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각예술로 위기에 대처하는 법, '슈퍼히어로' [시각예술]

인사미술공간의 주제기획전 '슈퍼히어로'
글 입력 2020.08.1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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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가들이 위기에 대처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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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론자가 아닌 이상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위기의 연속이다. 크고 작은 위험 상황은 쉬지 않고 개개인의 고통으로, 때로는 구조적인 문제의 형태로 세상을 덮친다. 이 사회는 거듭되는 위기를 밟고 일어선 뒤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하고, 그 위기를 또다시 피해가며 흘러가기 마련이다. 이것은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비관하며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그 과거 또한 한때는 현재였다는 점을 통해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2020년, 우리는 포스트 펜데믹을 맞이하며 유래 없는 범세계적 위기에 직면했다. 지금껏 메르스, 신종플루, 사스 등의 전염병이 우리에게 닥쳐 왔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 어느 때와도 다르다. 매우 높은 전염력과 치사율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계인들의 일상을 점령한 지 오래이다. 예기치 못한 전염병으로 인해 사회의 시스템은 순식간에 무너지는 듯 했지만, 인류는 현재의 상황에서 더욱 적합한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렇기에 동시대의 신진 작가들이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인사미술공간의 주제기획전 《슈퍼히어로》는 그 어느 때보다 호소력이 짙다. 제목 ‘슈퍼히어로’는 곤란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영웅적 존재가 과연 오늘날의 시대에도 존재하는지, 그것의 탄생은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이다. 전시에 참여한 김한샘, 우한나, 황민규 작가는 동시대에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신진 작가들로, 이번 전시에서는 ‘세상을 위기로부터 구원해줄 영웅의 존재’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종로에 위치한 인사미술공간에서 오는 8월 22일까지 개최된다. 전시를 관람하기 전 온라인 사전 예약은 필수이다. 전시실에 입장하면 예약 확인을 받은 뒤 체온을 측정하고 방명록을 작성해야 한다.
 
 
 
전시실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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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한나, 파자마파티,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0(음악 '고담': 괴롭힘의 냄새)
우한나, 까마귀, 혼합재료, 40x40x180cm, 2020
 
 
전시장은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진다. 플래카드가 걸린 유리문 너머로는 우한나 작가의 <파자마파티>가 엿보인다. 분홍색 카펫이 깔린 1층에는 <파자마 파티>와 더불어 <까마귀>가 전시된다.
 
고담이 작곡한 <괴롭힘의 냄새>의 경쾌한 음악은 잔뜩 어질러진 오브제와 어울려 미묘하지만 발랄한 전경을 연출하고 있다. 바닥에는 롤러스케이트나 다리미판, 파스텔톤의 드레스들과 실과 천, 솜이 터진 채 다트가 꽂힌 쿠션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조물들이 널려 있고 물감의 흔적이 요란하게 남겨져 있다.
 
벽면에도 마찬가지로 알록달록한 물감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비슷한 색감의 회화가 삐딱하게 걸려 있다. ‘파자마 파티’라는 제목 때문에 관람자는 이 장소가 이렇게 변화되기까지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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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민규, Star Gazing, 싱글채널비디오, 8분 17초, 2018
 
 
그리고 2층 전시실로 이동하면 입구 쪽의 벽에 황민규 작가의 'Star Gazing'이 상영되고 있다. 이 작품은 마치 태양과도 같은 붉은 행성이 이글대는 영상 작품으로, 1층에 펼쳐졌던 <파자마 파티>의 경쾌한 분위기를 순식간에 가라앉힌다. 영상 속 행성은 끊임없이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며 흔들리고 있다. 이는 작가가 해당 영상이 NASA에서 제공하는 행성 영상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프로그램상의 오류가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전시 리플렛에 따르면 이 작품은 ‘현재 위기 상황의 메타포로서 위기의 서막을 알려주는 신호’와도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펜데믹 상황을 전제하는 전시 서사에서 ‘행성’과 ‘오류’는 의미심장하게 결합된다. 정체 모를 행성의 이미지는 낯설기만 하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전지구적 위기 상황 또한 그 어떤 이미지보다도 낯설다는 점에서 그렇다. 행성의 안정성을 뒤흔드는 프로그램상의 오류는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일상의 체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바이러스의 위협성을 은유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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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민규, 야생 속으로, 싱글채널비디오, 12분, 2020
 
 
그리고 이어지는 작가의 신작 <야생 속으로>는 우리가 처한 현 상황을 비교적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영상은 1막과 2막, 3막으로 이루어진다. 1막에서는 위기 이전의 일상이, 2막에서는 위기 상황에 봉착한 상황이, 3막에서는 여행을 통해 희망을 향해 나아가려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황민규 작가는 파운드 푸티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형식과 대사를 빌리는데, 애니메이션 속 대사를 직접 촬영한 영상 속의 대사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그의 영상 작업들 속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 세계의 실체를 넘어선 신과 같은 존재. 그 대가로 오래된 생명은 멸망하는...”

 

 
작품 속에서 낭독되는 문장들이 모두 애니메이션 속에서 빌려온 것이라면, 그 애니메이션은 어떤 내용을 말하고 있을까? 환상과 비현실을 가장 강력하게 대변하는 매체인 애니메이션 속 대사가 우리의 현실과 들어맞는 순간,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위기 상황에서 애니메이션 속 히어로처럼 우리를 구해줄 누군가는 존재하는가?" 그렇기에 영상 속 애니메이션의 대사들은 현실과 비현실을 흐리게 하는 동시에 우리의 실제 상황을 환상적인 애니메이션과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분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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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샘, 산석도, mixed media, 78x110x2cm, 2020
 
 
황민규 작가의 작품들 뒤로 하며 김한샘 작가는 구석진 곳에 <산석도>와 <해석도>, <천석도>를 걸어 두었다. 이 작품들은 민속 신앙 중 복을 불러오는 제의 중 하나의 방식을 차용한다. 바로 자신이 태어난 곳과 가까운 산, 바다, 강에서 주워온 돌들이다. 그 위로 걸린 그림들에는 실제 돌의 모습과 함께 천사의 이미지가 마치 2D 게임과 같은 도트 캐릭터로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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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샘, 퇴마도, mixed media, 95x82x2cm, 2020

 

 

그리고 전시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제의실처럼 마련된 공간에서는 또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이때의 방식은 19세기 말 영국의 '황금의 효교단'이 구성했던 '4대 천사 소환마술'을 빌려온다.

 

이는 대천사를 등장시키기 위해 필요한 마술로, 가장 먼저 제의실이 필요하다. 바닥에는 마법진을 그리고, 방 중앙에서 동쪽 방향으로 제단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제단 양쪽에는 문기둥을 세워둔다. (참고 - <천사>, 마노 다카야 지음, 신은진 옮김, 2000, 도서출판 들녘) 작가는 이 조건을 충족한 뒤 중앙의 벽에 용과 천사의 대결 구도를 담은 그림을 걸어 놓았다.

 

 

 

주제와 작품 사이의 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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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한나, 파자마파티 중 일부

 

 

전시실을 둘러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영웅의 존재, 위기의 극복'이라는 주제의식과 각 작품들이 얼마나 연관되는가? 이 질문에 가장 모호한 답변을 내놓는 것은 우한나 작가의 작품이다. 전시 설명문에 등장하는 키워드를 훑어 보면, '주인공이 사라진 무대', '위기에 처한 현실과 환상이 혼재된 듯 보이는', '광기 어린 여성을 영웅으로' 등의 단어들이 눈에 띈다. 작가는 지금까지 특정 대상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그를 둘러싼 서사를 상상해 공간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번 작업에서는 '주인공의 부재'를 앞세우고 있다.

 

'파자마파티'란 마냥 신나고 즐거운 이벤트이다. 하지만 이 상황을 이번 전시에서는 위기로 상정한다. 난장판이 된 현장과 명확하지 않은 파티의 주인공은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이 혼돈을 일으킨 것은 누구인가? 이 장소를 누빈 이들은 누구였을까? 영웅이 되어 이 상황을 구제할 이는 또 누구인가? 그리고 작가는 이 자리를 여성들로 채운다. 설명문에 따르면, 작가는 이를 통해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여성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무대를' 창조한다. 즉 작가는 혼돈의 상황을 전복시켜 여성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그리고 이때 추출할 수 있는 세 작가들 사이의 공통적 키워드는 '실제와 환상'이다. 우한나 작가가 구축한 공간은 가상의 상황을 가정하고 펼쳐진 공간이지만 우리는 그곳을 실제로 거닐며 마치 탐정처럼 그 상황을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황민규 작가의 작업 속 애니메이션에서 추출한 대사와 직접 촬영한 모큐멘터리 영상은 현실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 내용 자체는 우리의 상황과 가장 가까운 오늘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와 진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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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샘, 퇴마도 앞의 제단

 

 

마지막으로 김한샘 작가의 작품 또한 그렇다. 그는 이전의 개인전에서부터 용 vs 천사의 대결 구도를 통해 더 강력한 수호자의 등장을 염원하고 있다. <퇴마도>가 걸린 마지막 전시실을 떠올려 보자. 실제로 이루어졌던 마술의 방식을 가져왔지만, 그것은 '대천사'를 부르기 위한 마술이다. 그 방법으로 대천사를 소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판타지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이 마술은, 제단 위의 '재난지원카드'를 목격하는 순간 현실의 범주 안으로 빨려들어온다.

 

2차원 게임 속에 등장할 것 같은 대천사와 용의 캐릭터와 대비되는 제단 위의 지폐와 동전, 재난지원카드는 현 상황에서 어떤 존재가 영웅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점을 남긴다. 이 상황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믿을 수 있는 신 같은 존재일까? 그러나 그것이 실질적으로 위기로부터 우리를 구해줄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렇다면 돈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걸까? 이렇게 김한샘 작가가 마련한 제의실은 강력한 구원자를 간구하는 동시에 우리의 현 상황을 되돌아보게 한다.

 

*

 

코로나 바이러스가 문화예술계에 가한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문화예술계는 이 상황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새로운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은 현실적인 방안, 이를테면 온라인 전시 등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인사미술공간의 이번 전시처럼 특정한 주제의식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주제는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시의성이 짙은 전시는 종종 시류에 편승하는 움직임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사미술공간의 《슈퍼히어로》는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주제의식을 무게 있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첫 번째로는 '시각예술로 지금의 위기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각예술에서만 가능한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의 상황에 기민하게 안테나를 세우고 감지된 것들을 나름대로의 언어로 표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이러한 힘을 관람객들로 하여금 직접 확인하게 만든다.

 

두 번째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현재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품을 수 있는 물음을 주제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항상 새로운 위기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지금의 상황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떤 혼돈이 닥쳐와도 우리는 이번 전시의 내용을 유연히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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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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