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대사회의 무대에 올라 균형 잡는 신 - 연극 '라스트 세션'

글 입력 2020.08.1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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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세션] 공연사진_남명렬(1)(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다원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신 논쟁'


 

정교한 체계가 없을지언정 궁극적 존재에 대한 설명이 없는 문명이 드물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랍게 한다.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 종교에 대한 논쟁이 인류에게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가 종종 신의 존재를 단순한 환상의 신비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주도하는 궁극적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 원동력이 무엇이었건, 인류의 문명은 명목상으로나마 신의 시선을 기반 삼아 건설되었다.

 

신화에서 나오는 사도들은 신에 대한 확신을 강조한다. 확신은 그 대상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확인한 신의 이름은 선의와 도덕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폭력과 차별을 하도록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유신론자의 방식을 모두 계몽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무신론자의 종교` 역시 그들이 비판하는 방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혐오와 차별을 낳는다.

 

정보 과잉을 넘어서 남용되는 현대사회에서 신의 이름은 더는 이성과 도덕을 표현하는 단일표현이 아니다. 신에 대한 확신은 숭고하기보다 두렵게 느껴지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몇몇 무신론자의 주장대로 우리가 지켜내야 할 인간의 비판능력과 합리성은 폭풍의 눈에 놓인 촛불처럼 연약하다.

 

명료한 진실보다 모호한 가능성이 더 현실과 가까운 것을 추구하는 다원주의를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각 입장은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연극 <라스트 세션>은 이에 대한 나름대로 답변을 제시한다.

 

<라스트 세션>은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가 직접 만나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 극이다. 유신론과 무신론의 논쟁의 뜨거운 감자가 되는 `종교적 본성`, `선천적 도덕률`, `성경의 역사성` ,`자유의지 문제`, 프로이트로서는 리비도로 표현된 `성욕의 충동` 문제를 차례대로 논쟁한다.

 

각각에 대한 사상가들의 간략하게 기술하자면 아래와 같다. 루이스의 경우 인간이 선천적 도덕률로 대표되는 종교적 본성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았으며, 성경이 가진 역사성을 강조한다.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의지, 나아가 신을 믿는 것을 선택하는 힘을 신의 선물로 보았다. 그런 그에게 성욕은 신이 선물한 유희 중 하나다.

 

프로이트는 루이스의 주장을 아래와 같이 반박한다. 인간의 행위와 정신의 바탕에는 발달단계에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성적 에너지, 즉 리비도가 존재한다. 리비도의 이동에 따른 욕구의 고착에는 근본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결되어 있고, 흔히 말하는 이상적이고 엄격한 `아버지`의 자리에 신이 들어찼다고 주장했다.

 

극에서 표현된 루이스는 예의 바르지만 도전적인 젊은 교수고, 프로이트는 박식하지만 괴팍하고 뛰어난 이론가다. 프로이트의 괴팍한 성격은 거침없는 입담과 농담으로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극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둘은 마지막까지 논쟁하지만, 논쟁하는 상대를 고깝게 보지 않는다. 전쟁의 포격이 언제 떨어질까 걱정하는 과정에서 루이스와 프로이트는 서로의 가장 큰 아픔을 노출한다. 루이스가 프로이트의 방을 떠날 때 즈음에는 서로서로 이해하고 살아갈 공통점마저 찾는다.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상윤,신구(2)(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연극의 놀라운 균형 잡기


 

이 연극의 가장 좋은 점은 균형을 잘 잡는 데 있다. 연극은 유신론과 무신론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진영의 논쟁을 주제로 삼으면서, 각 등장인물을 화합에 이루는 과정을 지속해서 보여준다. 무거운 주제의 가장 흥미로운 의제를 따오되, 두 사람의 가벼운 농담과 등장인물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끼워 넣음으로써 관객의 집중도를 높인다.

 

이 연극이 하나의 논쟁 극이 아니라 연극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이 절묘한 균형에 있다. 연극의 전체적인 주제를 음악의 청취(모호한 것을 감상하는 것)로 연결하고, 유신론자와 무신론자가 `보험`으로 대표되는 현실에서 인간이 가진 고뇌에 대한 답으로 제시함으로써 메시지를 뚜렷이 전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라스트 세션>은 매우 관객 친화적인 극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하 내가 써내려가는 비판은 매우 개인적인 취향에 기반을 둔다. 이 연극은 매우 관객 친화적인 `연극`이다. 이는 의도적으로 현대사회에 보낸 메시지로 설계된 작품이란 것이다. 따라서 두 주인공의 현실적인 갈등이 제거되고, 두 인물은 말 그대로 이상적인 형태로 상호작용한다.

 

연극에서 사용되는 대사는 모질지만, 두 인물 사이에는 이상하리만큼 포근한 기운이 감돈다. 프로이트는 노골적으로 잃어버린 이상적인 아버지의 우상으로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냐 묻고, 심지어 자세히 알지 못한 친구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묻는다. 루이스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똑같이 말하진 않지만 안나와의 복잡한 관계와 프로이트가 가진 약점을 지적한다. 사실 내가 아는 프로이트도 그렇고, 이 부분에서 루이스건 프로이트건 누구 하나는 의자를 드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갈등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나는 각 이야기가 너무 평화로울 정도로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는 것이 아쉽다. 연극은 이야기에 무게가 실리기 전에 폭격기 소동이 일어나는 것으로 끊어낸다. 이런 연출은 통합과 이해가 사상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실존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인위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라스트 세션>의 메시지는 사상적인 대결이 아니라, 통합에 있다. 사실 그래서 불필요한 비판이라 생각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두 이론가의 논쟁이 생각보다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참 아쉬웠다. 만약 이 연극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무신론과 유신론 논쟁의 새로운 방향을 찾고 싶은 관객이었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인간의 실존적인 통합은 모든 대립하는 논쟁에서 내밀 수 있는 대답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대답은 그만큼 어떤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다만 초기에 내가 바랬던 것은 이런 메시지에 `신 논쟁`에서 더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내 개인적인 취향이고, 내가 지적한 부분 자체가 연극적으로 갖는 장점은 매우 뚜렷했다. 연극은 무신론과 유신론의 논쟁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를 두 캐릭터에 맞춰 해석하는 재미를 효과적으로 선사했다.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석준,남명렬(3)(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나가며


 

극장을 나오면서 <라스트 세션>의 건너편에 뮤지컬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홍보물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연극 자체도 재밌었지만, 비슷한 성질을 가진 두 작품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라스트 세션>이 유신론과 무신론을 통합하는 시선에서 작품을 그려냈다면, 뮤지컬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독실하지만 동시에 신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던 막내 아들의 시선에서 작품을 그려낸다. 두 작품이 표현하는 형식, 방식도 퍽 다르다.

 

두 작품이 어떤 그림을 그리건, 현대인이 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참 흥미롭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고민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어쩌면 이 부분이야말로 <라스트 세션>의 작가가 의도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신이 실제로 존재하고, 존재하지않건을 떠나 우리는 추상적 주제를 상상하면서 손으로는 보험을 등록할 것이다.

 

 

포스터.jpg

 

 

라스트 세션

- Freud's Last Session -



일자 : 2020.07.10 ~ 2020.09.13


시간

화, 수, 금 오후 8시

목 오후 4시

토 오후 3시, 6시

일 오후 2시, 5시

 

*월 공연 없음

*08/09,16,23,30 일요일 2시 공연만 있음


장소 : 예스24스테이지 3관


티켓가격

전석 55,000원

  

주최/기획

(주)파크컴퍼니


관람연령

14세 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90분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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