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공감할 수 없는 우정과 사랑의 충돌 - 영화 '마티아스와 막심'

글 입력 2020.07.2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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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에 돌란.


끼리끼리 모인 취향의 친구들의 입에 올라오는 이름 중에는 썩 유쾌하지 않은 이름에 속한다. 사실 본 영화를 감상하기 전, 영화 매니아인 친구들에게 그의 이름을 물었을 때, 친구들은 대체로 ‘힙스터 감독’이라 대답했다. 개봉 전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그렇게 불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영화에서는 반복되는 코드가 있다. 어머니에 대한 애증, 소수자 주인공, 청춘, 주인공에서 느껴지는 감독의 나르시시즘. 하지만 나는 나르시시트를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는 축에 속한다. 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난해한 스타일을 가진 나르시시트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작가보다 사랑스러웠다. 약간의 기대를 하고 ‘칸의 총아’를 만나기 위해 영화관을 방문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앞서 기술했던 스토리의 코드에서 크게 달리 느껴진 부분은 없었다. 이 영화에도 어머니에 대한 애증이 존재하고,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청춘의 퀴어가 존재한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나르시시즘은 감독 자신의 얼굴이 클로즈업이 되는 부분에서 빛을 발했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괜찮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잘생긴 배우들이 멋진 연기를 한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막심이 보여준 연기는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숱하게 언급되는 비주얼도 매력적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몇몇 장면은 레퍼런스로써 가지고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스토리에 있어서 어떤 감동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좀 더 개인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중학교 때 읽은 bl만화의 서사에서 그리 멀리 가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요약하자면 ‘나랑 정반대인 소꿉친구가 우연한 계기로 애인으로 보여요’ 다. 청춘의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사실 27살 관객인 나이인 나로써는 좀 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건 감독의 나이에도 적용된다.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에 이루어지는 서툰 관계와 행위들은 충분한 이야기가 덧붙여졌을 때 사랑스럽다. 그러지 않은 이야기는 그냥 어린애들의 유치한 치기로 보인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대충 예상했겠지만, 내가 처음 만난 감독인 자비에 돌란에게 느낀 마음이 이렇다(감독의 영화지만, 전 필모그래피를 확인하고 감상한 나는 도저히 이 감독과 영화를 떼어놓을 수가 없다).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모성의 해체, 이제 슬슬 진부해져버린 코드긴 하지만 괜찮다. 그런데 한 명의 예술가로서 묻건대, 언제까지 이런 이야기를 반복해야 당신의 성이 찰까? 감독은 이제 어린 천재에서 젊은 감독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치기 어린 청춘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유가 나는 정말 궁금하다. 나아가, 이런 감독에게 붙여지는 ‘칸이 사랑하는 천재감독’이 진실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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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얼굴에 넓은 면적의 점이 있는 주인공 막심은 폭력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는 번듯한 직장을 얻지 못했고, 형은 생활력 없는 구제불능 어머니를 버려두고 연락두절이다. 막심만이 어머니를 돌보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막심의 상처를 후벼 팔 뿐이다. 막심은 어머니를 부양하는 것에 한계에 부닥쳤는지 어머니를 친척에게 맡기고 다른 나라로 떠날 준비를 한다. 출국 날짜가 정해진 막심은 오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작별파티를 계획하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는 중 마티아스와 막심은 대학생의 영화과제에 함께 출현하게 된다. 둘은 영화에서 키스하게 되고, 자신들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마티아스는 상냥한 어머니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인정받는 직장에서 일한다. 그에게는 아름답고 상냥한 여자친구가 있지만, 키스 사건 이후로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마티아스는 막심과 관련된 감정과 관계를 서툴게 아예 잊어버리거나 그와 관련된 것들을 멀리함으로써 대처하려 하지만, 막심에게서 참을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술을 마신 파티에서 마티아스는 막심의 상처에 키스하지만, 막심의 다소 노골적인 유혹을 거부하고 자리를 떠난다. 모든걸 포기하고 나라를 떠나려는 막심 앞에 마티아스가 나타나면서 영화가 끝난다.


영화 내용의 많은 부분을 생략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서사는 이렇다. 앞서 말했듯 영화의 화면이나 배우의 표현은 좋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서사에서 무언가 감동이나 메시지를 읽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이 영화만 봐서는 그의 작품이 칸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소수자 요소나 모성의 해체는 이미 <브로큰백 마운틴>이나 <마더>에서 처절하게 보여주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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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가 실망스러운 것은 단순히 ‘뻔한 서사’를 가지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각 등장인물의 서사를 자세히 조명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이 영화는 절반이 마티아스, 절반이 막심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처음 마티아스를 조명할 때는 막심에게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대해서 기술하고, 막심을 조명할 때는 막심의 삶에 대해서 조명한다. 갑작스럽게 두 등장인물이 맞물린 키스신에서는 사실 당황스러웠다. 막심이 마티아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충분히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사랑이 우연적인 요소에 기댄 것이라 하더라도, 고등학생 때 키스를 했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도 말이다. 우정과 사랑에서 흔들리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그 이야기를 이끌어갈 살을 더하는 서사가 있는게 좋지 않았을까? 내 말은, 지금 영화에 표현된 것만으로 따지자면 마티아스는 소꿉친구가 떠나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느낀 정욕에 이끌렸다고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감독이 그런 것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마티아스는 막심의 상처에 키스를 하고, 둘의 관계는 좀 더 깊은 이야기들이 숨어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인물관계만 두고보면, 재미있는 설정이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마티아스와 막심은 서로 다른 경제적 배경, 겉보기를 가진 존재지만 형제처럼 자랐다. 마티아스는 막심과 그의 친구들을 ‘무식한 사람’들로 내심 규정하고 멀리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어린 아이처럼 팝콘을 씹어먹는 막심에게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마티아스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뭔가 어색한 면이 있지만, 막심은 친구들과 편하고 재미있게 즐긴다. 마티아스는 동거하는 애인이 있지만, 막심은 사랑이기엔 조력자에 가까운 관계만 있다. 마티아스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마티아스의 어머니는 막심의 어머니처럼 굴기도 하지만, 정작 막심의 어머니는 막심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마티아스가 막심을 사랑하는 것의 의미와 감정의 스펙트럼은 더욱 다양해질 수 있고, 점박이에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자신의 삶과 대조되는 막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택한 전개방법은 ‘우연에 의한 영화출연’과 ’외부 인사를 접대하면서 돌아보는 주인공의 마음’이었다. 우연에 기댄 전개방식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오락으로 소비되는 로맨스물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창작자로서는 편리한 전개고, 소비자로서는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는 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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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내용을 충분히 수용하고 납득할 수 없다. 끊임없이 자기복제되는 감독의 코드와 아름다운 영상, 그것을 죄다 ‘자비에 돌란의 스타일’이라는 설명으로 대체한다면 나는 정말 할말이 없다. 영화 리뷰를 하면서 알 수 없는 불편함에 시달렸다. 아마 이 영화가 ‘칸의 예술’이라는 마케팅 아래에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방식에서 어떤 권력관계를 느낀다. 문화예술은 어때야 한다는 꼰대식 헛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2>에서 느낀 기묘한 불편감을 느꼈다고 할까?


나는 정치적 올바름의 노골적인 표현에 반대하는 사람 중 하나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소수자로써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건 정말 1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서사와 메시지가 가지는 힘이다. 이런 면에선 애니메이션 <스티븐 유니버스>가 적절한 방향성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각 등장인물의 개성과 강력한 서사로 인해 다양한 색, 체형, 성지향성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소수자로써의 투쟁은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 방식으로 표현된 소수자는, 더이상 소수자가 아닌 하나의 인간상으로 우뚝 선다. 인간 중 그 누구도 하나의 정체성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은, 소수자를 소수자로 바라보는 방법이 아닐 것이다. 소수자라는 깃발을 달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미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왔고, 단순히 영화에 자연스러운 pc서사를 집어 넣었다는 이유로 좋은 영화가 되는 시대는 지나도 한참 지났다.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소수자 서사라고 말하기 부끄러울정도로 그러한 이야기를 충분히 잘 소화하고 있다. 아트인사이트에서는 최근 bl만화를 기반으로한 애니메이션 문화초대를 진행하지 않았는가? 특정 계층의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소비되어온 문화 콘텐츠가 영화관에 올라오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또 한번 경계가 무너졌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칸의 젊은 천재’라는 이름에 갈고리를 하나 달아본다. 사실 이러한 명칭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그냥 적당한 로맨스 영화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바라고, 어떤 이득이 있어서 자비에 돌란의 영화를 젊은 천재의 작품으로 바라보는가?

 

 


 


마티아스와 막심

- Matthias & Maxime -

 


감독 : 자비에 돌란


주연

자비에 돌란

가브리엘 달메이다 프레이타스


장르 : 드라마


개봉

2020년 07월 23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 120분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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