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든 게 변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 체리 [도서]

작가 니코 워커의 자전적 소설
글 입력 2020.08.22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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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_팩샷_앞표지+띠지_도서출판잔.jpg

 

 

《체리》의 겉표지를 보면 색 때문인지 새콤한 체리가 떠오른다. 하지만 자세히 겉표지를 들여다보면, 촘촘한 별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는 해골 문양이 보인다. 마치 우리에게 조심스레 경고를 날리는 거 같다. 이 책을 읽을 것이냐고, 정말이냐고, 꼭 그리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는 겉표지를 벗겨내면 더욱 또렷해진다.

 

 

체리_팩샷_이너표지_도서출판잔.jpg

 

 

책의 표지들만 봐도 현실 속에 자연스레 깔린 어둠을 보여주는 거 같다. 그렇다면 《체리》에서 나타난 '체리'는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체리는 미국에서 전쟁에 처음 투입된 군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체리》는 작가 니코 워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자전적 소설이다. 이라크 파병에 참여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에 헤로인과 코카인 등의 갖은 마약만으로 버틸 수밖에 없던 한 청년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에게선 희망을 찾아볼 수가 없다. 화자에겐 꿈도, 희망도 없다. 그래서 전쟁이란 것을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군에 지원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의무병이 되어 의사처럼 다친 사람을 치료하게 되고, 현지인 앞에서 마치 모든 걸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는 상사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 채 그들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으며 진료를 하게 되는 주인공은 참혹한 경험 속에서 끝없이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하나씩 둘씩. 영웅도 없고 전투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그냥 보조이고 허울만 좋은 허수아비였다. 도로를 오가고 바쁜 척을 하면서 돈만 펑펑 쓰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

 

- p.235

 

 

3장 <체리>를 읽는 내내 눈앞에 전쟁이 벌어진 것처럼 눈을 제대로 뜨고 읽기 힘들었다.

 

누구든 죽이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 있는가 하며, 어제까지 함께 했던 동료들이 다음날이면 죽어서 실려오기도 하고, 지나가는 개를 아무 일 없이 쏘기도 하며, 굶주린 이슬람 아이들에게 음식으로 괜히 장난도 치는 모습 등. 폭력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진 모습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주인공이 의지할 거라곤 마약밖에 없었다.

 

짧지지만 길었던 1년간의 파병 생활이 끝나면서 모든 게 끝난 줄 알았지만 주인공은 그때부터 더욱 망가지기 시작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잠만 들면 폭력의 현장이 펼쳐졌다. 이라크의 모습이었다. 예전에 본 영화를 꿈에서 볼 때도 있었다. 꿈에서 죽어 깨어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한 번 죽고 또다시 몇 번이고 죽는 통에 겨우 눈을 뜨고 나서도 온몸이 녹초가 되곤 했다. 그 외의 모든 것으로 인해 나는 무척이나 불행했다.

 

- p.350

 

 

주인공은 정부에서 준 장학금을 전부 헤로인으로 맞바꾸는 것도 모자라 돈을 빌리고 결국엔 강도 짓까지 하면서 헤로인을 찾고, 그것에 의존했다.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마약을 선택했지만, 결국엔 마약에서도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읽어내려가며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마약밖에 없었나 하면서도, 꿈과 희망도 없었던 그가, 전쟁 후에도 여전히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그가 마약을 할 때만 오로지 행복해하는 모습에 금방 생각을 저버리길 반복했다. 마약을 제조할 때만 비로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주사기를 채웠다. 내게는 아직 희망이 있었다. 마약을 제조할 때는 인생이 너무도 아름답기만 했다.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약쟁이가 친구처럼 느껴졌고, 내가 잘못한 일이나 내 실수로 망친 것들 그리고 지금까지 낭비한 세월 같은 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 p.425, 426

 

 

책을 다 읽고 나면 서두에 있는 <작가 노트>부분이 생각난다.

 

 

이 책은 소설이다.

이 책의 사건들은 일어난 적이 없다.

이 책의 인물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 작가노트 중

 

 

그저 픽션이라고 말하는 세 문장이 오히려 작가 니코 워커가 지금도 과거를 부정하고 현실까지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체리》에 나와있는 모든 사건들을 모조리 부정하고 도피하는 거 같다.

 

또는 저 세 문장만이 그의 바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자전적 소설임에도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주인공을 니코 워커라 칭하지 않고 그저 주인공이라 쓴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곧 나오는 루소 형제의 차기작 영화 <체리>가 기대된다. 작가 니코 워커의 감정을 배우 톰 홀랜드가 어떻게 살려낼지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도 영화를 보기 전 먼저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왜 작가 니코 워커가 서두에 위의 세 문장을 그토록 강조했는지,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
 
체리
- CHERRY -


지은이
니코 워커(Nico Walker)
 
옮긴이 : 정윤희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영미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432쪽

발행일
2020년 07월 27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90234-07-8 (03840)

 

 

[김승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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