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직 당신을 펼쳐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

갑작스러운 상실이 시간마저 비수로 만드는 때에
글 입력 2020.08.17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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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메시지에 읽히지 못할 답장을 보내며


 

어느 날,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이 걸려 온 전화는 한순간에 나의 세상을 뒤집어놓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때로 목도하게 되는 진실은 현실감마저 없앨 정도로 잔혹하곤 하다. 내가 뛰는지 구르는지, 울상인지 허옇게 질린 얼굴인지 모르는 채로 당신이 마지막으로 숨을 뱉었을 곳으로 달려갔다. 한순간에, 이별이었다.

 

덮어두었더니 와이파이가 끊겨, 지난 주 토요일에 머물러 있는 노트북 카톡창에는 할머니께서 보낸 메시지가 읽히지 못한 채로 남겨져 있다. 이걸 읽는 게 순간 무서워서 커서를 멈췄다. 와이파이를 다시 연결했을 때 마주하게 될 현실에는, 당신의 메시지가 읽히고도 덩그러니 남겨져 있게 될 테니. 이제는 내가 답장하여도 그 말풍선 옆의 작은 숫자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시간이 강제로 나에게 들이밀 테니.

 

순식간에 하루는 지나간다. 하루는 금새 한 주가 되고, 용케 시간은 잘도 간다. 얼마 전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랑 지내실 시간이 길어야 십 몇년일 텐데, 웃을 일만 만들어야지"하는 말을 들었다. 나에겐 언제나 쾌활하고 든든한 당신이셨기에 우리의 끝이 멀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갑작스러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올 만한 사람들은 전부 왔다 가고, 그나마 고요해진 새벽에 엄마와 잠시 이야기하고, 씻고, 자려 누우니 새벽 4시였다. 나를 둘러싼 이 상황이 뭔지, 지금 내가 느껴야 하는 감정이 뭔지 아무것도 생각나질 않았다. 정말, 정말 내가 생각하는 이 상실이 현실인가? 이렇게 한순간에, 존재가 영원한 부재로 뒤집힐 수 있는 것이었다니.

 

나는 남은 술을 짬처리 핑계로 꽤나 많이 마시고, 술기운에 지구가 자전하는 것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6시였다. 겨우 2시간밖에 못 잔 채로 심한 갈증에 깼고,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몽롱한 머리를 부여잡고 멍하니 누워 있으니, 그제서야 감정이 파도처럼 물밀듯 밀려왔다. “사는 게 숨이 막힌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겠다는 생각, 잠들어서 깨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생각의 여백을 비집고 지나치게 날것의 감정들이 들이친다. 당신이 보내놓고 잘 확인하지 않으신다며 답장을 게을리 했던 시간들이 사무친다. 답장을 했어야 했다. 아니, 당신의 모든 말들에 한번 더 웃고, 당신을 한번 더 안아드려야 했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밤을 지샜다.

 

 

 

상실이 꿰뚫고 간 자리에


 

이별은 이토록 갑작스럽다. 이제는 거진 한 달이 지나서 그나마 침착하게 상실의 상흔을 되짚어볼 수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눈이 멀고 사고가 멈춘다. 머리가 굴러가는 것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그 자체로 숨이 막힌다.

 

영원한 이별은 꼭 죽음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만 해도 대부분 영원한 끝을 뜻하곤 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연인에서 남보다도 못한, 다시는 서로의 곁에 설 수 없는 사이가 되기를 선언하는 순간 역시 상실의 순간이다. 이는 언제나 갑작스럽다. 준비된 상실이란 아마도 없는 듯하다.

 

상실 이후의 시간들은 대부분이 후회였다. 당신의 웃던 모습, 행복해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그 모습 한번 더 볼 생각은 않고 무뚝뚝하게, 때론 차갑게, 때론 예의없이 굴었던 순간들만 떠올라 머리를 가득 채우고, 이내 숨을 옥죈다. 이제 후회해도 별 수 없음을 아는데도, 하염없이 울어대는 것이 전부임을 아는데도 밀려드는 감정에 정말로 깨어있는 것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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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마저 놓아주는 법


 

이별의 마무리는 결국 놓아주는 연습이다.

 

몇 날 며칠을 새워 눈물을 짜내도 결국 달라질 건 없고, 상실이 뚫고 지나간 자리를 메꾸는 법은 결국 앞에 남겨진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수밖엔 없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을 누가 처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무책임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이 진리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별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 대상도 제각기 다르다. 다만 하나같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짙은 상흔을 남긴다. 결국 마주하는 것이 최선인 듯하다. 한달 남짓한 시간 동안 울고, 멍하니 있다가, 다시 울기를 반복하며 닿은 결론은 고요히 마주하는 것이다. 머릿속에 온갖 감정과 자책이 떠다니도록 두지 말고 글이든, 말이든 꺼내서 마주해야만 그것들이 더이상 아프지 않게 되더라.

 

아직은 온전히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는 와중에도 목이 메이고 가슴이 얼얼하곤 하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렇게 괴로운 감정으로라도 당신의 부재가 아닌, 존재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시간을 떨쳐내고 나면 정말로 당신을 언젠가 잊게 될까봐, 나의 인생에 언제나 있었던 당신이, 없는 게 더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봐 무서워서 차라리 괴로워하는게 낫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별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라는 건 어떻게든 남겨두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지워지는, 모래밭 위의 글씨같은 것이기에. 사진이든, 글이든, 하다못해 감정이든 뭐라도 붙잡아두지 않으면 언젠가 사라져 버릴 테니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은 결국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나 다름없는지도 모르는 빈칸이 되어 버리니까, 그 사실이 아직 두렵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결국 전부 놓아주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러했듯, 나 또한 그럴 것이다. 내 앞에 주어진 시간들, 일상들로 돌아가서 어떻게든 다시 굴러가겠지. 하지만 일부러 잊지는 않으려 한다. 이렇게 당신을 펼쳐 볼, 어디에든 담아낼 용기가 생길 때마다 조금씩 내려놓으며 자연스럽게 당신과의 시간이 전부 흘려보내질 때까지 나도 잘 버텨보려 한다. 그리고, 이별을 겪은 많은 이들도 그러했으면 한다. 우리는 결국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이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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