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른 세상을 여는 단 한번의 입맞춤 - 영화 '마티아스와 막심'

글 입력 2020.07.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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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러더라. 돌란이 '돌란' 했다고.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해오던 두 친구가 욕망, 사랑, 정 등 이전에는 고민하지 않았던 수많은 관계의 이름을 마주하며 헤메이는 이야기.

 

영화 <마티아스와 막심>은 자비에 돌란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에 섬세한 감정선이 얽혀 시야를 매혹한다. 돌란이 자전적 이야기라고 밝힌 데다 본인이 주인공 중 막심을 연기하는 만큼 영화는 돌란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머리가 굵어진 어른이 되어버린 후에야 찾아온 두 주인공의 불같은 감정은, 무엇보다 견고하다 여겼던 우정을 순식간에 휘청이는 모래 위의 성으로 바꾼다. 그렇게 영화는 미묘한 관계성을 빠르지 않은 템포로 짚어가며 마티아스와 막심의 흔들리는 눈빛 속으로 관람객을 훌쩍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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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만 위태로운 관계, 마티아스와 막심



마티아스와 막심은 동네 친구들과 함께 오래도록 알아 온 사이다. 다른 친구들보다 각별한 점이 있다면 운동도 식사도 같이할 정도로 일상을 가까이 나누는 사이라는 것. 하지만 갑작스런 관계의 전환이 일어난다. 영상을 만드는 친구 동생의 부탁에 따라 키스신을 촬영하게 되고, 그 이후 가족처럼 지내던 관계가 어쩐지 낯설다. 마티아스는 예민해진다. 막심을 편하게 마주하기가 껄끄럽다. 한편 막심은 2주 후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야 하는 상황임에도 자신을 피하는 마티아스가 신경 쓰인다.

 

막심의 송별 파티를 하는 날. 마티아스는 정체 모를 감정에 막심을 피하면서도 다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그를 보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알 수 없는 질투심과 욕망에 혼란스러워한다. 기어코 어린애처럼 화를 폭발시키며 막심의 외모적 컴플렉스를 자극해 상처 내지만, 상처받고 어디론가 숨어버린 막심을 찾아낼 수 있는 것 또한 마티아스뿐이었다.

 

마티아스는 막심이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으면 구석진 방으로 숨어드는 습관을 알고 있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눈이 마주치자 입술을 가까이한다. 키스가 끝난 후 막심은 마티아스에게 말한다. 주말에 같이 있자고, 널 이해하고 싶다고. 하지만 마티아스는 다시 한번 도망친다. 그렇게 막막한 시간이 흘러 어느덧 막심의 출국일 아침. 친구를 잃을까 눈물 흘리는 막심 앞에 마티아스가 웃는 얼굴로 나타난다.

 

이렇게 이야기를 곱씹다 보니 고구마가 따로 없다. 하지만 갑자기 연인도, 친구도 아닌 기묘한 관계가 된 두 사람의 상황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루기에 그들을 천천히 지켜보듯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캐릭터성도 흥미롭다. 서로 보완의 관계다.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길가에 담배를 버리지 않기 위해 주머니에 넣는 착한 마음을 가졌으며, 타인을 배려하고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막심과 똑부러지고 냉정하며 논리적인 모습이 부각되는 마티아스. 완전히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이기에 돌발적인 키스와 그 이후 그들의 관계에 대처하는 방식도 참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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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에 돌란이 사랑을 말하는 법


 

영화는 서로에 대한 생각 혹은 사랑의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이 감정이 사랑인지 순간의 욕망인지도 모호하다. 서사를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 오직 새로운 감정이 솟구치는, 입맞춤으로 인해 관계가 전복되고 마음에 새로운 풍경이 그려지는 그 순간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아주 짧은 한순간이 관계를 뒤바꿔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면 짜릿할 정도다. 아주 오래되고 익숙한 관계를 완전히 역전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상대를 느끼게 되는 법. 그 한순간이, 한순간의 입맞춤이 얼마나 강력한지. 하지만영화는 동화와 현실의 경계를 분명히 한다. 죽은자를 살리고 얼어버린 이를 녹이는 동화 속 마법의 키스와는 다르다.

 

다양한 관계가 얽힌 현재를 살아가는 마티아스와 막심에게 입맞춤이란 분명 짜릿하고 새로운 감각이지만 그 이후에 펼쳐지는 세계는 생각만큼 평탄하지 않았다. 기존 관계가 허물어짐에 대한 불안과 이름을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향한 혼란이 뒤엉켜 괴롭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서로를 웃는 낯으로 바라보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그럼에도 낭만적인 동화 속의 입맞춤처럼 달콤함은 있었다.

 

이 같은 그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관계성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자비에 돌란 특유의 연출이 빛을 발한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에야 알았다. 눈이 너무 건조했다. 눈을 아주 부릅뜨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영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깜빡이는 것을 잊었다. 자비에 돌란은 그 무엇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떨리는 손끝과 눈빛이 대사가 된다. 찬 이슬이 내려앉은 새벽에 차가운 강물 속에서 미친 듯이 헤엄치는 장면을 롱테이크로 나타내거나, 사람들이 가득한 도보를 질주하는 장면으로 혼란한 감정을 대신한다.

 

그리고 이전보다 클로즈업 컷을 많이 활용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빈방 안을 채운 늦은 낮의 햇빛을 받아 눈물이 반짝이며 구르는 얼굴처럼 특유의 클로즈업 기법 역시 감성을 자극했다. 수많은 이들 사이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고 때로 빗겨나가는 모습, 그리고 위태롭고 불안한 얼굴의 모양까지. 순간을 너무나 잘 포착하는 감독이다. 감정과 무드의 한순간을 깊게 관조하며 장면을 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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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혹은 욕망 사이에서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애절한 사랑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영화관에서 누군가가 계속 훌쩍이며 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이 둘의 관계는 모호하다. 정의할 수 없다. 영화 역시 이것이 사랑인지 욕망인지 우정인지 그 무엇도 분명히 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자극으로 호기심이 발동한 것인지, 혹은 불처럼 달려들게 만드는 성욕이 동력원인지. 혼란스러운 마티아스가 클라이언트인 변호사를 만난 장면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간은 다 동물이며, 그렇기에 누군가를 한평생 소유할 수 없다고. 결혼이 다 실패하는 게 그런 이유에서라고. 그렇게 말한 변호사는 자신의 약혼반지를 빼고 스트립쇼를 즐긴다. 마티아스는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친구였지만, 갑작스러운 키스로 시작된 무언가의 감정. 무엇이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장르의 특성과 감성적인 분위기에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굉장히 달랐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운명론을 바탕으로 아름답기 위해 노력하는 영화처럼 보였다. 불타올랐다 사그라지는 여름의 볕 같았다. 왜냐면 <마티아스와 막심>은 아름다웠지만 아름답지 않아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위태로운 이야기였다. 자신의 연인을 두고 막심을 찾는 마티아스를 볼 때면 때로 불쾌하고 민망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처럼 무슨 감정인지 정의할 수 없어 이 영화는 완벽했다. 잠적했던 마티아스가 출국하러 떠나가기 직전의 막심 앞에 나타나고 영화가 끝난다. 관객은 볼 수 없는 크레딧 이후의 그들이 자신들의 관계를 정의해나갈 것이다. 모호하고 혼란스럽지만 그래서 완전히 현실이었다. 그렇게 서로 속앓이했으면서도 마지막에 웃는 얼굴로 마주하고 있는 걸 보면, 사실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앞으로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정인지 사랑인지 잠시 끓어올랐던 욕구인 건지, 영화로는 결론을 알 수 없지만 그 어떤 것이든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티아스와 막심이 입 맞추기 전. 영상을 촬영하는 친구의 동생은 기획 의도를 이렇게 말했다. 남자든 여자든 아무런 상관없고, 사랑이니 무엇이니 하는 감정을 앞세우지도 않으며, 그저 한 자리에 머물다가 이유 없이 갑작스러운 이끌림에 키스하는 장면을 찍고 싶다고. 그렇게 입맞춤이 시작됐고, 그들의 관계 역시 그 입맞춤 자체였다. 수많은 창작물 속에서 제작자든 관객이든 인물의 관계 짓기에 열중하기 마련이다.

 

아마 한 가지 단어로 규정지을 수 없는 불확실한 삶에서 고통받기 싫은 마음을 영화에 투영하기 때문이 아닐지.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아마 이 영화의 제목이 <마티아스와 막심>, 이 두 사람의 이름인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둘의 관계는 그저 마티아스와 막심이었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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