금,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에 가지 않아도 길을 잃은 셈이다. 갑자기 세계를 덮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시대 자체를 사막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포로로, 사춘기 청소년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 할 방향 역시 코로나 이전의 세계가 아니라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세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이 시대에 코로나라는 길 잃기를 통해 우리가 더 멀리 나아가는 방법일 테다.

 

며칠 전에 기사를 보고 '동물시국선언'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동물시국선언이란 동물, 환경, 기후위기를 예술로 표현해온 창작 집단 '이동시'에서 활동하는 서른 명의 사람들이 다양한 동물로 분해 동물로서 코로나 시대와 이 시대를 불러온 인간의 탐욕을 규탄하는 퍼포먼스였다. 다른 때였으면 그냥 지나쳤을 기사가 이 시국에는 다르게 읽혔다. 코로나19는 당연하게 계속될 것이라 믿어왔던 세상에 균열을 냈다. 계속되던 세상이란 누군가를 또 무언가를 희생하면서 억지로 굴러가던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바이러스로부터 완전히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것이 바이러스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플 때 쉴 수 있는 사람과 쉴 수 없는 사람, 외출할 수 없어도 쾌적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는 뚜렷하다. 개인만이 아니라 나라 간의 격차도 크게 두드러진다. 코로나를 검사, 진단하고 환자들을 치료할 인프라를 가진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면서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한 격차가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팬데믹 사태는 소수 집단 또는 어떤 한 나라에서 바이러스 감염이 없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광복절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확진자 수가 급증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 일은 전 세계가 함께하는 일종의 조별과제에 가깝다. 지난 8개월간 전세계의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변하고 있고, 지금의 방식대로 계속 살아갈 수는 없음을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외면하던 문제를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와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렇게 이전과 점점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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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미래를 내다볼 때 현재의 힘들이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펼쳐지리라고 기대하지만, 과거를 살펴보면 변화의 구불구불한 경로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희한하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171쪽
 

 

《길 잃기 안내서》는 모든 것을 마냥 낙관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이 길을 잃은 끝에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애벌레가 번데기 상태에서 나비가 되기에 실패하듯 누군가는 영영 길을 잃기도 한다고 솔닛은 말한다. 그러니 이 헤맴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곳곳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를 잘 봉합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디스토피아 영화같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이 시대는 시간이 더 많이 지나서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을 사는 나는 역사에 기록된 여러 중요한 사건들을 현재로 마주하며 살아가야 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어느 시기건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갔다.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미 태어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결과를 알 수 없지만 미지 속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다른 존재가 될 가능성을 품고,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김선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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