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스타그램의 ‘좋아요’에 흔들린다면 [문화 전반]

인간이기에 당연한.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글 입력 2020.08.0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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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게시된 오피니언 ‘인스타그램의 좋아요가 사라진다면?’을 흥미롭게 읽었다. 나 역시 sns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껴 본지라 공감 가는 내용이었다. 한때는 팔로워가 늘지 않고 적은 좋아요 수에 울적하기도 했고, 화려한 피드와 현실의 괴리에 여러 번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영양가 없는 정보와 관계들로 피로가 더해진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이 없는 삶은 지속하기 어려웠다. 가고 싶은 가게의 예약을 인스타그램으로만 받는 경우, 필요한 정보를 인스타그램으로만 게시, 심지어 대외활동과 아르바이트에도 인스타그램은 가산점이었다. 이시대의 인스타그램은 마케팅의 중요한 수단, 모든 정보의 바다이다.


우리는 왜 인스타그램에 흔들리는 걸까? 과연 ‘좋아요’가 없으면 편안해질까? 나는 너무나 흔들렸기에 그 원인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이라고 확신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의 말을 인용한다.


 
부모나 연인에게서 원하는 것을 표현할 때 사랑이라는 말을 세상에 원하는 것, 또 세상이 제공하는 것에도 사용할 수 있을까? 사랑은 가족에서 나타나든, 성적 관계에서 나타나든, 세상에서 나타나든 일종의 존중이라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정의해 볼 수도 있겠다. 누가 우리한테 사랑을 보여주면 우리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의 존재에 주목하고, 우리 이름을 기억해 주고, 우리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고, 약점이 있어도 관대하게 받아주고, 요구가 있으면 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관심을 가져주면 우리는 번창한다.


- p16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이렇게 남들의 반응에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시를 받든 주목을 받든, 칭찬을 받든 조롱을 당하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엉터리로 우리를 칭찬하는 소리에 귀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엉터리로 우리를 칭찬하는 소리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여, 다른 사람이 우리가 못났다고 넌지시 암시한다 해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아주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똑똑하다는 증거도 댈 수 있고 바보라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익살맞다는 증거도 댈 수 있고 따분하다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중요한 인물이라는 증거도 댈 수 있고 있으나마 한 존재라는 증거도 댈 수 있다. 이렇게 흔들린다면 사회의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혹시 남의 애정 덕분에 우리 자신을 견디고 사는 것은 아닐까?


- p22

 


‘좋아요’가 없어진다면 그것으로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좋아요’에 흔들리는 사람이 ‘좋아요’가 없다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실제로 흔들리는 나와 달리 내 주변에는 인스타그램을 자주 하면서도, 적은 좋아요 수에도 신경 쓰지 않고 유용하고 알차게 인스타그램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에서, 온라인은 오프라인을 미적지근하게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이 미묘하고 복잡한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가치와 기준을 확실히 하는 것뿐이다. 그러고 나서 생산자와 발언자가 됐을 때 이 좋아요의 기능은 꽤나 유용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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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의 영향으로 시각적 감수성이 크게 향상된 공간들. 경쟁적인 특성은 시각적 감수성 뿐 아니라 질과 디테일로 이어졌고, 오늘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무척 다채롭고 방대하다.

 

 

의미 있는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른다면 우리는 발언을 하는 것이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다. 나는 나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 그림과 글에 좋아요를 누르며 연대한다. 그리고 스토리를 통해, 나의 게시글을 통해 퍼트린다. 때로 ‘좋아요’가 없다면 중요한 발언에 힘을 보탤 수 있을까 생각한다.

 

물론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손가락 하나면 되기에 더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법이다. 보이는 좋아요 수로 연대의 힘을 보여줄 수 있다. 환경운동, 여성운동, 사회적 약자, 우리는 ‘가치’를 위해 투쟁의 도구로 인스타그램을 사용할 수 있다.


반대로 콘텐츠의 생산자가 되었을 때 ‘좋아요’의 개수를 통해 사람들의 수요를 파악할 수 있다. 나의 게시물의 좋아요가 아닌 다른 사람의 콘텐츠의 좋아요를 통해 파악한 성향은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 원동력이 되고 실제로 더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좋아요의 개수가 아니라 ‘저장’한 사람의 수가 많을 때 기분이 좋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이미지를 평가받는 객체가 아니라 좋은 영향을 주고 싶은 주체가 되었다. 그래서 아예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지만, 훨씬 덜 흔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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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명소에 혼자 있기

 


그렇게 조심스럽게 ‘좋아요의 유무’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주체의식의 부재.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채워나가면 좋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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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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