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백수가 되었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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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되었다.
휴학 없이 3년을 달려왔고, 신입생이었던 내가 4학년이 되어 있었다. 꿈같았던 교환학생 시절을 보내고 첫 휴학을 했다. 고민이 많았던 마지막 학기까지 마치니 5년간의 대학 생활이 모두 끝나버렸다.
더는 학생이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주 치과에서 “학생이세요?”라는 의사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으며 “졸업했어요”라고 대답한 순간, 확 와닿았다.
아, 나 이제 학생 아니구나. 평생 학생일 줄만 알았는데 이제 백수라는 생각에 심란해졌다.
작년 가을, 아트인사이트에 ‘어중간한 스물셋 휴학생의 이야기’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했을 때의 고민을 털어놓은 글이다. 모든 학기를 마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약 일 년 전의 내 모습이지만 한참 어려 보이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취업 이야기에 지나칠 정도로 예민했다. 엄마가 취업의 ‘ㅊ’자라도 꺼내려 하면 괜히 짜증부터 냈다. 갈등이 생기는 게 싫어서 최대한 진로 이야기를 회피하려 했고 엄마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엄마가 심한 잔소리를 한 것도 아니고 날 재촉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짜증을 냈을까.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던 내가 이제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저런 고민은 많은데 생각하기조차 싫었고 그저 피하고만 싶었다.
지금도 여전히 불안하고 고민이 많지만 작년보다는 덜하다. 이제는 현실을 ‘쿨’하게 인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스스로 인생 계획을 세우고 취업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 인정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취업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내게 엄마는 오히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인정해야 할 것은 내가 ‘취준생’이라는 사실만이 아니다. 짧게는 5년간의 대학 생활 동안, 길게는 24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하며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을 인정해 주기로 결심했다. 내가 날 낮추고 깎아내리면 아무도 내 능력을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애쓰기 전에 일단 나부터 나 자신을 믿고 인정하기로 했다.
며칠 전,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는 친구를 만났다. 사실 친구를 부러워할 생각으로 나갔다. 로스쿨이라는 명확하고 안정적인 진로가 정해졌으니 고민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는 만나자마자 요즘 너무 불안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이 세상에 쉬운 길은 없고,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마음속 불안을 꺼내놓으며 서로를 토닥였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것은 불안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학교가 아닌 더 큰 세상으로 나만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 나 자신을 믿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이 고민의 끝이 보일 것이고, 또 지금을 추억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이 세상 모든 백수들, 같이 힘내봅시다.
[채호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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