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퀘이 형제의 독창적인 세계 -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의 초대展

글 입력 2020.07.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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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전이 진행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퀘이 형제(스티븐 퀘이∙티모시 퀘이)의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퀘이 형제는 영화, 애니메이션 감독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유의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담긴 작품으로 화제를 끌고 있다.

 

대표작인 <악어의 거리>(1986)는 칸영화제에 초청받았으며, 유명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들의 작업에 감명을 받아 2019년 퀘이 형제의 신작에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20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퀘이 형제의 영화가 소개되면서 전주 팔복예술공장에서 전시가 진행되어 퀘이 형제의 영화와 ‘도미토리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으며, 현재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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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 형제가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은 퍼펫을 사용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월레스와 그로밋>, <유령신부>, <크리스마스 악몽>, <코렐라인> 등 유명한 영화들이 많은데, 퀘이 형제만의 차별성이라면 서사보다는 ‘도미토리움’과 ‘퍼펫’이 만드는 기이한, 초현실적인 분위기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도미토리움’은 무엇일까? 라틴어 ‘dormītórĭum’은 침실 또는 영면소를 뜻한다. 이 전시에서는 영화의 세트장 역할을 하는 사각형의 박스를 의미하는데, 퀘이 형제는 도미토리움 안의 퍼펫들이 잠들어 있는 상태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라틴어의 의미와도 상통하는 지점이 있는 듯하다.

 

기묘한 생김새의 퍼펫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가만히 멈춰 있는 도미토리움을 보다 보면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퀘이 형제의 기발한 상상력은 바로 이 도미토리움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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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lligrapher" BBC 2 Ident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University

 

 

<캘리그라퍼>(1981)는 채널 BBC로부터 로고 영상 의뢰를 받아 제작한 2분가량의 짧은 영상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 영상에 사용된 도미토리움을 볼 수 있었는데, 섬세한 디테일과 재치 있는 표현이 인상적이어서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으로 남았다.

 

한 ‘캘리그라퍼’가 펜촉을 들고 멋진 글씨를 쓰고 있다. 그런 그의 손과 몸, 머리, 책상, 벽, 천장까지 이 도미토리움의 모든 요소가 종이와 캘리그라피로 이루어져 있다. 아쉽게도 이 영상은 사용을 거절당했다고 하지만, 퀘이 형제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또 이번 전시에서는 퀘이 형제의 아이디어가 담긴 스케치들과 <눈물의 유리 너머>(2011), <얀 슈반크마예르의 캐비닛>(1984), <이름 없는 작은 빗자루>(1985), <악어의 거리> 등 퀘이 형제의 단편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전시되어 있는 도미토리움과 퍼펫이 영화에서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장점이다.

 

영화를 보면서 인형의 섬세한 움직임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궁금했는데, 인형의 내부를 이루고 있는 금속 뼈대도 같이 전시되어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영화의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제작의 단계, 그리고 완성된 영화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친절한 전시라고 느껴졌다.

 

퀘이 형제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관람객도 편안하게 (보기에는 분위기가 조금 음산하지만) 볼 수 있을 만한 전시였다.

 

 

[크기변환]8. 얀 슈반크마예르의 캐비닛_프라하의 연금술사.jpg
The Cabinet of Jan Švankmajer "The Alchemist of Prague" PhotographⓒKIM yeonje

 

 

팀 버튼 감독의 애니메이션이나 <코렐라인>을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이 전시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은 실사영화보다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가 쉽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특유의 뚝뚝 끊기는 느낌이 캐릭터의 움직임을 기괴하게 묘사하기에 최적화되어 환상적이면서도 어두운 느낌을 주는데 퀘이 형제의 영화, 특히 <악어의 거리>에서도 그 환상적인 어두움이 극대화된다. <악어의 거리>는 영화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니 꼭 보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만 있는 건 아니다. 전시실에서 본 <얀 슈반크마예르의 캐비닛>은 다른 영화들에 비해 제법 밝은 분위기였는데, 영화가 시작하고 대략 5분 간 어떤 내용인지 감이 오질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머리에 책을 뒤집어쓴 재단사, 혹은 사서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한 아이가 찾아온다. 그리고 재단사는 아이의 머리를 열어 내용물을 전부 쏟아내고 캐비닛을 뒤지며 온갖 재료를 찾는다. 이렇게 보면 아주 끔찍한 이야기 같지만, 아이의 머리를 책으로 꽉 채워준다는 나름 훈훈한(?) 이야기다. 영화의 분위기도 꽤 밝아서 퀘이 형제가 꼭 음산한 영화만 만드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월레스와 그로밋>에서 월레스와 그로밋이 돗자리를 깔아놓고 쿠키를 먹는 장면이나 <코렐라인>에서 단추 눈을 한 엄마가 코렐라인을 쫓아오는 장면은 영화를 본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린 시절에는 애니메이션 속의 화려한 풍경에 마냥 감탄하기만 했지만 영상을 공부하는 학생이 된 지금은 한 장면, 한 장면 뒤에 숨어 있을 제작자들의 노력을 생각하게 된다. 같은 맥락으로 이번 전시에서도 자신들만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구축해 나가고, 섬세한 기술로 그것을 실현하는 스티븐 퀘이, 티모시 퀘이라는 예술가의 노력을 볼 수 있었다.

 

 

2020년 6월 27일(토) - 10월 4일(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이런 분에게 추천합니다:

<유령신부>, <코렐라인>을 재밌게 본 사람, 인형의 집을 좋아하는 사람, 무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

 

 

[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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