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배우의 자리 - 연극, 월화 [연극]

운명에 대한 대결의 의지
글 입력 2020.07.2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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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리뷰(연극, 그 여자의 소설)에 이어 제11회 국공립극단 페스티벌의 또 다른 연극, ‘월화’를 보고 왔다. 강원도립극단에서 연출한 ‘월화’. 두 번째 대형 극이다.

 

국공립극단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나로서는 손쉽게 극단 급의 대형 극을 볼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아마 내가 이들과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은 내년 이맘때쯤이겠거니. 내가 그들을 찾아 강원도까지 가리라고 생각지는 못하겠기에.

 

일상에서 주로 접하는 연극이란 소극장 연극이 대부분이었기에 대극장에서 상영되는 연극은 무대에서부터 들뜨는 감각을 선사한다. 무대는 커다랗고, 무언가 소품들과 무대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극이 시작되자마자 가지게 되는 첫 번째 인상이란 무대구성이 아름답다는 생각이었다. 커다란 창호지 문이 두 겹으로 되어 있었고, 이것으로 막은 구성된다. 앞줄의 창호지 문이 열리고 닫힘에 따라 무대의 공간감과 배경은 변모했다. 뒷줄의 창호지 문은 줄곧 열리지 않는 채로 배경이 되어주고 있었는데, 그 문 뒷 편의 공간은 가수를 위한 공간으로 아주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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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보이는 창호지 문이 뒷줄 창호 문이다. 가수의 공간.


 

이 창호지는 영상을 투사하기 위한 스크린인 동시에 등장인물을 반투명이 가려주는 베일로서도 기능한다.

 

그 가장 뒤, 가수를 위한 공간에는 달 하나가 떠 있어, 막에다가 시종 밤의 시간을 투영하고 있었다. 달을 등에 이고, 가야금을 안은 가수의 실루엣이 창호지의 여른 막에 비치온다. 이것이 창호지의 매력이 아닐까. 창호지에 스민 실루엣은 언제나 설레는 이미지로 다가오다.

 



연극 '월화'에서 음악을 담당하신,

음악감독 이정표님의 가창이다.

 

 

노래로 극은 시작한다. 앞줄, 양옆으로 열린 창호지 위에는 벚꽃의 영상이 투사되고 있었다.

 

노랫말도 잘 아니 들리었지만, 그 음색에는 일전 내 할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옛 향수와 같은 감각이 가감 없이 물씬 담겨온다. 잘 모르는 그때 그 시절의 감각을 따라 노래를 타고, 그 안 음색에 이끌리어 나는 극으로 흡수되어 간다. 내가 언제나 극에서 찾고 바라는 것, 본 적 없는 옛날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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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여배우를 배우로 봐주지 않는다면,

네가 바꾸면 되는 것 아니야!”


 

연극 ‘월화’는 개화기 조선, 아직 총독부가 이 땅에 있던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는 일명 ‘신극’이라는 신식 극이 아직 우리 땅에 들어오지 않은 때였고, 여배우가 당당한 한 명의 배우로 인정받지 못하던 때이다.

 

‘월화’라는 주인공은 이 땅에 신극을 퍼뜨린 배우, 동시에 ‘최초의 여배우’이고자 한 인물이다. 비록 그때의 기록 중 많은 것들은 소실되어 사실 여부를 낱낱이 파악하기란 어렵지만, 그녀에 대한 찬사의 몇 기록은 빛바랜 신문에 담긴 채로 이어오고 있었다.

 

영화와 연극에서 여자 역할도 남성이 맡던 당대에 ‘월하의 맹서’에 여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화려하게 알린 배우 이월화는 실제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전한다. 자료조사를 마치고 나니 그녀를 이 땅 위 최초의 여배우로 불러도 손색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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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극은 남성 일변도인 연극과 영화의 영역에서 최초의 당당한 여배우이고자 한, ‘월화’라는 실존 인물에 대한 팩션극이다.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데뷔한 뒤, 훌륭한 여배우가 되기 위해 그녀는 투쟁했다. 그것은 참 투쟁과도 같았다. 배우가 배우이기 위해선, 연기력을 갈고닦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았음에. 그녀의 눈빛에선 운명에 대한 대결 의지가 엿보였다. 그러나 운명은 아직, 너무 가혹하였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이라는 수식어가 떠오른다, 그녀의 최후 위로는.

 

한 편의 연극과 영화를 위해, 필요로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의 중심에는 배우가 있지만, 그것에는 배우만 있지 않았다. 극본이랄 게 필요하고 연출이 필요하며, 즉 자본이 필요했다. 한 명의 배우는 스스로 할 수 있는바 최선을 다하여 연기력을 연마했다. 배우에게 있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본분인 연기뿐인 것. 그러나 그 외의 것들이 그녀를 자꾸 짓누른다.

 


“기도했어!

내 운명에 한 줄기 빛을 내려달라고.

아니, 더 더러워지지 않게만 해달라고!”

 

 

톨스토이의 ‘부활’을 연기한 그녀의 대사,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마음이기도 했다. 여배우이고만 싶었던 그녀는 이 땅 위에 여배우로서 설 자리를 거듭 찾았지만, 세간은 그녀를 여배우에서 끌어내리려는 듯, 마수를 뻗쳐온다. 화려한 데뷔와 흥행 행진, 그리고 그녀를 좌절시키기 위한 음모들이 잇따랐다. 그 운명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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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결국 음모에 희생되고, 운명에 패배하였다.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던 그녀였기에, 그녀의 추락은 삽시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최악으로 떨어진 뒤에도, 다시금 한 명의 배우가 되고자 한다.

 

다시금 연기하기 위해 그녀는 “거듭 스스로를 죽였다.”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을 용서하기 위해, 그로써 다시금 한 명의 배우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그때의 그녀는 어느새 ‘부활’ 속 카츄사가 되어 있었다.

 



 

 

부조리로 가득 차 있던 시대이다.

 

그것은 채 뒤집을 수 없을 것만 같아 운명처럼 느껴진다. 개화기 음악의 어딘가 텅 빈 듯한, 공허한 체념의 소리가 이 거대한 패배 위에 입힌다. 그녀는 무엇을 위해 여배우이고자 했을까. 당시 도저한 것으로 여겨지던 그것, 불가한 운명을 도전했을까. 그 꿈은 그녀를 한 명의 아낙네로 머묾을 금하였다.

 

그 숱한 체념한 이들 중 하나로 남아있지 않도록 하였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등장은 뭇 아낙들의 지지를 한 몸에 샀고, 잃어버린 여인들의 자아를 그녀는 밝히며, 한 명의 별이 되었다. 비록 별은 질시의 바람 아래 삽시간 져버렸지만 말이다.

 

별은 지고, 그녀는 그녀가 연기한 한 명의 카츄사가 되었다. 참으로 장난 같은 운명, 그런 운명이 가득했던 장난 같은 시대이다. 그녀의 비극과 그 비극으로 만연했던 시대가 안고 있는 비장미가 극을 가득 메운 채 시간을 넘어 20년 지금에 닿는다. 정말로 대단한 연극이었다. 이 이상의 찬사를 떠올리지 못한 나는 오늘도 한동안 극장을 떠나지 못했다.


 

사진 출처 : 강원도립극단 홈페이지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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