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축제는 수굿했다 -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20 [공연]

수굿하다 : 고개를 조금 숙인 듯하다.
글 입력 2020.08.1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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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축제는 수굿했다.

  

코로나가 모두의 입을 막고 발을 접붙인 나날, 월드컵경기장 어귀 문화비축기지에서 펼쳐진 예술가들의 축제는 참으로 소곳하다. 그 축제는 예술가들의 축제, 그리고 예술가들을 위한 축제. 산을 뒤로 끼고 있는 문화비축기지에서는, 별다른 소리도 없이 그들의 홍소와 담소와 몇 연극이 펼쳐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반도를 가득 메운 비구름이 잠깐 걷힌 날, 8월 13일, 목요일자 프린지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나는 가족여행을 마치고 황급히 통영발 버스를 타고 서둘렀다. 통영 종합 버스터미널로 가는 걸음조차 실상이 문화비축기지를 향하였던 셈이다. 걷는 길 땡볕이 목에 따갑다. 아무래도 오늘은 내내 땀에 젖겠다 싶었다. 4시간 30여 분 버스를 타고, 여차저차 서둘렀지만, 문화비축기지에는 영 늦어 버렸다. 때가 벌써 18시 30분이었으니, 이거 원 괜찮으려나 긴장을 많이 했더랬다.

 

사전 조사 없이 무작정 다녀온 축제이다. “예술가들의 무대는 계속된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20” 이 캐치프레이즈가 내가 그 축제에 대해 알아본 전부였으니 나로서는 미지의 상태에서 아주 조금의 긴장과 흥분감을 안고서 긴 길을 따라 그리로 향한 셈이다. 마침내 도착한 월드컵경기장역은 그 얼마나 오랜만인지. 역을 나서자마자 있는 기다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참 반갑다. 아무래도 여정이 길었던 탓이다.


역을 지나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 길을 건너 지도에 표시된 ‘문화비축기지’로 향하였다. 이곳저곳이 공사 만발이다. 직행로는 공사로 막혀있어서 조금 돌아갔지만, 어떤 축제가 있을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걷는다. 마침내 도착한 비축기지는 그러나 웬걸, 초입 귀퉁이에 프린지 페스티벌을 알리는 현수막이 없었더라면 그냥 커다란 공터 같았다. 이 공원은 넓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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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큰길을 지나 좌측 비탈을 따라 들어가면

매표소가 있는 T2가 나온다.


 

들어가서도 잠시 헤매었다. 축제하면 응당 기대되는 어떤 들썩임, 소음 같은 것이 없다. 하늘은 몇 주의 장마를 잠시 거두었지만, 여전히 스산히 흐리고, 그러나 대단히 습하고, 땀에 이미 꽉 젖은 채로 나는 조금 허둥대었다. 걷노라니 안내 사무소가 있어 물어물어 들어갔다. 이리도 조용한 축제라니, 무언가 오묘한 기분에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초입의 안내사무소를 지나, 커다란 공터를 낀 긴 길을 따라 들어가면 총 6개의 커다란 건물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안내사무소와 커다란 공터와 긴 길과 그 끝 6개의 커다란 건물이 전부 문화비축기지인 것이다. 매표는 어디서 해야 하는지, 축제를 즐기는 방법이 그 어떠한지, 아직 아무것도 알지를 못하겠다. 새소리도 좀체 나지 않는 이 길을 무작정 걸어 들어갈밖에. 옆의 공터는 비었고 하늘도 사위도 모두 이상시리 조용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T6이다. 여기를 어리버리하게 기웃거리다가, 관람방식이 어떻게 되는지, 매표는 어디서 하는지 여쭈어 알게 되었다. 좀 더 가서 있는 T2 건물 앞에 매표소가 있다고. 티켓을 수령하고, PRESS 카드를 목에 걸고, 프로그램 북을 건네받았다. 그 책자 안에는 이곳 전체 지도와 일정표와 일정별 프로그램 간략 소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자를 들고, 드디어 시작한다.

 

도착이 18시 반 경이니,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19시에 시작한다. 아직 이 축제가 낯설기만 한 나로서는 프로그램 북을 어서 다 들여다볼 기세로 마구 헤집었더랬다. ‘아아, 시간대별 30분 단위로 뭇 건물에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고, 우리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보면 되는 것이겠구나.’ 하였으나 아쉽게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예술 작품은 연극이 대부분이었는데, 난입도 중간이탈도 실례될 일이다. 늦은 것이 영 아쉬워 볼 수 있는 한 꾹꾹 눌러 담았더니 총 4개의 연극 작품을 관람하였다. 작품은 대개 30분 길이이고, 프로그램도 30분 단위로 짜여 있었기에 여유로운 관람은 없다. 한 개 연극이 마쳐갈 때쯤 스을쩍 빠져나와 다음 장소로 냅다 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침에 따르면, 정상적으로는 한 타임 작품을 보면 이은 시간대는 관람하기 어렵다.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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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편에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T6인 듯하다.



그렇게 3개 작품을 연달아 보고는 20분가량 시간이 떴다. 통영에서부터 그때까지 너무 황급히 달려왔구나 싶어서 조금 걸었다. 올라온 곳과 반대쪽, 공터가 내리 보이는 비탈에 서고 나니 그제야 이곳의 조용함이 보였다. 해는 이미 까마득히 졌고, 가로등 아래서 문화비축기지 너른 공터를 바라보고 있자니 한없는 고요함이 눈으로 눈으로 밀어 차 들어왔다.

 

조용했다. 관객은 적었고, 오늘 이 마당의 대부분은 축제 관계자로 채워져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연극을 구경하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부스를 지키고 했다. 그 외의 소리는 없었다. 여기 비탈에서 뜨는 20분을 상념으로 죽이고 있자니, 참으로 조용한 이곳 마당이로구나 하는 생각 하나가 이리 불쑥 든다. 오직 연극과 표현과 예술만이 한껏 자유로이 자신을 펼치고 알리고 있었다.

 

‘독립예술축제’


이 축제는 예술을 위한, 예술에 의한 축제이다. 코로나로 인해 설 자리를 잃어가는 독립예술을 위해, 시원하게 자리를 터준 격이다. 30분에서 40분짜리 짧은 단편 극들로 가득 찬 이곳. 극은 대부분 실험적이다. 무대와 객석 구분이 없는 연극도 있었고, 각본이 너무도 자유로와 따라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연극도 있었으며, 배우와 각본과 관객이라는 연극 3요소를 배제하는 아주 실험적인 연극도 있었다.

그래, 연극만은 너무도 자유로웠다. 별다를 것 없는 계단에서도 연극은 실험되었다. 계단 밑과 계단 위를 오가며 배우는 종횡하였고 우리는 그 계단 모퉁이에 서서 그를 바라본다. 배우는 무대에 등장하여 ‘나 배우요’하는 일말의 소개도 없이 깜짝깜짝 등장하였고, 심지어 관객 사이에서 비집어 나오기도 했다. 무대가 없다. 그것은 어떤 틀을 깨부숨으로써 자유로움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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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북에 따르면 본격적인 페스티벌은 주말을 지나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그때부터 시간대별로 많은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었다. 마지막 연극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는 앞서 상념에 젖었던 비탈을 따라 내려왔다. 돌아가는 길, 축제에 애초 소음이 없었으니 그 소음의 공백도 없었다. 축제가 끝나갈 때 어수선이 정리하는 소리도, 펑펑 울리던 소리의 빈자리도 없다. 나는 고요히 관극한 것들을 곱씹으며, 이 축제를 곱씹으며 길을 돌아 나왔다.

 

참으로, 수굿한 축제다. 관객도, 주최도, 스태프도 조용하고 딱히 배경을 장식하는 음악도 없다. 오직 연기자만이 마음껏 소리 낼 뿐이다. 마음껏 실험하고, 마음껏 대사를 읊고, 주장을 펼친다. 정말이지 연기자와 예술가를 위한 무대, 독립예술의 터전이라 할만하다.


“예술가들의 무대는 계속된다!”


그래, 모두가 마스크에 가리이고 발길은 집 안에 매여있다지만 예술이 계속되는 한 예술가들의 무대도 계속된다. 그들은 각자의 연극을 펼치고, 서로의 연극을 구경하였다. 예술가들의 자기표현과 교류의 장, 오직 예술가들의 자유와 실험을 위한 마당, 그런 무대가 되어준 프린지 페스티벌 2020이었다.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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