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린 진짜 이대로 괜찮을까? -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극]

글 입력 2020.08.1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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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찬란해야 할 것 같지만

그리 찬란하지만은 않은 청춘들의 이야기,

그 어느 누구나 주인공일 수 있는 이야기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제목을 보고 연극을 꼭 봐야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현재 나를 포함한 주위 모두가 찬란하지만은 않은, 어찌 보면 아슬아슬한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불안정성, 정체성, 미래 등의 이야기를 한다. 각자가 본인에 대해 계속 혼자 생각을 하다, 모여서 그 생각들을 나눈다. 그리고 모두 동의하는 바, "인생 참 살기 힘들다"를 반복한다. 그렇다고 연극을 통해 위로를 얻으려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저 연극의 제목이 나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 같아서 끌렸다가 맞겠다.

 

그렇게 감상하게 된 연극은, 어쩐지 모르게 너무 긍정적이었다. 소극장 연극 특유의 가벼운 로맨스, 개그, 캐릭터 설정이 연극을 이루었다. 얼떨떨한 상태로 극장을 나와 처음으로 리뷰의 초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원작 웹툰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까마중 작가님의 동일 제목 웹툰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앞서 말했듯이 조금 혼란스러운 상태로, 연극을 본 후에 정주행을 하였다. 웹툰을 모두 보고 느낀 것은, 연극이 훨씬 더 발랄한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더 묵직한 웹툰에 비해 시간적, 공간적 제약과 연출의 특징 때문에 소거된 부분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아예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자체에 대한 리뷰를 쓰려 한다. 장르를 한정 짓지 않고, 웹툰과 연극을 통틀어 내가 찬란이의 이야기를 보고 느낀 감상을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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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웹툰의 큰 이야기 틀은 다르지 않다. 찬란하게 살라는 의미인 이름 '이찬란'이 너무도 안 어울리는 평범한 철학과 학생이 우연히 연극부에 들어와 일어나는 이야기. 그녀는 폐부 직전인 연극부의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며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알게 모르게 변화한다.

 

웹툰은 마치 만화가 아닌, 줄글로 이루어진 책의 인상을 주었다. 읽으며 굉장히 많은 인용구들을 스크랩하였고, 이 인용구들은 전부 가벼운 것이 아닌 진실되고 깊이 있는 것들이었다.

 

읽으면서 공감된 연극부 신입부원인 이찬란과, 그녀와 함께 하는 또 다른 주인공들인 윤도래, 권 유, 최시온, 김혁진의 이야기를 옮겨보았다. 독자 분들도 잔잔한 그들의 말을 따라가 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이 떠오르든 음미하시길 바란다.

 

 

생각이 많아져. 어떤 노력을 어떻게 더 해야 하는 걸까. 기업을 정해서 그 구미에 맞게 내 성격, 특기, 취미까지 바꾸면 되는 걸까. 더 노력하면 정말 나를 '남보다 더 쓸모 있는 인간'으로 여겨주긴 할까. - 시온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어요. 당신 잘못 아니라고. 당신은 버틴 것만으로 박수받을만하다고. - 찬란

 

 

나는, 날 싫어하는 사람 탓하는 것도 부질없다 생각해. 찬란이 말대로 '날 싫어할 만한 기억과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부족하고 불쌍한 사람'일뿐이잖아. - 도래

 

 

하지만 알고 보면- 그건 진짜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사회, 부모, 친구 등 '타인이 원할만 한 것'을 내가 원하도록 착각하게 됐을 뿐이란 거예요. 타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만든 거겠죠. 그 타인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인정받고픈 타인, 내 욕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타인을 '대타자'라고 해요. B에게는... 그 대타자가 바로 '엄마'일 것 같아요. 나의 대타자도 사실 타인들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뿐일 수도 있어요. ... 그럼 애초에 모두가 타인들의 영향을 받는, 부족한 사람들일 뿐이네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 찬란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가 '사랑을 주는' 입장이 되려고 해. '날 사랑해 줄 사람' 말고, '내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을 선택할 거야. - 진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어도 행복한 순간만 있진 않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행복한 순간을 거의 다 놓치게 될 거야. - 도래

 

 

나는 이제 엄마의 "미안해"를 "사랑해"로 번역해 들을 줄 압니다. - 찬란

 

 

'아... 틀이 깨지는 건 이렇게 한순간이구나. 이렇게 아무것도 아니구나.' 어쩌면 내가 여태껏 놓지 못하고 있던 것들도... 이렇게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니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 그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놓지 못해서 내 앞에 있는 진짜 중요한 걸 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 찬란

 

 

바다에 몸을 맡겼을 때와 같은 감각을 느낍니다. 한순간이구나.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거구나. - 찬란

 

 

사랑은 받으려고만 하는 것도 이기적이지만, 자기 방식대로 주려고 하는 것도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 - 진

 

 

가짜 사랑에 눈이 가려진 그들은... 계속 어둠 속을 헤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실타래를 풀었습니다. 다시는 그 실을 붙잡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가짜 평화, 가짜 연합을 이루기 위해 진실을 기만하지도 않을 겁니다. -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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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란은 가정폭력과 가난 때문에 보통의 20대가 꿈꾸는 것은 포기한 채 살아갔다. 본인이 주인공이 될 일도 없었고, 지나친 자기 연민에 휩싸여 연극 제안을 받았을 때로 "저 그렇지 한가하지 않습니다"라고 공격적으로 받아친다. 그리고 본인의 전공인 철학, 그리고 논리를 무기로 삼으며 자신을 과도하게 방어한다.

 

하지만 연극을 준비하면서 저마다의 상처가 있는 연극부원들과 지내며, 본인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아래 구절은, 연극을 마치고 연극부원들에게 하는 말이다.

 

 

몇 년 동안 철학, 논리를 공부했지만 사람을 살리는 건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요. 상식을 벗어난 만남,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우정, 잘못된 건 질책해 주고 변할 수 있다고 묵묵히 격려해 주는 진짜 사랑, 진짜 믿음이 절 살렸어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 찬란

 

 

웹툰은 내내 잔잔했다. 그 잔잔한 길을 독자가 좇다 보면, 어느새 찬란이는 자연스레 변해 있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상황 등의 큰 변화는 없다. 판타지적 변화 없이 오직 주인공의 마음가짐만 바뀐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운을 느끼며 '내 인생도 이렇게 현실적이고 특별할 것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괜찮구나'라고 생각이 들 것이다.

 

연극의 아쉬운 부분들이 이해는 간다. 인물의 독백 위주인, 그의 생각을 천천히 따라가는 작품이 얼마나 다른 매체로 구현하기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철학적, 인문학적인 고찰들이 굉장히 많이 담겨 있는 이 웹툰 같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웹툰이든 영화든 본인이 지금 어떤 의미에서든 혼란스럽다면, 추천한다. 나는 웹툰을 보며 오열하였고, 과거와 최근의 기억들이 떠오르고 겹치며 자연스레 내 인생, 내 상황에 대해 사고하게 되었다. 연극을 보면서는 웃고 때론 생각에 잠기며 감상하다, 마지막 스크린에 나오는 배우분들의 연습 장면들을 보고 이상하게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이번 리뷰는, 너무나도 마음에 와닿은 까마중 작가님의 말로 마무리하려 한다.

 

 

나 자신을 타인의 '대상'이 아닌 내 삶의 '주체'로 존중하는 것. 타인을 나의 '대상'이 아닌 본인 삶의 '주체'로 존중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돼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주체로 존중받으며 자유롭게 살 수 있길.

 

- 웹툰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39화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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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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