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방구석 음악 여행 -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 [도서]

글 입력 2020.07.30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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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동아리에서 연극 연출을 할 때, 내가 찾을 수 있는 음악은 유튜브 라이브러리뿐이었다. 이유는 오직 저작권이었다. 정보의 양이 현저히 부족했던 나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 극과 어울리는 분위기의 음악과 효과음을 찾아달라고 음향 디자인 친구에게 부탁했다.

 

극에 있어서 음악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넘어서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한다. 장면 사이 암전 때 넣는 브릿지 음악은 극의 흐름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만큼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했어서 음향 디자인 친구가 고생을 많이 했다. 결국에 좋은 결과물이 나왔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때 클래식을 생각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7년 연극 <죽음과 소녀>는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대를 사용하는 방식도 독특했으나 연극의 분위기를 사로잡았던 클래식 음악이 귓가에서 계속 맴돌았다. 클래식을 생각하면, 오케스트라 합주의 그 웅장한 느낌이 상징처럼 떠올라 연극과 어울리는 지점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 극에서는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가 나올 때마다 극장을 휘감는 기운은 긴장감이 흐르고 인물과 상황에 대한 몰입감은 높아졌다. 그때 결심했다. 클래식에 파고들어야겠다고.

 

그런 나의 의지는 일상 속에서 묻혔고 클래식과의 인연은 기약이 없는 기다림이 되었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흘러 이 책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를 마주하게 되었다. 무의식 속에서 꿈틀거렸던 클래식에 대한 욕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책의 앞뒤 표지를 보면서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클래식의 정의가 좁은 의미였다는 걸 깨달았다.

 

문예사조를 배울 때 나오는 고전주의는 영어로 ‘classicism’을 뜻한다. 클래식은 음악 장르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로는 고전을 말하는데 간과하고 있었다. 재즈부터 국악, 대중가요까지도 클래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왜 잊고 있었을까.

 

책의 안내에 따라 QR코드로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방구석으로 음악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글쓴이의 지도에 따라 나는 오스트리아에, 서울에, 중국 등등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인문과 역사에도 견문이 넓은 글쓴이 덕분에 방구석 음악 여행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그중에서도 노래를 들으며 마음이 울렁이는 챕터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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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던 그 겨울밤 속으로’ -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아티스트는 많다. 유난히 한국 아티스트들에게 눈길이 갔는데, 글쓴이의 영웅인 송창식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를 나의 향수를 자극했다. 눈이 아름아름 내리는 겨울밤과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밤눈>을 들으며, 고등학교 방학을 맞아 절에 들어가 형들과 있었던 에피소드는 그 당시 겪었던 글쓴이의 감정이 온전히 전달되는 느낌을 받았다. 뭣도 모르면서 좋았다. 음악이 주는 좋은 영향이란 이런 것일까.

 

‘드뷔시에서 바흐로‘ - 최근에 국악에 관심 가질 일이 생겼다. 주로 판소리 명창에 대해서만 공부하다 이분을 만나게 됐다. QR코드가 안내한 영상을 홀린 듯 봤다. 자신이 만들어낸 독특한 방식으로 가야금을 연주하는 황병기 명인의 모습이 신기했다. 지치는 기색 없이 집중해서 이어가는 그의 연주가 자꾸만 눈길을 머무르게 했다. <침향무>와 <숲>도 좋았고 초등학생들이 보낸 메일에 일일이 답장해준 황병기 명인의 소중한 마음도 좋았다. 한평생 가야금과 연애했던 황병기 명인의 뜨거웠던 삶을 나는 한평생 기억하고 싶다.

 

‘무엇 하러 슬픔을 숨길까’ - 내가 지금 영상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실제 무대 앞에 서있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녀가 연주하는 자세, 표정,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넘쳐흐르는 음악의 깊이는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다는 걸 왜 그동안 존재를 몰랐을까 싶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잃은 바흐의 슬픔을 온 힘을 다해 정성껏 표현하는 듯했다. 한순간에 찾아온 불행, 상실감이 깃든 바흐의 이야기는 애잔했다. 슬퍼졌다. 애써 참을 필요 없다. 슬픔은 나쁜 게 아니다.

 

‘병상의 진정제’ - 음악을 공기처럼 호흡해야만 생존 가능한 ‘오디오적 인간’이기에 마티니의 음악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던 걸까. 불안한 그녀의 마음을 다독여줬던 마티니의 음악을 눈감고 찬찬히 들어봤다. 푹 죽어 있던 식물에게 달콤한 물을 주듯 활기를 불어주는 기분이었다. 경쾌하고 발랄하게 흘러가는 리듬이 마음에 안정을 줬다. 마티니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 기쁘다.

 

책을 덮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동안 난 클래식을, 음악을 너무 대충 듣고 있지는 않았을까. 음표 하나하나를 곱씹으면서 어떤 악기의 소리인지 맞혀보는 재미도 가지면서 온전하게 음악에 귀를 기울이던 시간을 나는 가진 적이 있었을까. 항상 나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던 클래식과 음악에 대해 다시금 돌아봤다.

 

그들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쳐줄 테다. 그들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그들을 향유할 수 있는 공연을 찾아가고 싶다. 이 책이 내게 그들에게 향하는 날개를 달아줬다. 작은 날갯짓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바라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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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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