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눈사람] 긴 밤의 끝, 내일은 반드시 온다.

열한 번째 눈사람: 긴 밤을 걷고 있는 그대에게
글 입력 2020.07.2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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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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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의 우울을 마주한 건 중학교 3학년, 약 7년 전이었다. 아팠던 건 그 전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웃는 게 어색했고, 즐거운 게 힘들었다. 세상은 너무 두려운데 사람들은 내게 희망을 강요했다. 무사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학업도 인간관계도 지쳤고, 더는 나빠질 게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오히려 괜찮았다. 모든 건 원래 그랬으니까.

 

모두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이 싫었다. 모든 건 괜찮아질 수 없었다. 내 세계는 그만큼 어두웠고, 나는 비관적이었다. 내게 괜찮아진다는 말은 희망 고문에 가까웠고, 오히려 그런 희망은 없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모조리 밀어버린 채, 괜찮은 척 웃는 법을 익혔다.

 

괜찮은 척에 능숙해지자, 나 역시 괜찮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고, 반복되는 좌절에 다시 바닥을 걸을 뿐이었다. 좀 괜찮다가도 작은 스트레스에 쉽게 무너졌고, 이유 없는 우울에 빠졌으며, 습관적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전혀 그럴 일이 아닌데도 자꾸만 넘어졌고, 자꾸만 부서지는 내가 싫었다.

 

*

 

어느 순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난 영원히 나을 수 없겠구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구나.' 내가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울과 타협했고, 어느 정도 그것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비관적인 생각들이 몰려올 때, 이것이 진짜 내가 바라는 건지, 혹은 그저 증상의 연장선인지 분간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엄청난 발전이었다. 하루하루가 투쟁이긴 했지만, 적어도 내게 마주할 힘이 생겼다.

 

그 발전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했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줬다. 나는 어느 정도 꿈을 꾸기 시작했고, 때때로 즐거웠다. 더 바랄 게 없었다. 우울과 공허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지만, 날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아, 나 지금 우울하구나. 또 아픈가 보다.' 단 하룻밤의 앓이였다. 그렇게 나는 마침내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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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쯤 전이었다. 유독 햇살이 맑았던 날, 문득 내가 지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 그런 감정을 느껴본 지 얼마나 되었던가? 낯설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고, 그냥 이대로 좋았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둘러본 주위는 온통 색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세상을 본 적이 있었나? 한참을 두리번대다 벅찬 마음에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

 

정말 문득 든 생각이었지만,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살아있었고, 모든 건 그 자리에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어쩌면 살면서 처음이었다. 구멍 난 것 같던 내 심장은 박동하고 있었다. 공허함을 느낄 수 없었다. 매일 내 숨통을 조이던 불안이 사라졌다. 착각이 아니었다. 완전한 회복이었다. 우울을 마주한 지 7년 만이었다.

 

아주 어둡고 긴 밤이 끝난 기분이었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끝났다. 나의 태양은 죽었다고, 더는 뜨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믿던 태양이 떠올랐고, 기다리던 내일이 왔다. 아침은 이런 기분이었구나. 세상은 이런 색깔이었구나.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어떤 것들은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어떻게 벗어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말 그대로, 시간이 흘러 더욱 성장한 내가 스스로 이겨낸 것이 아니었을까. 긴 시간 동안 나는 치료를 받고, 울고, 아팠다. 점점 단단해지고, 굳은살이 생겼고, 맷집이 생겼다. 끔찍한 시간이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성장의 시간이었다. 그만큼 울지 못했다면 벗어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약이란 말은 회피의 변명처럼 들려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어떤 것들은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장 벗어나고 싶다 해도 그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낫고 싶은 욕심에 스스로 착각과 좌절을 반복했던 시간처럼, 허우적댄다고 빨리 나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그 모든 것들을 견뎌내고 맞선 후에야 그 힘으로 늪을 빠져나올 수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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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라 해도 괜찮아지는 방법 따위 모른다. 약물과 상담은 회복을 돕긴 하지만, 빠르고 확실한 회복을 완전히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일정한 시간과 힘이 필요하다. 상처가 아물고 더는 아프지 않을 때까지의 굳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린 나를 만난다 해도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잘하고 있으니, 그렇게 견디라는 말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에게 예전에는 희망적인 말들, 진심 어린 조언을 많이 해줬다. 당장 낫지 않는 내게 문제가 있는 것뿐, 그는 해내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야 아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해결이 아닌, 긴 싸움을 견뎌낼 용기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긴 투쟁을 옆에서 지켜봐 주고 응원해준 모두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긴 밤의 끝, 내일은 반드시 온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나의 아침은 생각보다 조용히 찾아왔다. 지저귀는 새도 없었고, 시끄러운 알람이 울지도 않았다. 부단히 견딘 끝에 어느 순간 다가와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그날이 되어 마주한 나는, 생각보다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불안하지 않은 나는 용감했고, 꿈을 꿀 줄 아는 빛나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난 나의 시간 동안 많이 힘들었고, 누구보다 격정적으로 살아야 했지만, 이제 와 돌아보니 후회되지는 않는다. 후회해봐야 달라질 것이 없는 것도 맞지만, 나는 늪 안에서 수많은 감정을 마주했고, 감정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었다. 깊은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또다시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그렇게 길러진 근육으로 다른 길을 걸어볼 수도 있었다. 아마 이 모든 시간 덕분에 태양이 떠오를 수 있던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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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코 해낼 수 없던 말을 해보려 한다. 절대 오지 않는 내일은 없다. 태양을 떠오를 테고, 어두운 밤은 끝이 날 것이다. 그러니 견뎌야 한다. 지금 해가 뜨지 않는다고 내일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장 괜찮지 않아도 괜찮으니,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결국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다.

 

절망, 좌절, 수도 없이 느껴보았고, 포기만 수천 번을 했다. 그래도 나에게 태양이 떠오르더라. 누구든 아플 수 있고, 그래도 괜찮으니, 그렇게 하루하루 견디다보면 꼭 그대에게도 내일이 올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설령 그 시간이 너무 길다 해도, 결국 떠오를 그대의 태양을 위해 한 걸음만 더 내디뎌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나의, 당신의, 그리고 우리의 빛나는 내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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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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