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낮과 밤의 시간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 : 신유진 산문집 [도서]

밤과 낮, 둘 중에 선택한다면 어떤 시간을 택하시겠습니까?
글 입력 2020.08.3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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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낮의 시간을 택하겠습니다


 

night sea[크기변환].jpg

 

 

누군가가 나에게 "밤과 낮의 시간 중 하나의 시간을 택해서 그 시간에만 살아가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래?"라고 극단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난 주저 없이 낮의 시간을 택할 것이다. 내게 '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태안과 제주의 밤바다이다. 육지의 가로등 하나 없는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하늘과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 암흑 그 자체였다. 옆에 같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던 친구의 존재가 없었다면, 무서워서 울어버렸을 것이다.

 

그 후로 내게 밤의 시간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 밤바다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밤의 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이후로는 마음속에서 밤의 시간을 멀리하고, 낮의 시간을 가까이했다.

 

밤에도 환한 우리나라 도시의 밤과는 너무나 달랐던 밤바다의 어둠을 마주하고 나서 자각한 밤의 시간은 세상의 아름다운 색채를 빼앗아가는 시간이었다. 산과 바다의 각기 다른 푸름을 다 검게 물들여버려 낮의 시간에 햇빛을 받고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던 존재들의 자아를 뺏어버리는 밤을 미워하던 때가 많았다.

 

밤을 미워하는 대신 낮을 한껏 사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갈 때마다 타야 하는 버스에서만 볼 수 있는 낮의 풍경을 보기 위해 항상 왼쪽 자리에 앉거나 서 있었고, 무지개와 분홍빛 혹은 주황빛 구름이 떠있는 하늘을 좋아했다. 햇빛을 받아 각자의 색깔을 오롯이 보여주는 모든 것들을 귀히 여겼다.

 

그래서 나의 핸드폰 사진 앨범 속에는 낮의 시간이 주로 기록되어 있다. 푸른 하늘과 녹색 나무, 노을빛을 받는 들판과 파란 지붕 옆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빨래들, 여름의 시간은 청량한 푸름의 시간이어서 낮의 시간이 더욱 아름답게 여겨졌다.

 

낮과 밤의 시간을 각기 다른 이유로 사랑하거나 미워했던 내게 이 시간들을 조금 더 들여다보게 해준 책이 있다. 열다섯 번의 낮과 밤, 도합 서른 번의 시간을 돌아보고 음미한 기록인 신유진 산문집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이다.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낮과 밤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정작 우리는 이를 자각하면서 일상을 보내지는 않는다. 대게는 낮의 시간과 밤의 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시간을 흘려보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다른 두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되고, 그를 통해 우리의 삶의 순간들이 조금 더 소중해지거나 아름다워지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낮과 밤의 시간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


 

사본 -열다섯 번의 밤과낮.jpg

 

 

신유진의 산문집은 프랑스라는 낯선 타국에서의 삶을 살고있는 작가가 이방인으로서 마주한 순간들이 포착된 글이고, 그 속에서 섞여 지내며 만난 타인에 대한 기록이다. 배경이 애초에 익숙한 한국이 아닌 낯선 프랑스라는 배경이어서일까, 다른 산문집과는 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다.

   

마음에 드는 문체를 가진 작가님들이 쓴 글을 찾아 읽기 위해 산문집을 찾을 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그저 누군가의 낮과 밤의 시간을 훔쳐 읽고 스스로의 시간을 돌아보기 위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상이 정한 시간 단위에 함부로 속박되기 싫었던 마음에 나 혼자 정해둔 낮과 밤이라는 분리된 시간 체계 안에서 밤이라는 시간을 미워하게 된다면, 내 안의 시간에서 절반의 시간이 아깝게 흘러가는 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밤의 시간을 조금 더 좋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다섯 번의 밤』을 집어 들었고,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낮의 모습은 어떠한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열다섯 번의 낮』을 읽었다.


 

글쓰기는 지나간 시간을

구하기 위한 시도다.

 

- 아니 에르노

 

 

절망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

아니, 절망과 함께. 

 

- 마르그리트 뒤라스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 각 책의 서문에 수록된 인용구 두 문장은 작가에게 낮과 밤의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암시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간혹 수필은 소설보다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수필은 오로지 작가 본인의 삶에서 조명한 순간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에게 작가가 적어내린 순간들이 진솔하게 다가갈 수 없다면 산문집으로서의 매력은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 책은 타인의 내밀한 일기에서 가장 멋진 구절을 모아 읽는 듯한 책이다. 누군가의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벌어진 일들을 읽음으로써 타인의 경험과 느낌을 다시 나만의 내밀한 깨달음 혹은 느낌으로 체화하게 되는 것. 그것이 산문집의 매력이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모든 게 괜찮아졌다고 생각한다. 큰 변화는 없었다. 모두 아주 작은 것들에 불과하다. 행복을 구걸하지 않고 불행을 내뱉지 않는 법을 배워갈 뿐이다. 나를 흔드는 것에 조금은 덜 동요하며 하루를 산다.

 

- 245쪽, 『열다섯 번의 낮』

 

 

산문집 속에 등장하는 작가가 만난 타인을 만난 기록 또한 산문집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왠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행동과 생각이 이상적이고 공감되더라도, 가상의 인물인지라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다. 하지만 산문집 속 작가 주위의 실존하는 인물에 대한 기록과 그들을 만나면서 느낀 생각을 읽다 보면 좁다면 좁을 나의 세계의 반경이 더욱 넓어지는 기분이다.

 

 

알코올 중독증을 치료하면서 체중이 20kg이 불어 버린 핑크 요정의 요즘 최대 고민은 다이어트라고 한다. 술과 마약을 끊으면 살이 찐다던데. 그의 늘어진 뱃살은 서글프나, 한때 무대 위를 날아다녔다던 그를 생각하면 마냥 울상을 지을 수만은 없을 것 같았다. 무대를 잘 아는 M은 그의 은퇴 아닌 은퇴가 마음에 걸렸던 듯했다. 그가 프레디의 이야기에 어쩐지 마음이 쓰인다고 말하자 올리비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프레디는 그때도, 지금도, 그의 시간을 아낌없이 살고 있는 것이라고.

 

그런 것일까? 단 한 번이라도 반짝이는 기억이 있다면, 그것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 역시 행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161쪽, 『열다섯 번의 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무서운 큰 이유는, 나의 경우에는 스스로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되고 동시에 늙어간다는 것이 아직은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핑크 요정 프레디의 이야기를 읽으며 왠지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매사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다 보면, 훗날 어떻게 나이를 한 살씩 먹더라도 그 순간의 최선을 다하고 살고 있을 거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밤의 시간을 좋아하기 위하여


 

밤을 다시 좋아해 보기로 마음먹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여전히 내게 밤의 시간은 암흑의 시간이거나 불면의 시간이다. 그래도 책 속에서 타인이 보낸 밤의 시간을 읽어가며, 내 지난밤의 시간 속 분명 밤을 좋아하도록 만들었던 날들을 간간이 떠올릴 수 있었다.

 

한여름 강가에서 맞는 밤바람의 시원함, 지친 퇴근길에 어둑한 마음을 위로하듯 빛나던 가로등 혹은 달빛, 어둠 속에서 솔직해지는 마음들. 앞으로 밤을 좋아하기 위하여 밤의 순간을 기록하는 일은 계속 될것이다. 물론 낮의 순간에 대한 기록도 차곡차곡 함께 쌓일 것이다.

   

낮과 밤, 밤과 낮. 당신은 어떤 시간을 좋아하는지, 어떤 이유로 그 시간을 더 좋아하는지 묻고 싶다. 밤의 시간을 좋아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에게는 이 두 책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혹시 여태껏 자신의 낮과 밤의 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 없어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면, 이 두 권의 책을 먼저 조심스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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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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