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현실적인 현실의 이야기 - 극장 ③ -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글 입력 2020.08.2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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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우스피스>

 

 

 

데클란의 실존


 

존재했으면 싶기도 하고 그냥 온전히 리비의 상상 속 인물이면 좋겠기도 하다. 리비의 시선, 생각, 선택, 행동에 모든 정당성이 부여될 순 없지만 나 또한 그녀의 축에 속해 세상을 바라보았고 안정을 위한 안전판으로 연극과 예술을 보듬고 이기적인 내적 충족을 했기에 그녀를 완전히 비난하고 놓을 순 없었다.

 

현실의 무력감, 부정적인 감정을 잊고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고자 단순히 극장에서 만나는 인물에게 대신 여러 감정을 풀이하고 그들에게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음을 느끼고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것들과 마음가짐을 대신해서 깨닫고 극장을 나오면서 현실에서의 생각을, 그 공감을 멈춘다.

 

거대한 공감의 기계인 극장에서 나는 텅 빈 헛바퀴만 돌고 현실에 눈뜨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감은 것 같다. 그래서 한편으로 리비가 완전히 이 아이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이 메시지를 느낄 수 있도록 완벽히 짜인 연극이었으면 좋겠다는 알량한 마음이 있다. 모든 걸 꾸며냈다고 하면 마음이 덜 무거워지지 않을까라는 이기적인 생각이다. 실제에 존재하지만 그저 꿈 이야기로, 만들어낸 이야기로 치부하고 잊고 싶어하는 이 위선적인 마음이 아직도 내게 존재한다. 그래서 더욱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공감의 기계로서 극장에서 마무리되는 리비의 데클란 마지막은 충분히 작품으로서 비극적이고 사람들의 마음에 충족한다. 텅 빈 실체가 없는 공감. 그 부류에 나도 속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 공감의 기계 속에서 뛰쳐나가 데클란만의 공간 에든러버 절벽에서야 그의 진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단순히 이 극의 결말이 궁금해서인지, 진심으로 그에게 도움을 주거나 관심,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고자 하는 마음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절대로 겪어보지 않은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공감할 수 없다.

 

 

 

극장; 거대한 공감의 기계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관객은 이를 들어주는 것, 공감의 기계인 극장이 이렇게 이면적으로, 이기적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저 가슴 뛰는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곳으로만 생각했지만, 인물과 상황을 철저히 대상화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한없이 이기적일 수 있음을 느낀다.

 

공감이라고 둘러싼 이기적 충족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관객들은 자신을 위한 위선적 안전판이 생겼음에 안도하고 이에 박수를 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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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거대한 공감의 기계라는 극장에서 연극되는 삶, 배우들이 표현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정말로 공감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요즘 나 자신이 너무 나약하다고 느껴지고 내면이 깨진 유리창보다 더 위태롭고 날카롭고 흔들린다는 걸 느끼고 있는 이유가 그저 거짓된 공감으로 그들에 대한 감정과 이야기, 메시지를 온전히 내 삶 속에 들이는 데 실패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때문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러 삶을 만나면서 그들의 선택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현실에서 작은 희망을 맛본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나는 불안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방어막으로, 안전판으로 궁핍하게 타인의 삶을 갖다 대며 둘러싼 것 같다. 아직도 본질을 잘 모르겠지만 이 거대한 공감의 기계에서 내가 극이 끝난 후에도 데클란의 말처럼 끝나지 않은 그의 이야기를 생각해보고 진정 어린 공감을 할 수 있을까? 그 공간에서 느꼈던 것들을 온전히 내 삶 속에 적용하고 녹여낼 수 있을까. 그러고 싶지만 스며든다는 것은 참 어렵다.

 

데클란이 말하는 이 다음에 일어날 일이 "암전"이라는 것 역시도 공감의 기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의 주체가 관객에게 왔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다. 충분히 배우, 각본, 연출 모든 것이 클라이맥스를 지나 끝을 향해 달려가고 나서 암전으로 연극은 끝이 나고 이제 관객의 차례다. 한 번의 암전 이후 그들이 되돌리거나 할 수 있는 행동, 변화는 없다. 오로지 관객만이 할 수 있다. 암전을 통해 극장에서 나가 공감을 하고 데클란의 이야기를 이어갈지 그건 나에게 달렸다. 그가 에든 러버에서 스케치북 속 그림들을 한장 한장 모두 찢어서 한 장씩 날려버리면서 이런 말을 한다. 이 그림들을 또 다른 누군가가 찾아낼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 그림을 찾아낼 수 있는 건 우리다. 결국 나에게 달렸다.

 

결국 죽음을 택하는 완전한 비극적 결말일까? 혹은 리비가 말한 것이 그 결말일까? 그가 웃을 수 있을까? 여기서 나는 무엇을 상상하고 정해야할까. 다시 시작, 완전한 끝. 온전히 내가 안고 살아가야 할 문제라고 느껴진다.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데클란같은 소위 빈곤하고 불우한 캐릭터의 끝은 정해져 있었다. 결국 고통과 죽음. 그냥 이렇게 끝나고 단편적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을 극장에서 하고 나오면서 이를 잊었다. 대신 내가 그토록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지적 허영심을 충족하고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오직 죽음뿐이었다. 완벽한 클리셰, 전개이다. 대부분이 이런 흐름과 구조를 선호하고 그래야 인기가 많으니까. 마치 안타까운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다음 날 오피니언에 '아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애석하다'라는 거짓 공감의 글을 싸지르는 것과 같이 평가하기 쉬우니까.

 

이제부터라도 조금이나마 내가 데클란의 삶을 상상하고 이어나가고 싶다. 객석을 떠나 술집을 가든 버스를 타고 가든 끝났다고 말할 때도 나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는 데클란을 따라 그의 ing를 생각하고 그려나가고 싶다. 누구나 원하는 리버의 완벽한 시나리오 속 결말 말고 이제 우리가, 내가 할 수 있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의 이야기였던 마우스피스의 사람들, 그들의 관계를 보고 그 연극을 완성할 수 있는 존재는 마침내 관객이다. 이 공간에서, 2020년을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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