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역사상 가장 오래된 논쟁, 연극 '라스트 세션'

가장 멍청한 짓은 그렇다고 생각하길 멈추는 것이다.
글 입력 2020.08.1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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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자와 무신론자처럼 오랜 기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집단이 있을까.

 

유신론자였다가 무신론자가 되거나, 무신론자였다가 유신론자가 되는 경우가 흔치 않게 있지만, 그런데도 해당 집단에 들어가면 서로의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신이 있기도 하지만 없기도 하다’는 문장처럼 회색 진영이 들어서기 힘든 주장이 바로 신의 존재에 관한 입장 표명일 것이다.

 

<라스트 세션>은 이런 두 집단의 흥미를 돋울만한 연극이다. 세기 무신론의 시금석으로 불리는 프로이트와 대표적인 기독교 변증가 루이스는 신의 실증에 대한 질문에서 나아가 삶의 의미와 죽음, 인간의 욕망과 고통에 대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고도 재치 있는 논변들을 쏟아낸다.

 

두 인물이 만난다는 가상의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라스트 세션>은 “마치 펜싱 시합을 보는 것 같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오가는 대화의 밀도가 높다.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남명렬(4)(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사진 제공_파크컴퍼니)

 

 

그렇다고 진지한 토론의 현장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평소 유머를 즐겼던 루이스와 농담에 대한 연구를 남긴 프로이트다 보니 공연 내내 재치 있는 입담이 오간다. 덕분에 전쟁 중이란 배경 설정에도 극 자체가 마냥 무겁지 않다. <라스트 세션>에서 사용되는 유머는 분위기의 전환을 맡으면서 합의할 수 없는 대화가 늘어지지 않게 막아 몰입도를 높인다.

 

루이스와 프로이트가 예의 바르면서도 물러서지 않으며 주장을 피력한다. 그때 켠 라디오에서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프로이트는 “신의 가호가 있길 바라야겠다.”고 말한다. 무신론자가 신의 가호를 바란다는 점은 의외의 웃음 포인트다. 프로이트는 불쾌하고 머쓱한 투로 습관이라고 말한다.

 

특히 서양에서는 신이 인간의 문화에 큰 부분으로 남아있다.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도 무심코 신을 찾게 된다. 재채기하면 “Bless You”라는 말을 듣거나, 놀라운 일이 있을 때 “Oh, My God”라 외치는 것, 욕으로 “Go to hell”하고 말하는 것 모두 신과 관련된다. 이 무의식적에 신을 찾은 대화가 치열한 대화를 잠시 부드럽게 만들고, 다른 대화로 이어지게 만드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석준(2)(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사진 제공_파크컴퍼니)

 

 

신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지만, 인간이 만든 종교 자체에는 무척 회의적이라 공연 시작 전 걱정이 들었다. 신이 실존하는가에 대해 말하는 대부분의 경우 유무 둘 중 한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다른 의견을 사용했다. 그러니 매번 지나치게 공감하거나 반발심만 들었다.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공연 자체에 집중하지 못할까 조심스러웠다.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겠다 다짐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대화는 중립을 지키고 있는데다가, 논리적으로 서로의 이야기에 반박한다. 가령 신의 존재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루이스는 붓다도 자신을 신이라 말하지 않았고, 알라를 섬기는 자 무하마드도 자신이 신이라 말하지 않았으나 예수는 다르다는 점을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로 들었다.

 


프로이트 : 나와 상담을 하는 환자 중에도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 말하는 자가 많다. 그렇다면 그들도 모두 신의 아들이 되는가?

루이스 : 하지만 과연 당신의 환자 중 신의 아들이라 말하는 것 외에 현실 인지 능력에 문제가 없는 자는 존재하는가?

프로이트 : 그렇지 않다.

루이스 : 그렇다면 예수가 환자라는 주장은 힘을 잃는다. 또,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사건을 꾸민 사기꾼이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그랬겠는가. 3일 후 다시 태어나 조용히 사라지기를 선택해서 사기꾼이 얻을 이익이 무엇이 있는가.

프로이트 : …….

 

 

루이스는 이 부분을 들어 예수가 사기꾼도, 환자도 아니라 신 그 자체라고 말했다. 단순히 본인의 신앙이나 성경에 적혀있다는 이유가 아니라, 신이 아닌 이유를 제거함으로써 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방식은 관객에게도 그럴듯하다. 그렇다고 갑자기 신의 신앙심이 생기진 않지만 적어도 유신론자를 조금은 이해할 발판이 된다.

 

프로이트의 주장은 극의 배경과 맞닿아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1939년, 이미 모두 끔찍한 전쟁을 겪어 피폐하고 고통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럼에도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은 신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 적절한 순간이다. 프로이트는 신이 존재한다면 대체 무슨 이유로 사람들을 죽이고, 전쟁을 벌이느냐 외친다.

 

말년에 구강암으로 입천장 전체를 드러내야 했던 프로이트이기에 더욱 비관적일수 밖에 없다. 신앙심을 가진다고 전쟁이 끝나고 병이 치유되지 않으니 신뢰성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루이스는 전쟁을 하는 건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 단언한다. 또, 어쩌면 삶은 고통스럽고 신은 이를 통해 깨달음을 주시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장한다.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상윤(1)(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사진 제공_파크컴퍼니)

 

 

연극은 신에 대한 논쟁이 일상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며 흥미를 유지한다. 다른 화제로 빠진 듯 보이는 대화는 다시 본래의 주제와 긴밀한 연결이 되면서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인다. 프로이트는 전쟁 뉴스를 듣기 위해 틈틈이 라디오를 켜다가도 음악이 나오면 가차 없이 꺼버린다. 감정에 의문이 들기 때문에 음악을 싫다고 말한다.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볼 때 감동하는 것은 이유가 명확한데, 음악은 이유도 없이 감정이 밀려드는 것이 불쾌하다고. 단순히 음악을 싫어하는 이유처럼 느껴지나 신을 믿지 않는 이유와도 이어진다.  기적이나 두터운 신앙심은 큰 감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프로이트는 이런 감동에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도 둘의 주장은 일치하지 않는다. 루이스는 감정을 느끼길 두려워하는 것이라 질타한다. 감정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므로 꼭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는데, 이유를 찾으며 감정을 불쾌하게 느끼는 것은 감정 그 자체를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신을 믿고 난 후 (프로이트라면 이유를 알지 못해 불쾌했을) 평온과 희열을 느낀 루이스에게는 프로이트의 행동이 무조건적인 차단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해결된 적 없는 미스터리를 단 하룻밤 만에 결론지으려는 멍청한 짓을 했네요.

 

자네, 가장 멍청한 짓이 뭔 줄 아나? 그렇다고 해결하기를 멈춰버리는 것이야.

 

 

삶과 죽음, 문화, 유머, 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둘의 대화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럴 수 없는 문제이다. 프로이트가 큰 감명을 받아서 신의 존재를 믿거나 루이스가 그의 논리를 인정하고 신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더라도 실제로 신을 보지 않는 한 완벽한 결론이 지어질 수 없다.

 

둘 사이에서 결론이 지어진다 한들 여전히 신을 믿거나 믿지 않은 많은 사람이 토론할 것이다. 결론이 없다고 토론에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면 삶의 대다수가 의미 없어진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만으로 사고 범위가 확장된다. 신에 대한 다각 면의 시야를 공유받은 관객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신념이 바뀌진 않으나 적어도 상대에 대한 이해가 생기니까.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상윤,신구(1)(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사진 제공_파크컴퍼니)

 

 

논쟁은 철학적이지만 어렵지 않다.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일상적인 예시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대화가 또 있을까. 또 방대한 텍스트를 이렇게까지 집중력 있게 풀어낼 수 있는 연극이 얼마나 될까. 창작극이 아니라는 게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번역과 실제 프로이트 방을 그대로 재현한 것처럼 각종 오브제로 가득찬 무대는 공연을 더욱 돋보이게 돕는다.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대화는 결국 보편적이며 일상적인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탐구가 바탕이 된다. 그러니 신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관심이 없는 자, 죽음을 바라는 자와 삶을 갈망하는 자 누구라도 일정 부분 공감할 것이고 일정 부분 이해할 것이며 지적인 유쾌함에 흠뻑 젖을 것이다.

 

 

포스터.jpg


 

라스트 세션

- Freud's Last Session -


일자 : 2020.07.10 ~ 2020.09.13

시간
화, 수, 금 오후 8시
목 오후 4시
토 오후 3시, 6시
일 오후 2시, 5시
 
*월 공연 없음
*08/09,16,23,30 일요일 2시 공연만 있음

장소 : 예스24스테이지 3관

티켓가격

전석 55,000원

  

주최/기획

(주)파크컴퍼니


관람연령
14세 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90분
 
 
 

전문 김혜원.jpg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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