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양성을 쿨하게 대하는 방법 - 초미의 관심사 [영화]

특별한 모녀의 특별한 하루
글 입력 2020.07.24 17: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조민수와 치타가 돈 떼어먹은 동생을 잡으러 가는 영화다.’
 
영화 <초미의 관심사>가 개봉하기 전 sns에서 본 이 영화의 한 줄 소개였다. 이 문구와 예고 영상 속에서 화려한 옷차림으로 골목을 누비는 ‘환불원정대’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초미의 관심사>는 ‘사이다’ 서사가 있는 코미디 영화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눅눅한 여름밤에 보기 좋은 영화를 고민하던 중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고, 30년차 배우 조민수와 김은영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막 스크린에 데뷔한 치타가 같은 작품에서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한 방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불을 끄고 영화를 틀었다.
 
 

[크기변환]초미의관심사_2.jpg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와는 다르게 이 영화에는 뻥 뚫리는 ‘한 방’은 없었다.
 
화려한 비주얼의 모녀가 누군가를 응징하는 서사일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보다는 소소한 웃음 포인트와 개성 있는 캐릭터, 다양성의 표상인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내세운 따뜻한 영화였다.
 
‘블루’라는 예명으로 이태원에서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순덕(김은영)에게 어느 날 엄마 초미(조민수)가 찾아온다. 중학생 때 집을 나와 동생 유리(최지수)를 뒷바라지하며 살던 순덕에게 엄마는 반가운 손님이 아니며, 초반부터 둘 사이에는 제법 살벌한 분위기가 흐른다. 순덕은 가겟세 300만원을 들고 사라진 유리를 찾는 걸 도와달라는 엄마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이내 유리가 자신의 비상금도 가져갔다는 걸 눈치채면서 순덕과 엄마의 협력이 시작된다.

조민수가 연기하는 초미는 생각보다 말이 앞서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며 말끝마다 욕이 따라붙는 다혈질이지만 길을 잃은 외국인에게 길을 알려주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싱글맘을 꼭 안아주는 따뜻하고 정 많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초미를 시종일관 시니컬한 반응으로 대하는 순덕은 엄마를 원망하지만, 한껏 들뜬 채로 이태원에서의 추억을 회상하는 초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는다.
 
이 영화가 티격태격하던 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는 건 영화의 초반부만 봐도 눈치챌 수 있다. 엄마는 한때 가수를 꿈꿨고, 순덕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주목받고 있는 가수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화해는 음악을 매개로 이뤄질 것이라는 추측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영화의 주된 서사는 다소 뻔하지만, 이 영화에서 방점이 찍혀 있는 부분은 ‘사이가 나빴던 모녀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서사보다는 그 과정에서 이들이 마주친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이 나름의 방식대로 뜨겁게 살아가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이다.
 
 

[크기변환]movie_imageDD8NDV00.jpg


 
겉모습은 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배달원 정복(테리스 브라운), 성소수자인 타투샵 사장(김지훈), 싱글맘인 타투샵 아르바이트생(안리나), 드랙퀸으로 활동하는 마이클(이수광), 유리의 여자친구인 선우(오우리)까지 <초미의 관심사>는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 캐릭터를 연이어 보여준다.
 
그런데 영화가 이들을 대하는 방식은 조금 특별하다. 이 영화에서는 이들의 정체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장황한 설명과 요란한 이해의 과정은 없고, 자연스러운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며 서사가 전개된다.
 
영화는 다문화가정, 성소수자, 드랙퀸, 싱글맘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재치 있는 디테일로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외국인 앞에서 우물쭈물하며 바디랭귀지를 사용하는 정복, 수상한 큰 가방을 들고 클럽으로 향하는 마이클 – 아마도 가방에는 가발과 의상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가 소수자를 대하는 방식은 순덕과 초미, 편견 없고 정 많은 모녀가 이태원의 이웃들을 대하는 방식만큼이나 쿨하다.
 
 

131.jpg

 
 
 

도혜원.jpg


 

[도혜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