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종이로 만든 환상적인 세계, 노르슈테인의 애니메이션 [영화]

글 입력 2020.07.2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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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3D 애니메이션도 좋지만 종이 질감이 가득한 화면을 보고 싶다면, 노르슈테인의 애니메이션을 보기를 추천한다. 컴퓨터 그래픽과는 또다른 시각적 즐거움이 가득하다.

 

유리 보리소비치 노르슈테인(Юрий Борисович Норштейн)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매이션 거장 중 한 사람이다. 1961년 ‘소유즈물트필름’에 합류하며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인 이반 이바노프-바노(Иван Иванов-Вано)와 작업한 <케르제네츠 전투(Сеча при Керженце)>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최근까지도 노르슈테인은 1968년 , <25일, 첫 날(25-е, первый день, 25th The First Day)>를 발표한 이후 꾸준히 작업하여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다보니 몇 년째 작품 제작 소식만 들리는 경우도 있다. 고골의 <외투>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외투 (Шинель. The Overcoat)>가 이러한 경우로, 작업 과정의 일부가 공개되어 있기도 하다.


그의 느린 작업 속도는 ‘절지 애니메이션(cut-out animation)’은 종이나 천을 오려서 조금씩 움직여 스톱 모션으로 촬영하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절지 애니메이션의 평면성을 극복하고 공기원근법적 표현을 위해 멀티플레인 애니메이션 촬영 장치를 특수 제작하여 이용한다. 또한 실사를 배경으로 사용하기 위해 공간 영사 인화기법이라는 특수 효과 기술까지 활용하여 독특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기억 그 자체의 형상, <이야기 속의 이야기(Сказка сказок)>


 

노르슈테인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을 꼽자면 약 30분 분량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Сказка сказок, Tales of Tales)>가 있다. 꿈과 현실이 중첩된 총체적 인간 세계를 형상화화는 노르슈테인의 환상적 현실과 주관적 세계의 문제라는 주제의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노르슈테인은 한다. 메타포, 회화적 영상, 연상, 시공간의 예기치 않은 병렬 등은 다차원적인 현실을 그려내기 위한 장치이다. 그는 세계를 유희적이거나 오락적으로 재현하지 않으며 또 애니메이션의 현실을 당대 사회로 제한하지 않는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성찰의 텍스트로 파악하고,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철학적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단순히 기억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기억 그 자체처럼 만들어진 영화이다. 즉 우리의 의식의 구조적 결을 그 공간적 구성 속에서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설명하는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이 작품을 보면 의아한 기분에 휩싸인다. 그 이유는 선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장면이 뒤죽박죽 섞여있고. 논리적인 전개 대신 감각과 느낌이 작품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감촉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상호작용하듯이 주관적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환상을 섞고 그 경험을 여러 층위로 조각내었다.


노르슈테인이 이 작품에서 콜라주와 몽타주를 사용한 것은 삶의 조각난 층위를 이어 붙이는 것을 드러내는 것 같다. 콜라주 방식은 콤바인의 개념으로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예기치 못한 요소들을 동시에 섞어 놓는 방식으로” 다른 장소 혹은 다른 맥락에 있었던 이미지 요소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하나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 전체에 적용된 구성 방식이 바로 콜라주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기억 파편들을 모아진 형태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실제 콜라주를 이용한 제작 방식은 물론, 각 하위 이야기의 그림 기법이나 분위기, 색조를 달리하여 각 상황이 개별이고 구별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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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장면과 이미지들의 교차로 인하여 자유로운 연상을 하게하고, 그 연상이 몽타주를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게 하며, 그 이미지는 다시 짧은 메시지를 만들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것은 시적인 의미를 지닌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유리 노르슈테인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에서 이러한 시적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양상으로 몽타주 기법을 이용하였으며 이것은 각 장면사이에 의미를 만들어 내는 이미지의 연속으로서 반복, 과장, 은유, 환유, 병치, 상징, 압축과 리듬이라는 시와 같은 문학 장르에서 볼 수 있던 표현들을 영상미로 구축해 냈으며 바로 이것이 평범한 애니메이션에서 구현하기 힘든 독창적인 작품의 큰 특징이 된다.


이렇게 역사가 아닌 체험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체험과 사실을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역사도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쓰이는 것이므로, ‘이야기 속의 이야기’ 혹은 ‘이야기들의 이야기’는 결국 개인의 체험과 역사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제목일 것이다.

 


 

순수하고 슬픈 푸르른 사랑, <사랑스러운 푸른 악어(Мой зеленый крокодил)>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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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르슈테인의 작품은 <사랑스러운 푸른 악어(나의 초록 악어) (Мой зеленый крокодил, My Green Crocodile)>와 <사계절 (Времена года, The Seasons)>이다. 두 작품 10분 정도의 짧은 분량이라 보기에 부담이 없고 특유의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노르슈테인이 감독한 것은 아니고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다. 헝겊과 종이를 이용해 인형캐릭터를 만들어 입체적인 캐릭터가 두드러지며, 단순 처리된 배경으로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평가받는다.


계절 변화와 함께 악어와 소의 사랑을 그리는데, 꽃으로 사랑을 시작한 두 인물인 만큼 꽃이 지자 사랑의 끝이 찾아온다. 그 중간 과정은 계절 변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험담으로 인해 소가 쓰고 있는 화관이 점차 시들고 가시나무만 남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하늘의 해도 눈물짓고 비까지 내려서 꽃밭의 꽃도 다 사라져 두 인물의 사랑도 그러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빗물에 악어가 소를 위해 써준 시도 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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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대로 헤어질 수 없는 악어는 잎사귀도 좋다는 암소의 말에 잎사귀로 변하기로 결심한다. 이내 나무 위로 올라가 가지에서 떨어지는 순간 푸른 이파리가 된다. 암소는 그런 악어를 다시 사랑하게 되고, 잎사귀라면 외관은 상관없다며 잎이 되는 것과 같은 놀라운 것을 보여 달라고 한다. 놀랍게도 악어가 변한 파란 이파리에 흐른 빗물이 흘러 꽃줄기로 떨어지자 꽃이 핀다.


악어의 흔적은 이파리의 푸른색에 남아 있다. 푸른 잎사귀에 흐른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꽃을 피우는 것은 그럼에도 소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악어의 마음이 아닐까.

 

 


어느 연인의 일 년, <사계절(Времена года)>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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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의 음악 <사계>을 토대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상당히 아름다운 화면으로 한 커플의 과거와 현재를 계절과 관련지어 보여주고 있다.


가을의 황량한 풍경으로 시작한 애니메이션은 회상을 통해 두 사람이 만난 봄과 즐겁게 시간을 보낸 여름으로 이어진다. 3분 29초에 나오는 빛 표현은 정말 아름다워서 그들의 추억이 사실 내 것이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네를 타는 모습과 태양이 숲 사이로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간의 흐름을 드러낸다. 다시 가을로 바뀌며 현재로 돌아오고 하늘에는 새들이 날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그리고 겨울 풍경 속의 즐거운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여러 가지 요소에서 대조를 이룬다. 과거와 현재를 나누는 기준은 장식적인 화면의 삽입여부이다. 장식적인 화면을 통해 봄, 여름 장면으로 이어졌고, 겨울 장면 전에도 장식적인 화면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봄, 여름, 겨울이 과거에 해당하고, 가을이 현재에 해당한다.

 

과거는 비교적 선명한 색감이 두드러지는 반면 현재는 빛 바란 느낌이다. 겨울이어도 축제나 썰매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화려한 색감이 보인다. 그리고 화면 속도의 차이도 중요하다. 현재에 해당하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이 말을 타지만 느릿느릿 걸어가는 반면, 여름의 그네나 겨울의 썰매는 빠르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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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음악이 전부다. 아마도 지금 이 연인의 사이는 가을의 쓸쓸함이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다. 그리고 기억에는 소리가 없다. 기억하는 말을 떠올리고 들었던 소리를 되돌아 보는 것이 전부다. 이 작품은 말소리 대신 음악만 들려주며 현재의 연인 사이의 거리와 그들이 지닌 과거의 추억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흐르는 적막과 슬픔을 과거의 열정과 웃음과 떨어트릴 수 없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한다.


*

 

최근 3D 애니메이션이나 우리가 자주 보는 미국,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지닌 감독이다. 안타깝게도 노르슈테인, 노르쉬테인 등으로 나타나고 구글에서는 놀슈테인으로 알려주다보니 검색해서 찾는 것이 조금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조금만 견디면 그 보람을 충분히 보상해줄 만한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에도 영상이 많이 올라와있으니 Norstein이나 위의 이름을 넣어 검색했을 때 쉽게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유튜브 채널 Мультики студии Союзмультфильм에도 작품이 올라와 있다. 다만 대사가 나오는 몇몇 작품은 자막과 함께 볼 수 있게 국내에 발매된 <유리 노르슈테인 작품집> DVD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참고문헌

김미르나래, 「유리 놀스테인의 작품에서 나타난 미장센의 특징-<안개 속의 고슴도치>와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모드니 예술』 Vol 13, 2015.

김일태, 최가희, 「유리 놀스테인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의 몽타주 기법 연구」,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 5권 1호, 한국콘텐츠학회, 2005.
김성일, 「유리노르슈테인의 애니메이션 연구」, 『한국노어노문학회 학술대회 발표집』, 한국노어노문학회, 2011.
박미령, 「유리 노르슈테인의 『이야기들의 이야기(Сказка сказок)』의 서사 특징과 러시아 전통」, 『스토리앤이미지텔링』, 스토리앤이미지텔링연구소, 2011.
이해승, 「1960-1980년대 초반 사회 문화적 상황과 관련해 본 러시아 애니메이션의 변화 연구」,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09.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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