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는 기나긴 잠에 빠졌고, 모두들 슬퍼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왕자의 입맞춤에 공주가 깨어나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공주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의 흔한 결말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진취적인 공주의 이야기들도 많아졌다. 그래도 전통 깊은 디즈니의 공주들은 왕자와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운명적인 사랑이 그들의 기구한 삶을 바꾸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그리고 "인어공주"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고 난 후, 그녀들의 삶에서 왕자는 아주 작은 존재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디즈니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에서 백설공주 다음으로 분량이 많은 캐릭터는 일곱난쟁이이다.
왕비에 의해 죽음으로 몰렸던 백설공주가 죽음을 피해 도망친 곳은 일곱난쟁이들의 집이었다. 백설공주는 꾀죄죄하고 지저분하게 살아가던 일곱난쟁이들의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간다.
언제나 외로웠던 백설공주에게 일곱난쟁이들은 새로운 가족이었던 것이다.
백설공주가 마녀로 변신한 왕비의 사과를 받으려 하고 있을 때, 일터로 떠난 난쟁이들을 황급히 불러낸 것은 백설공주와 친하게 지내던 새무리였다.
새들과 난쟁이들이 한발 늦어, 백설공주가 영원한 잠에 들어버린 후에 이들은 백설공주를 차마 땅에 묻지 못하고 유리관에 모셔둔다. 그 덕분에 백설공주는 왕자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왕자가 한 것이라곤 뒤늦게 나타나서 한 키스뿐이었다.
디즈니 공주들은 모두 외롭게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데렐라 또한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힘든 삶을 살았지만 결코 우울하게 살지는 않았다. 집의 강아지인 부르노와 꼬마 쥐들이 신데렐라가 하루하루를 활기차게 살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꼬마 쥐들은 신데렐라를 위해 몰래 원피스를 리폼해 주고, 부르노와 함께 방안에 갇혀버린 신데렐라를 꺼내주기도 한다.
마법을 부리는 요정과 신붓감을 찾기 위해 그 커다란 무도회를 열었던 왕자의 뒤에는 매일 신데렐라와 함께 살아간 부르노와 꼬마 쥐들이 있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오로라는 사실 이야기 속에서 오래 잠들어 있지 않았다. 오로라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숲속에서 오로라를 키운 세 명의 요정들 덕분이다.
왕은 (무책임하게도) 세 요정들에게 오로라의 육아를 맡겨버리고 오로라가 돌아오는 날에 맞춰 강제 약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요정들이 오로라에게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그녀는 마녀의 저주에 걸리고 만다.
요정들은 진정한 사랑의 키스만이 공주를 깨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왕자를 찾아 나선다. 영화에서 마녀에게 붙잡힌 왕자를 구한 것도, 왕자를 무사히 마녀 성 밖으로 이끌어낸 것도 모두 세 명의 요정들이었다.
오로라를 향한 요정들의 애정과 사랑은 분명히 오로라를 잠에서 깨울 수 있을 만큼 깊었을 것이다.
인어공주의 삶의 동반자는 물고기 플라운더와 크랩 세바스찬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운더는 다른 인어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애리얼을 지지해 주고 함께 뭍으로 소풍을 떠나기도 한다.
애리얼의 행동에 투덜대던 세바스찬도 정작 공주가 위험에 처하자 열과 성을 다해 애리얼이 무사히 왕자와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인어공주에서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왕자의 비중이 조금 더 크다. 그러나 인어공주가 차라리 왕자의 존재를 몰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한 켠에 계속 남는다.
물론 그녀의 행복을 지지하지만, 호기심 대마왕이던 인어공주의 성격으로는 바다에서 제일 가는 발명가가 되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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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들이 각자의 색깔과 든든한 조력자들을 두고도 왕자와 함께 사는 삶으로 귀결되는 옛이야기들의 개연성이 아쉬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에서 디즈니의 전통적인 공주들 이야기를 해석하면, 왕자는 왕자 자체로서가 아니라 자유와 행복을 좇는 공주들의 열망을 뜻하는 게 아니었을까.
앞으로 재해석될 공주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