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콜 수'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고 있다. [사람]

쉴 새 없이 전화와 감정을 받아내야 하는 공간과 사람들
글 입력 2020.07.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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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학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자 김관욱의 「바이러스는 넘고 인권은 못 넘는 경계, 콜센터」는 코로나바이러스 속에서 악전고투하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유독 많은 생각이 들게 한 보고報告이다.

 

이 글은 집단 감염병을 맞닥뜨리면서 발생한 상황을 조명했다기보다는 콜센터와 그곳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르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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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 콜센터에서의 집단 감염이 야기한 사람들의 이목은 새삼스러운 것이었다. 공공연하게 콜센터 직원(상담사)의 감정 노동이나 근무 실태에 대해 가늠만 하던 사람들에게 콜센터 집단 감염은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그들이 처한 환경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이런 아이러니를 김관욱은 ‘생물학적 시민권’이라고 일컫는다. 생물학적 시민권은 인류학자 페트리나가 “의학적 권위에 의해 인정받은 병든 몸만이 시민권의 근거가 된다는 점”을 언급하며 소개한 개념이다.

 

콜센터 직원들의 집단 감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양가적이었다. 집단 감염에 대한 염려와 동시에 감염 위험도가 높은 공간에서 업무를 지속했다는 점과 투잡 등의 이유로 넓은 범위의 동선은 비난의 요인이 됐다. 책임의 주체가 제대로 명시되지 않은 ‘콜센터 사업장 예방지침’은 ‘콜 수’의 압박과 상사의 감시에서 상담사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흔히 닭장으로 불리는 콜센터의 업무 환경은 극단적인 능률의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인다. 상담사들이 졸지 못하게 에어컨을 강하게 틀고, “달력과 시계를 일부러 배치하지 않”으며 ‘자동전화 분배기’가 통화가 끝난 후 바로 다음 통화로 이어지게 만든다.

 

한 상담사의 진술에 따르면 자리 비우는 것을 통제하는 집중시간이 배정되어 있고 이 시간에 화장실을 가려면 팀장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하루 휴식시간이 합하여 20분 정도라니 기본적인 휴식조차 불가능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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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콜센터 직원들의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는 두말할 것 없다. 상담사들의 흡연율이 가시적으로 이를 대변한다. 김관욱이 인용한 김의경의 소설 『콜센터』에서는 “힘든 감정노동의 일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사물로 담배가 등장한다. 회사 건물 옥상에서 여성상담사들이 담배를 피우는데, ‘현아 실장’이라는 인물이 뛰어 올라와 “빨리빨리 내려가. 민원 들어왔어. 담배 피우는 것들 다 고소한”다고 소리친다.

 

“여성의 흡연은 ‘민원’의 대상이다.” 실제로 김관욱은 위 소설에 나온 것과 유사한 상황, 여성상담사의 ‘공공연하고 지나친’ 흡연에 관한 민원의 방편 중 하나로 콜센터에 금연상담 의사로 파견된 경험이 있다. 여기(이런 종류의 민원)에는 여성상담사의 흡연을 올바르지 못하는 행동을 야기하는 위험요소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남성들 사이에서 담배를 권하고 함께 태우는 행위는 흔한 일이지만 말이다.

 

영국의 정치평론가 오언 존스는 산업 근대화(제조업 성행) 이후의 콜센터 산업이 현대 산업 사회를 묘사하는데 대표적이라고 말한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콜센터 산업이 과거 공장의 대치라면, 여성상담사는 여공을 대신하는 노동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공순이’에서 ‘비정규직’으로 이름만 변했을 뿐, 쉽게 뽑고(학력 및 자격조건 낮음), 쓰고 버려지는(비정규직 하청 직원) 존재이니 말이다. 그 둘의 공통점은 자연스러운 노동력의 한계를 넘어서서 일을 해야만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폐결핵과 과로를 안고 ‘잠 깨는 약’을 먹어가며 일한 과거 여공들이 오늘날 창문을 가려놓은 닭장 같은 공간에서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콜 수를 채우다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된 여성상담사들로 대체됐다.

 

자동 콜 배분은 상담사들의 작업을 쉴 틈 없이 반복시키고 ‘실적에 따른 월급 상승’의 목표를 바라보게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상담사들끼리의 경쟁의식과 압박감을 부추긴다. 반복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개개인의 무능함과 심리적 무력감은 시간이 흘러도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 상담사는 2017년 3월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이 콜센터 현장실습 기간 중 자살한 사건을 보고 6년 전 신입 시절에 느꼈던 자기모멸감이 여전히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관련 사건 기사의 헤드라인이었던 “콜 수 못 채웠어”는 모욕과 무력감에 대한 악몽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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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욱의 말처럼 코로나바이러스가 콜센터의 경계선을 쉽게 넘어 들어오는 동안 인권은 제대로 그 경계를 넘어온 적이 없었다. 시급한 문제들이 많지만, 권리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미뤄 질만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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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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