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결핍투성이 가족의 종말 막기 프로젝트 [TV/드라마]

Netflix 드라마 <엄브렐러 아카데미>(The Umbrella Academy)
글 입력 2020.08.1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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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브렐러 아카데미>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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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시즌2가 공개되었다. ‘마스크’, ‘헬보이’ 등으로 알려진 다크 호스 코믹스의 그래픽 노블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초능력을 가진 남매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엄브렐러 아카데미

 

1989년 어느 날, 임신하지 않은 43명의 여성이 갑자기 아기를 낳는다. 그중 일곱 아이를 억만장자 하그리브스 경이 입양하고,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만든다. 각자 특별한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세계를 지키기 위해 길러진다.

 

아이들은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했고, 숫자로 불리며 정체성과 자아를 박탈당한다. 모종의 이유로 가족이 분열되고,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이야기는 아이들이 문제 많은 어른으로 자라난 이후 시점에서 시작한다.

 

‘넘버 1(루서)’는 아버지가 보낸 임무 때문에 달에서 계속 지내고, ‘넘버 2(디에고)’는 불법 자경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넘버 3(앨리슨)'은 슈퍼스타다. ‘넘버 4(클라우스)'는 마약과 술에 찌들어 살고 있다. ‘넘버 7(바냐)'는 남매 중 유일하게 초능력이 없는 인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평범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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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삶을 살던 어느 날, 아버지 하그리브스 경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다섯 남매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다시 모이지만, 이들을 사이의 공기는 삭막하다. 바냐는 자서전을 통해 가족의 비밀을 낱낱이 밝힌 상태고, ‘넘버 5(파이브)’는 어린 시절 집을 뛰쳐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넘버 6(벤)’은 임무 중 죽었고, 엄브렐러 아카데미에는 그의 동상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명색이 아버지의 장례식인데, 자식들의 모습은 콩가루 그 자체다. 그리고 그 앞에 사라졌던 파이브가 나타난다. 종말과 함께.

 

 


결핍투성이들

 

흔히들 히어로물 하면 ‘team-up’ 무비처럼 영웅들이 한데 모여 활약하거나, 영웅의 인간적 고뇌를 보여주는 등, 이와 유사한 것들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남매들은 영웅이라기엔 뭔가 모자라고, 평범한 인간이라기엔 뭔가 과하다. 한 마디로 문제적이다.

 

이 남매들의 이야기는 답답함 그 자체다. 분명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소통 불가능한 존재다. 종말을 막는 히어로들이 아니라, 종말을 일으키는 민폐 히어로들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여태 봐왔던 히어로물 중에, 이토록 처참한 개인플레이가 있었나? 이 형제자매들에게는 '히어로'라는 수식조차 과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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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아이들은 모두 결핍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그리브스 경은 ‘아버지’가 아니라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이끄는 냉혹한 수장이었고, 어머니는 ‘기계’다. 정상적인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서툰 모습만을 보여준다.

 

루서는 항상 아버지를 따르고 일방향적인 애정을 표한다. 디에고는 영웅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앨리슨은 자신의 능력으로 일궈나간 삶을 거짓되다고 느낀다. 클라우스는 어릴 적 무덤에 갇혔던 트라우마로, 마약과 술에 의존한다. 파이브는 독단적으로 시간 여행을 강행한 후, 종말 이후 세계에 45년간 갇힌다. 평범한 바냐는 능력을 가진 남매들 사이에서 외로움과 소외감, 그리고 열등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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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알고 보니 바냐는 평범하지 않았다. 어릴 적 바냐의 능력을 통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하그리브스 경은 앨리슨의 능력을 바냐에게 써서 스스로 평범하다고 믿게 한다. 평생 동안 가스라이팅 당하고, 능력을 억누르는 약을 먹고 살아왔던 바냐가 자신의 능력을 인지하면서 종말의 바람이 분다.

 

다른 형제자매들이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된다. 결국 이들은 종말을 막지 못한다. 바냐로 인해 멸망하는 세상을 뒤로한 채, 파이브는 가족들을 데리고 시간 여행을 시도한다. 이 대목이 시즌1의 엔딩이다.

 

시즌1은 아버지의 죽음, 종말 등 진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속의 인물들은 전혀 진지하지 못하다. 겉만 어른이지 속은 10대 때에 머물러있다. 미성숙하고, 모자라고, 결핍투성이다. 능력 또한 완전하지 않다. 종말을 막기 위해 모였지만 이들의 행적은 오히려 종말을 불러들인다. 실패에, 실패를 겪는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2는 미국 60년대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따로따로 60년대의 댈러스에 불시착한다. 1960년에는 클라우스와 벤이, 61년에는 앨리슨이 떨어진다. 이후 1962년에 루서가, 63년에 디에고가 각각 댈러스에 도착한다. 얼마 후, 같은 63년 바냐가 댈러스에 착륙한다. 각자 다른 시점에, 개별적으로 도착했지만,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나간다. 시즌1에서 목격했던 '개인플레이'와 유사한 삶을 살아간다.

 

파이브는 1963년 11월 25일의 댈러스로 불시착한다. 하지만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건, 또 다른 종말이다. 종말이 엄브렐러 아카데미 남매들을 따라왔다. 형제자매들을 마주한 기쁨도 잠시, 저 멀리서 핵탄두가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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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종말을 목격한 파이브는 조력자에 의해 10일 전으로 돌아가고, 시간대를 복구해 인류를 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와 직면한다. 시즌2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시즌1과 유사하다. 종말을 막아야 한다.

 

시즌1을 거쳐 60년대로 착륙한 남매들의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가족이지만 서로에게 이방인이나 다름없었던 이들은, 조금이나마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대화를 시작한다.

 

물론 '완벽한' 가족이 된 건 아니다. 이들의 종말 막기 프로젝트는 여전히 좌충우돌이다. 각자의 목표를 더 우선시하고, 종말의 심각함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기 바쁘다. 소통법에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 발자국 나아간다. 마지막에 다 함께 모인 모습은, 제법 '가족'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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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히어로물들이 '성공하는' 히어로들을 보여준다면,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실패하는' 히어로들을 보여준다. 결핍투성이에, 미성숙한 이들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여전히 성장기다. 끈끈한 가족애와 동지애보다는 애증으로 가득 차 있고, 능력 또한 십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은 나아가는 중이다.

 

결핍투성이들이 모여 만들어나갈 새로운 모습의 가족과 이들이 지켜나갈 세상이 기대된다.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리즈의 궁극적인 스토리텔링은 '이들의 성장' 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들 또한 성공하는 히어로가 될 테다. 그게 히어로의 미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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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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