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시를 읽고 내 마음을 좀 알아줘 - 나의 자랑 이랑 [문학]

가끔 시는 나 대신에 내 마음을 전해준다.
글 입력 2020.08.2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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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을 알아갈 때,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먼저 묻는다.

 

좋아하는 영화 있으세요. 아뇨, 제목만 들어봤어요. 무슨 내용인데요? 아 그렇구나. 왜 좋아하셨어요? 딱 그 와 이 영화 진짜 쩐다하고 느꼈던 부분이 뭐예요? 저도 그 배우 좋아해요. 와 헐 대박, 그 노래가 이 영화 OST였구나. 자주 듣는 노래거든요. 다음에 봐야겠는데요?

 

음악, 영화, 즐겨보는 콘텐츠, 왓챠를 구독하는지 넷플릭스를 구독하는지 등 취향으로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참 재미있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면 그 사람을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지니까. 덧붙여 평소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있는 주제다. 좋아하는 것이 뚜렷한 사람이라면 그만큼 자기 자신을 잘 알고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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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선뜻 물어보기에는 조금 애매한 소재가 하나 있다. 바로 ‘시’다. 좋아하는 시 있으세요? 약간 대낮에 초면인 사람에게 물어보기엔 좀… 늦은 밤 어두컴컴한 술집 구석이나, 새벽 두 시 침대에 누워 그런 기분이 들 때 더 적합한 대화소재라고 느낀다. (정말 개인적인 의견)

 

그래도 살면서 한두 번 쯤, 아니 한 이삼십 번 그런 밤을 맞닥뜨릴 때가 있으니. 보통 내가 ‘시’를 떠올리는 생각의 흐름은 이렇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내게 물처럼 밀려오라’는 시구가 탁 생각이 난다. 매번 저 시구가 나에게 시를 찾게 하는 동기가 된다. 이상하지. 나는 아직도 제목과 글쓴이를 외우지 못해, 검색창에 저 구절만 쳐서 검색해버리는데. 저 구절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건 철썩거리는 남색빛 파도를 물감으로 그린 그림 한 장.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이미지가 딱 생각 난다.

 

그러면 이제 우후죽순으로 여러 시들이 떠오른다. 별 하나에 사랑과, 어머니 어머니. 먼훗날 찾으시면 잊었노라. 정확히 외지를 못해 띄엄띄엄 생각나는 단어들. 정호승, 도종환, 김수영.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어찌어찌 배웠던 시들. 그 중에서도 깊은 울림을 줬던 시인들. 파라락 책을 넘기듯 스쳐지나가는 글자들.

 

 

 

제일 좋아하는 시 하나를 꼽는다면, 나의 자랑 이랑


 

종장을 향해 달려갈 때 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가 나타난다. 김승일 시인의 나의 자랑 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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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친한 친구가 있으면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을 한다. "내 친구 중에 A라는 애가 있는데 얘는 이걸 참 잘해. 그래서 요즘엔 그 일을 하면서 살더라."

 

이런 대단한 애가 내 친구야. 자랑하고 싶은 유치한 마음인 걸까. 가까운 사이인만큼 다른 사람이 그 애를 보는 것보단 내가 그 애를 아는 게 많아서 온 천지에 알리고 싶은 걸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는 내 친구를 자랑하는 사람이라는 것. 나도 그 친구에게 자랑이 되고 싶다는 것.

 

친구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너는 내 자랑이야!' 그만큼 내가 듣고 싶은 말. 철저히 내 기준 '사랑해'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진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자랑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에게 더 든든한 기반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너는 남에게 자랑거리가 될 만큼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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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랑은 시인 김승일의 친구로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수상 후 트로피를 팔아버린 그 이랑이다.

 

친구에게 같이 있던 어느 날에 관해 그 공간에 무엇이 있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적어서 선물한 시라고 한다.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르게 대답한다는 김승일 시인은 ‘한국어로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서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더라도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우리가 같이 나는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채게 된 것같아요.” (참고 채널예스)

 

‘세상에 노래란 게 왜 있는 걸까? 너한테 불러줄 수도 없는데.’ 나의 자랑 이랑의 다른 구절을 보자. 이 구절이 아니더라도 이 시를 주욱 읽다보면 시인이 랑에게 하는 말에는 애정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나는 그저 네가 나의 자랑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 그 마음이 낯설지 않아서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이 시를 찾아 읽는 거겠지.

 

 

 

이 시를 읽고 내 마음을 좀 알아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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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먼 길을 떠났던 적이 있다. 연락도 안 되는 오지로 떠난 것도 아니고 문명의 이기가 엄청나게 발달된 이 시대에서 그냥 시차가 있고, 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는 거였다.

 

두꺼운 공책 하나를 산 나는 그 공책을 채워서 친구에게 안겼다. ‘스트레스를 받은 만큼 이 페이지에 동그라미를 그려주세요.’ ‘사람에게 지친 날에 이 노래를 들으세요.’ ‘빈 칸에 알맞는 그림을 그려주세요’ 이 시를 꺼내든 건 이 때다. 한 페이지를 딱 펴고 제일 왼쪽 위에서부터 적어가기 시작했다.

 

시가 좀 긴 편이라 글을 작게 써서 한 페이지 가득 채우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다른 색으로 썼던가, 아니면 색연필로 색을 칠했었나. 타지에 있어도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라는 사실을 잘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시가 읽고 싶어지는 어느 밤이면,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내게 물처럼 밀려오라로 시작해서 여러 시의 글만 있는 이미지를 모았다. 모은 네 다섯가지의 사진을 친한 친구 두어명에게 느닷없이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시라고 덧붙이지. 이건 꼭 제대로 읽으라는 압력이야, 내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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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면 이 시를 최고로 꼽는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조금 알테니까. 나는 너를 언젠간 자랑으로 생각하고 싶다고 마음을 전해보는 일종의 간접표현인 것 같기도 하다. 내 최애 시는 그만큼 내 마음을 담고 있어서, 최애로 꼽히는 거고. 나는 내 마음을 열어 보여줄 수 없으니 이 시로서 한 번 표현해볼게.

 

아, 그렇게 늦은 밤 느닷없이 시 일부의 캡쳐본을 연달아 보낸 나는 정말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묻는다. 너가 제일 좋아하는 시는 뭐야?

 

 



[우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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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peing
    • 희한하게 중학교때 같은 반 친구가 그냥 끄적였던 시가 기억나네요.. 하늘에 꽂혀 찟겨우진 별의 아픔을 아느냐역쉬 시는 감성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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