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처음으로 마주한 음악의 민낯 -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

글 입력 2020.08.0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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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로 마주했던 음악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기에, 이야기가 담긴 음악을 좋아했다. 가요를 들어도 꼭 가사에 서사가 있는 걸 좋아했고, 디즈니 음악이나 뮤지컬 음악처럼 음악 자체가 이야기의 한 부분인 것들을 좋아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해당 서사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해주는 각종 OST들을 섭렵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좋아했던 클래식은 슈베르트의 마왕. 그 다음으론 각종 오페라 음악들이 좋았다. 가사가 없는 음악들은 취급하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철저하게 이야기만을 좇던 내가, 이야기와 별개로 음악 그 자체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건 아마 드뷔시의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였을 거다.

 

가사가 없지만, 음악만으로도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좋아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좋은 선생님, 가이드가 없어서일까. 가사 없는 음악을 향한 내 음악적 취향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나는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를 만났다.

 

 

 

음악으로 마주한 서사, 그리고 음악으로 마주한 음악


 

사실대로 말하자면 처음 책을 펴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음악에 대해서 더욱 알아가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지만, 음악 평론은 아직 내게 너무 멀고 어려운 영역처럼 느껴져 좀처럼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러길 한참. 겨우 펴본 책장에서, 글의 첫머리에 실려있던 QR코드는 나를 음악의 세계로 초대했다. 요제프 시게티의 흔들거리는 바이올린 소리. 처음엔 내가 아는 그 “달빛”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훨씬 더 부드럽고, 몽환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지만 어쩐지 들을수록 빠져들었다.

 

그의 달빛을 들으면서, 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글씨를 쓴 추사 김정희의 마음을 떠올리니 기분이 오묘해졌다. 아이의 눈으로 그림을 그리고자했던 호안 미로가 떠오르기도 하고, 어른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잘’ 해내는 이들이 결국 마지막에 선택하는 길이 ‘아이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연 이 글을 텍스트만 읽었다면 내게 이런 감흥까지 줄 수 있었을까. 그 순간 가사 하나 없는 음악이 내게 이야기가 되어 날아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듯 책을 읽었다. 일단 QR코드로 음악을 재생하고, 글의 첫문단을 읽었다. 그 순간이 매력적이면 이어 나갔고, 그렇지 않다면 다음으로 넘겼다. 각 때에 맞는 음악이 있는 것처럼. 지금의 내게 매력적인 음악 리스트를 만들고 싶었다.

 

황병기 가야금 명인의 <숲>을 들을 때는, 그 한곡이 다 끝날 때 까지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가야금으로 연주되는 음악일 뿐인데, 내겐 한 편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나를 청량한 숲 한 가운데로 데려다 주었다. 한이 담긴 목소리도 없는 국악이 내게 이렇게나 와닿을 줄이야.

 

이후 피아니스트 미켈란젤리가 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와 함께 연주한 라벨의 피하노 협주곡 G장조를 들었을 땐 머릿 속에 <위플래시>가 스쳐지나갔다. 각자가 한명의 인간으로서는 참 부족하고, 서로를 싫어하지만 음악에 미친 순간만큼은 서로에 대한 동질감을 버릴 수 없던 둘을 그린 영화 <위플래시>.

 

물론 저 둘이 서로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음악에 미친만큼 결코 ‘좋은 사람’은 될 수 없던 둘이 서로의 음악에 대한 존경으로 서로를 공경하며,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장면은 정말이지 한 편의 영화였다.

 

음악을 하나하나 틀 때마다 나는 가사 하나 없이도, 음악은 그 자체로 이야기며 극적인 감정을 선사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종종 프랭크 시나트라의 음악처럼 가사와 서사가 있는 음악들도 있어 환기를 시켜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 하나 없는 음악을 10-20분 동안 그에만 집중해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음악이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음악과 엮는 최정동 작가의 필력은, 처음에 음악 에세이라고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 무색하게도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를 읽는 내내 마치 친한 친구가 플레이 리스트를 공유하며 음악을 추천해 주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에 더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지는 음악에 대한 작가의 열정은 내 가슴 속에도 자그마한 불을 지폈다. 오디오와 달리, LP판은 그 한번 한번이 연주와 같기에 더욱 좋아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지도에서 LP바를 찾아두었고 엄선된 음악이 흘러다온다는 클림트 서점을 가기 위해, 회현의 지하쇼핑센터를 찾을 마음을 먹었다.

 

책을 읽는 그 짧은 순간만에 ‘음악엔 가사(서사)가 있어야한다’는 불문율 비슷하던 내 취향을 바꿔놓은 것처럼. 그의 족적을 따라가다 보면 내 삶이 음악으로 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다.

 

지금 내 유튜브에는 책을 읽으며 좋았던 음악들을 저장해 놓은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국적도, 장르도 다양한 음악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 내게는 ‘좋은 노래들’이라는 것이 참 흥미롭다. 내 삶의 변화가 필요할 때마다, 혹은 내가 조금 변했다고 느낄 때마다. 언제나 내게 맞는 음악을 추천해주는 친구처럼, 이 책을 꺼내들고 책장을 휘리릭 넘기며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아듣고, 그 순간 내게 맞는 리스트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렇게 한발짝씩 내 삶을 보다 음악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서사의 일환이 아닌, 음악 그 자체로 말이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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