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수밤바다 1. [여행]

글 입력 2020.08.1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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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란 자고로 집을 나가면 고생밖에 하는 게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집에서 얼마 이상 떨어지면 나는 급속도로 피곤해지고 심술이 나며 성질이 괴팍해지기 시작한다. 반 년째 전세계적으로 여행을 금지하고 있다보니 여기저기서 찬란했던 여행의 순간을 그리워한다. 지인들이 보여주는 여행 사진을 감흥없이 보다보면 나 역시 내가 갔던 여행이 떠오른다. 그래도 내 기억 속에서 제일 떠오르는 여행은 풍경이 아름다웠던 여행이나, 가장 사람을 많이 만났던 여행, 비행기를 타고 제일 멀리 가보았던 여행도 아니고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2018년 이맘 때 갔던 가장 덥고 고생스러웠던 국내 여행이다.

 

그 여행은 뙤약볕 아래 두 시간째 서 있던 기억으로 시작한다. 기록적인 폭염이 매일 갱신되는 동안 태양은 무섭게 내리쬐었고 발 밑의 아스팔트 도로가 부글부글 끓었다. 나와 내 친한 언니는 담양의 죽녹원에 가려고 311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가 이미 녹은 것 같고 도로 반대편에서 웬 할아버지가 손을 흔드는 신기루가 보이는 것도 같다. 에어컨 빵빵한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빤히 보면서 지나갔다. 삼십 분에 하나 있다는 버스는 두 시간째 보이지 않았고, 그늘 하나 없는 도로변에 주저 앉아 내가 한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

 

이 생각은 여행 내내 내 머리 속에 떠다녔다. 나는 손풍기를 덜덜거리면서 언니한테 이 폭염 속에 자동차도 없이 한국을 여행한다는 게 얼마나 고생인지 툴툴거렸다. 그러다가도 밤이 돼서 열기가 좀 식으면 맥주 한 캔 까고 앉아 지도를 펼치고 내일은 어디로 갈까 고민했다. 애초에 계획하고 시작한 여행이 아니었다.

 

7월 마지막 날, 오랜만에 만난 언니가 호주로 멀리 떠난다는 얘기를 듣고 술을 진탕 마시며 아쉬워하다가, 언니가 국내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떠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나는 언니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언니, 그럼 갑시다”

 

“좋아. 언제?”

 

“당장. 내일 당장.”

 

위스키 하이볼에 절여진 내 패기와 언니의 행동력이 만나서 다음날 아침 일곱 시에 우리는 목포행 KTX 기차 안에 있었다. 나는 숙취로 머리가 아팠고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배낭에 뭘 챙겨왔는지도 생각이 안 났다. 뒤늦게 가방을 열어보니 옷가지와 세면도구, 케루악의 책 ‘길 위에서’ 1,2권, 다이어리, 핸드폰 충전기와 지갑이 들어있었다. 기차 창 밖에선 햇빛에 부서지는 푸른 논밭과, 매끈하게 번쩍이는 높고 낮은 건물의 유리창이 스쳐지나갔다. 이게 무슨 일이람. 집에 에어컨을 끄고 나오기나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일단 대전으로 가자.” 언니는 전날 술을 그렇게 먹고도 물 먹은 화초마냥 얼굴에 광채가 돌았다.


“갑자기 대전은 왜요?”


“거기 육회 비빔밥 맛집이 있거든.”

 

우리의 여행 루트는 이렇게 정해졌다. 낮에는 언니가 가고 싶은 맛집을 좌르륵 고른다. 나는 그 뒤를 기운 빠진 쭉정이처럼 따라다닌다. 내가 원하는 건 에어컨, 맥주, 그늘이다. 그 중 하나만 채워지면 군말 없이 언니의 당나귀가 되어 사진을 찍어주고 장단을 맞췄다. 해가 지면 이번에는 기운을 차린 내가 언니 옆구리를 찌르면서 자꾸 더 멀리 가자고 졸랐다. ‘여기까지 왔는데 담양 죽녹원도 가자. 순천도 가고, 부산도 가고, 강원도도 가자.’ 다음날 갈 곳은 그 전날 밤에야 정해졌다.

 

우리의 행선지는 대중 없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정신 없는 선을 그렸다. 우리는 대전에서 목포로, 목포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담양, 담양에서 나주, 나주에서 여수로 갔다. 여행이 좀 더 길어졌다면 부산으로 갔을 것이다. 그대로 서울을 통과해서 강원도 끝자락까지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수에서 멈췄다. 여행을 시작한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 사이 대전에서 화투패가 화려하게 그려진 반팔 셔츠를 커플로 샀고, 목포에서 춤추는 분수쇼를 보면서 맥주를 깠다. 담양에서 열사병에 녹아내리기 직전에야 버스에 기어올라 폭염에 도보 여행을 하다 쓰러진 멍청한 두 여행객으로 뉴스에 나오는 상황을 간신히 비껴갔다. 차가 없는 상태에서 어딘가로 간다는 건 버스 정류장에 마냥 서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고, 동시에 거기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저 기다리다 오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다시 실려가는 일에.

 

우리는 부산에 가기 전 한번 구경이나 하고 가려고 여수에 갔다. 부산행 기차표까지 예매해 두었다. 하지만 여수에 도착한 날 밤 나는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고, 그 신발이 밤바다에 둥둥 떠가는 걸 보면서 문득 이제 진짜로 집에 갈 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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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역에 내리자 바닷가의 소금 냄새가 주위에 감돌았다. 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게딱지처럼 틈틈이 언덕을 차지한 낮은 집들의 지붕 언저리에 있었다. 우리 숙소는 그 중에서도 끝없는 오르막길을 올라 나오는 4층짜리 빌라의 4층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앉은뱅이 반상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주인 내외가 우리를 맞았다. ‘아이고 기대해~ 여기 젊은 총각들이 얼마나 많은데~늦게 들어와도 전혀 상관 없어요’ 주인 아주머니는 짐을 풀고 나가는 우리를 배웅하며 말했다.

 

우리가 기대해봄직한 젊은 총각들이 누구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으나, 확실히 그해 여름 여수에는 나방의 짝짓기철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젊은 남자들은 남자대로, 여자들은 여자대로 삼삼오오 모여다녔고, 두 부류가 함께 왁자지껄 걸어가기도 했다.

 

우리는 여수의 명물이라는 불꽃놀이를 예매하고, 온갖 종류의 수입 병맥주를 사서 공연장에 들어갔으나 병맥주를 한아름 계산하고 나서야 우리 둘 중 아무도 병따개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편의점에 다 들어가 병따개를 찾았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편의점 알바생은 태연했다. ‘지나가는 남자들한테 따 달라고 하세요. 여기서는 다 그렇게 해요.’ 편의점 두 곳에서 이 대답을 듣고나니 나는 슬슬 성질이 나기 시작했다. 담뱃불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 술을 먹는데 왜 생판 남의 도움이 필요한가. 병따개를 둘러싼 일대 편의점의 유치한 담합이라도 있는 건가. 여기서는 다 그렇게 한다니. 원래 다른 사람 따주는 병맥주는 그 맛이 반절로 주는 법이다.

 

핸드폰 모서리로 뚜껑을 따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하는 와중에 언니가 어디선가 빨간 플라스틱 병따개를 구해왔다. 감성 치킨과 갈릭 새우 가게 사이에 있는 작은 슈퍼에서 팔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나는 라즈베리 맛 크루저를 따서 언니에게 건네줬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맥주는 시원했다. 어떻게든 뚜껑을 따겠다고 난리를 치다 베인 손가락에서 피가 나 물이 뚝뚝 떨어지는 병에다 대고 눌렀다. 저녁 일곱 시였는데도, 그 맥주병 속에 풍덩 빠지고 싶을 정도로 더웠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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