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뮬란, 오리엔탈리즘과 미소지니의 총체적 난국 [영화]

글 입력 2020.07.2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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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1928년 <증기선 윌리>를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장르의 새로운 막을 열었다.

 

1937년 <백설공주>, 1941년 <덤보>, 1962년 <신데렐라>, 1994년 <라이언킹> 등 어린시절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수많은 고전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했으며, 최근까지도 <라푼젤>, <겨울왕국>, <주토피아> 및 각종 실사판 작품들을 통해 끊임없이 독보적인 작품들을 공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들은 요즈음 다시금 OTT서비스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다. 어린시절의 향수가 그 인기의 바탕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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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자는 어린시절 디즈니의 작품을 거의 접하지 않았던 탓에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요즈음 디즈니의 고전작들을 하나씩 감상해가고 있다. 그러던 중 보게 된 1998년의 <뮬란>, 디즈니 최초로 동양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자 주인공 '파 뮬란'에 대해 '디즈니 최초의 주체적인 여성캐릭터'라는 수식어가 붙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와 달리 이 영화는 감상하는 내내 극도의 불쾌감을 안겨주었다. 물론 기존 디즈니의 전형적 신데렐라 서사에 비하면 능동적인 주인공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칭송하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부정적 요소가 너무 다분하다.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이 메인캐릭터부터 서브캐릭터까지 곳곳에 묻어있고 묘사된 가부장제적 배경에 비해 주인공의 주체성은 약소하다. 이것은 디즈니가 동양에 대한 이해나 존중 없이 동양을 단순히 '흥미로운 소재'로만 소비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동양에 대한 무지와 여성혐오적 시각이 지저분하게 뒤엉킨 <뮬란>을 보며 부정적 재평가의 필요를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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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란>은 중국의 고대 전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뮬란, 실제 설화에서는 '목란'이라고 하는 여성이 몸이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전쟁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설화와 영화는 다소 다른 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정체를 숨긴채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인정받는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원본 설화에서는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야 여성임이 밝혀지지만, 디즈니는 이를 각색하여 전장에서 여성임이 밝혀짐으로써 여성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고 그녀의 업적을 인정받는 것으로 스토리를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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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쾌감이 불쑥 찾아든다. 매파와 약속한 시간에 뮬란이 나타나지 않자 그녀의 어머니는 조상께 기도를 드리고 할머니는 행운의 귀뚜라미를 시험한다. 귀뚜라미를 믿고 무모하게 찻길을 건넌 뒤 엉망이 된 찻길의 모습은 민간신앙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희화화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매파를 찾아가기 위해 얼굴만 진하게 분칠하는 뮬란의 모습은 다분히 오리엔탈리즘적이다. 피부색과 명확히 다른 흰 얼굴에 부자연스러운 화장은 단연 일본의 게이샤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때의 뮬란의 복장 역시 일본의 전통의상 기모노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동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온통 점철되어 있는 것이다.

 

곧이어 등장하는 매파 역시 일본식 머리 모양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물을 맞아 화장이 우스꽝스럽게 지워지는 모습은 진한 화장을 희화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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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뮬란이 출정해 공을 세우는 내용은 물론 이전 서사보다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문제는 여실하다. 앞서 이야기한 장면들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 전체 서사에서 조상신들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역시 디즈니가 동양문화에 대한 이해에는 무관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존중하고 싶었더라면 조상의 힘이 뮬란에게 더 큰 힘이 되도록 전개할 수 있었고 오히려 전통적 가치를 배제한 채 뮬란의 힘을 강조하고 싶었더라면 뮬란이 군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더 주체적으로 그려낼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잠에서 깨어난 조상신들이 조금 더 근엄한 태도의 어른으로서 뮬란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그녀를 보호해주는 상황에서, 뮬란이 스스로 힘을 키워냈더라면 두 요소가 훨씬 더 긍정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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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세세히 뜯어보면 출정 과정에서는 이전 서사보다 오리엔탈리즘적 요소가 더 강해진다. 왕국을 침략한 훈족, 즉 부정적 묘사가 허용된 인물에 대해서는 괴물과 다름없는 묘사가 가해진다. 긍정적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라고 반박된다면 아군의 모습은 얼마나 호의적으로 묘사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인 뮬란과 뮬란의 배우자가 될 장군 외에는 모든 군사들이 우스꽝스럽고 무능하게 그려진다. 무능하거나, 유능하되 괴물같거나. 주인공만 겨우 긍정적으로 그려놓은, 오리엔탈리즘 그 자체인 것이다.

 

황제가 적의 장군 샨유의 검 앞에 놓이는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가장 긍정적이어야 할 왕국 역시 지나치게 무능하게 그려지고 뮬란과 동료들이 성에 침투하는 과정 역시 무척 우스꽝스럽다. 뮬란이 샨유를 무너뜨리는 씬은 그나마 가장 주체적이지만 그마저도 허점을 내비침으로써 영웅적으로 묘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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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동양에 대한 몰이해가 서사의 방향성을 흔들고 있다. 얼핏 보면 동양 전통의 가부장적 가치가 뮬란에게 맞지 않는 옷인 양 그려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뮬란은 부모님을 위해 벼슬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와 배우자를 맞이한다. 전통적 가치가 뮬란의 주체성을 이기는 결말인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 가치를 긍정한다기에 묘사는 지나치게 부정적이었던 것을 언급한 바 있다. 동양을 깎아내리랴 여성을 깎아내리랴 서사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뮬란에게 진심으로 힘을 주는 조력자가 있었더라면, 뮬란이 허리를 조여매던 끈을 던져내고 갑옷을 입었더라면, 뮬란의 영웅적 면모가 더욱 돋보였더라면, 뮬란이 벼슬을 받아들이고 출세해 부모님을 봉양했더라면... 불필요한 희화화를 덜어내고 스토리를 보완했더라면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무척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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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 실사판 <뮬란>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뮬란 역의 유역비 캐스팅을 두고 벌써부터 비판과 불매운동이 일고 있기도 하지만, 기존의 스토리와 연출을 어떻게 보완했는가가 새 영화의 중요한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다.

 

디즈니가 최근 여러 작품들을 통해 기존의 우월주의를 수정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극명했던 오리엔탈리즘이 어떻게 수정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디즈니는 과연 얼마나 변화했을까,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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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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